공장도 없이 '6000억' 화장품 신화…나도 한 번?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김은령 기자 2020.06.13 11:00
글자크기

[MT리포트] "나도 1억이면 화장품 CEO" (上)

편집자주 아모레, LG생활건강, 애경산업 등 뷰티 빅3가 대한민국 뷰티산업을 이끌던 시대는 끝났다. 누구나 자본금 1억원이면 자신만의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이 구축한 세계 최고의 화장품 ODM(제조자개발생산방식) 생태계 덕분이다. 여기에 유통 디지털혁신과 인스타그램 세포마켓의 급성장이 맞물리면서 화장품 진입장벽은 완전히 붕괴됐다. ‘레드마켓’으로 꼽히는 뷰티시장에 신규진출이 잇따르는 이유다. 뷰티산업의 달라진 게임의 법칙을 분석해본다.



6000억에 팔린 그 화장품, 공장 안 짓고도 창업한 비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뷰티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기획사도 등장했다. 뷰티 인플루언서를 키우고 화장품 브랜드를 출시한 레페리의 대표 이미지/사진=레페리 공식 웹사이트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뷰티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기획사도 등장했다. 뷰티 인플루언서를 키우고 화장품 브랜드를 출시한 레페리의 대표 이미지/사진=레페리 공식 웹사이트


#인스타그램·유튜브 40만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김민영씨는 소자본으로 올해 초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했다. 김씨는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업체 코스메카코리아·코스맥스와 손 잡고, 공장을 세우거나 대규모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도 화장품을 출시한 뒤 온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자본금 단돈 1억원의 소자본으로 만드는 수 천 억원대 화장품 기업의 꿈, K-뷰티 '코리안 드림' 시장이 활짝 열렸다. 코로나19(COVID-19) 창궐이 초래한 디지털 유통 혁신과 굴지의 ODM 토종 기업이 성장하면서 K-뷰티 화장품 산업은 지금, 진입장벽이 붕괴되고 있다.



공장도 없이 '6000억' 화장품 신화…나도 한 번?
이제 코로나19 확산으로 언택트(Untact·비대면) 채널이 활짝 열리며 자본과 유통채널이 없어도 화장품 기업을 설립·운영하며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뷰티 생태계가 구축됐다. '레드 오션'인 화장품 시장에 백화점·패션·제약업체는 물론 인플루언서들이 뛰어들며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

◇6000억 매각의 꿈…메이드 바이(Made by) '얼굴 없는 뷰티'=김소희 스타일난다 대표는 2009년 코스맥스와 계약을 맺고 화장품 브랜드 '3CE'를 론칭했다. 3CE는 국내를 넘어 중국, 동남아에서 대박을 내고 2018년 글로벌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에 6000억원에 매각된다.



화장품 공장을 설립할 필요 없이 김소희 대표가 감각만으로 3CE를 론칭해 6000억원에 매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메이드 바이 코스맥스'.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없어도 6000억원대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스타일난다의 성공은 보여줬다.

공장도 없이 '6000억' 화장품 신화…나도 한 번?
코스맥스와 한국콜마가 세계 1,2위 ODM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해 화장품 창업의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뷰티 산업의 진입장벽은 전면 붕괴되고 있다. K-뷰티 기업들이 이미 생산은 외주를 주고 브랜딩과 마케팅, 유통 채널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생산 뿐 아니라 브랜딩과 마케팅, 유통 채널 입점과 수출까지 ODM업체들이 전면 지원에 나서고 있다. 완제품 생산을 뜻하는 ODM을 넘어, 브랜드를 통째로 만들어주는 OBM(Original Brand Manufacturing)이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디지털 유통 혁신은 화장품 산업에 지각변동을 가져오고 있다. 온라인 유통채널이 성장하자 비용이 많이 드는 백화점이나 가두점에 입점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플루언서들은 온라인 채널에서 쉽게 화장품을 팔고 중국 티몰을 통해 수출까지 온라인으로 해결하면서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다.


공장도 없이 '6000억' 화장품 신화…나도 한 번?
◇신세계도 현대百도…누구나 화장품 브랜드 만든다=장벽이 붕괴되며 전통의 뷰티 강자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비롯한 화장품 업계는 초유의 경쟁에 직면하게 됐다. 유통·패션·제약업체와 세포마켓의 인플루언서까지 신생 화장품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뷰티 산업 경쟁 강도는 극에 달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비디비치, 연작 등 화장품 브랜드를 전개하던 신세계는 최근 스킨케어 브랜드 '오노마'를 선보였다. 현대백화점 그룹 한섬도 지분 인수를 통해 화장품 브랜드 출시에 나섰다. 유통 공룡의 등장에 기존 화장품 기업은 점유율 잠식에 대비한 수성 전략이 불가피해졌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연작' 이미지/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신세계인터내셔날 '연작' 이미지/사진=신세계인터내셔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신규 브랜드 '이너프프로젝트'를 오프라인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쇼핑몰 쿠팡에서 단독 론칭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비디비치와 연작은 중국 시장에서 티몰을 통한 수출을 강화하고 있으며 설화수는 신제품 론칭을 아예 온라인에서 진행했다. 한국의 이커머스 비중은 24%에 달하며 K-뷰티 기업의 최대 수출시장 중국의 이커머스 비중은 30%를 넘어섰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화장품 산업은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구조적 격변을 겪고 있는 중"이라며 "코로나19에도 불구, 양호한 수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화장품에 다양한 기업이 뛰어들면서 화장품이 대한민국의 중추적 산업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고 말했다.

오정은 기자, 김은령 기자

"인플루언서는 다 폭리라구요?"…'아옳이' 김민영이 만드는 화장품

하트시그널에 출연해 유명해진 서주원씨의 배우자 인플루언서 김민영씨는 지난 2월 화장품 브랜드 '로아르'를 론칭했다.하트시그널에 출연해 유명해진 서주원씨의 배우자 인플루언서 김민영씨는 지난 2월 화장품 브랜드 '로아르'를 론칭했다.
"인플루언서가 화장품을 론칭만 하면 대박 난다는 것이 바로 편견이죠. 오히려 '인플루언서가 파는 물건은 믿을 수 없다' '폭리를 취한다'는 편견을 이겨내고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는 것이 어려웠어요. "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아옳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김민영씨(29)는 40만 구독자·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다. 김씨는 올해 2월 화장품 브랜드 '로아르(LOAR)'를 론칭했다. 요즘 인스타그램 세포마켓(온라인 1인 마켓)에서 흔하다는 화장품 브랜드 론칭이지만 소문만큼 실제로 브랜드를 내놓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김씨는 말한다.

"유명해지니까 화장품 공동구매를 하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공동구매를 하려고 받은 화장품을 써보면 100%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저를 믿고 팔로우(구독)해주는 분들은 다 제 팬인데 실망하시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직접 화장품을 만들고 브랜드를 론칭하기로 결심했죠. "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성장한 세포마켓에서 대부분의 인플루언서는 '공동구매' 형식으로 화장품을 판매한다. 공동구매는 구매 수량을 정확하게 예측해 주문 들어온 물량만 조달·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재고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어서다. 하지만 김씨는 공동구매 대신 스스로 화장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비용과 재고가 부담스럽지만 직접 만들지 않고서는 제품을 신뢰할 수 없어서였다.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업 파트너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김민영씨는 모델에서 인플루언서로, 뷰티 셀럽에서 뷰티 CEO로 변신하고 있다김민영씨는 모델에서 인플루언서로, 뷰티 셀럽에서 뷰티 CEO로 변신하고 있다
고르고 골라 국내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 3위 업체 코스메카코리아와 화장품 론칭을 준비했다. 스스로를 코덕(코스메틱 덕후)이라고 부르는 김씨는 민감성 피부로 피부 트러블을 해결할 화장품을 가장 먼저 고민했는데, 그래서 처음 출시한 품목이 바로 세안제였다.

"보통 클렌징 제품은 저렴한 제품으로 아무거나 고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제대로 된 클렌징 제품을 쓰면 트러블도 개선되고 피부가 많이 좋아지는 걸 직접 경험해서, 다른 제품보다 클렌징 화장품을 먼저 만들게 됐어요. "

김씨는 코스메카코리아와 협업해 제품에 특허받은 보습 성분과 꿀, 로얄젤리, 병풀 추출물을 직접 골라 첨가했다. 약산성에 최대한 순한 '무자극' 제품으로 제작했고 제품 용기는 뚜껑 하나까지 본인이 선택했다. 깐깐한 고객처럼 스스로 묻고 따지며 출시한 첫 신제품이다.

40만 팔로워를 보유한 김씨지만 최대 고민은 '홍보·마케팅'이다. 본인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외의 채널에서 제품을 어떻게 홍보하고 판매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 마케팅에 많은 비용을 쓰기보다는 제품력이 고객들에게 검증되길 기다리는 중이다.

김민영씨가 코스메카코리아와 손잡고 출시한 로아르 클렌징 세럼김민영씨가 코스메카코리아와 손잡고 출시한 로아르 클렌징 세럼
김씨의 야심작이자 로아르의 차기 제품인 쿠션은 국내 1위 ODM기업 코스맥스와 함께 준비 중이다. 상시 마스크 착용을 감안해 마스크에 잘 묻지 않고 지속력 강한 제형에 노화방지 성분인 트러플(서양 송로버섯) 추출물을 담았다.

아직 브랜드 초기 단계라 쉽지 않다는 김씨는 "예전에는 인플루언서가 판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며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겸손한 화장품을 꾸준히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오정은 기자

'얼굴없는 뷰티' 맞수, 코스맥스 vs 한국콜마 불꽃 튀는 경쟁

공장도 없이 '6000억' 화장품 신화…나도 한 번?
K-뷰티의 초고속 성장을 일궈낸 굴지의 화장품 브랜드 뒤에는 대한민국 화장품 제조를 담당한 '얼굴없는 뷰티' 기업이 있다. 쌍둥이처럼 태어나 경쟁하며 서로를 세계 1,2위로 만든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화장품 진입장벽 붕괴를 맞아 제2의 도약을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웅제약 선후배 사이인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과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각각 1990년, 1992년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를 창업하며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브랜드가 아닌 ODM으로 '얼굴 없는 뷰티' 업계서 총성 없는 전쟁을 하며 고속 성장한 두 기업은 2020년 2세 경영의 포문을 열며 화장품 진입장벽 붕괴 시대에 걸맞는 뷰티 플랫폼 경쟁에 돌입했다.

◇한국콜마의 플래닛147 "브랜딩에서 수출까지 온라인으로 지원 사격"=지난해 12월 한국콜마는 윤동한 회장의 장남 윤상현 총괄사장을 부회장에 선임하며 2세 경영의 포문을 열었다. 윤 총괄사장은 2009년 한국콜마에 합류,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 인수 등 공격적 투자를 지휘하며 지난해 8월 신축된 내곡동 종합기술원을 중심으로 콜마의 역량을 집중시켰다.

한국콜마 종합기술원 전경/사진=한국콜마한국콜마 종합기술원 전경/사진=한국콜마
부회장 선임 6개월 만에 선보인 '플래닛147'은 화장품 브랜드 설립의 모든 것을 지원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화장품 사업에 필요한 전방위적 서비스를 고객의 요구사항에 맞게 제공하는 개방형 시스템으로 사업 경험이 충분하지 않거나 전문지식이 없어도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다.

플래닛147을 준비하면서 한국콜마는 테스트베드로 뷰티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한 화장품을 미리 선보였다. 뷰티 크리에이터인 라뮤끄와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 '에크멀'의 논-섹션 립스틱 10종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인플루언서 블랑두부와 협업한 동키밀크 콜라겐 크림은 론칭 이틀 만에 1만3000개가 팔려나갔다. 또 헤이브릴랑에서 출시된 인텐시브 딥 모이스처 크림은 CJ오쇼핑에서 방송 30분 만에 매진됐다. 이들은 모두 플래닛147로 상담을 거쳐 출시된 화장품이다.

현재 플래닛147은 서울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을 방문해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화장품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화장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30분 만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콜마는 플래닛147을 내년 초까지 모든 고객이 온라인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 형태로 전환할 계획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플래닛147에 접속만 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화장품을 기획하고 제품 주문, 브랜드 기획에 대한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인플루언서로 '블리블리' 화장품을 성공적으로 전개 중인 임지현씨/사진=임블리인플루언서로 '블리블리' 화장품을 성공적으로 전개 중인 임지현씨/사진=임블리
◇코스맥스, 1위 ODM을 넘어 '온라인 브랜드 큐레이터'로=코스맥스 그룹은 지난 2월 이경수 회장의 장남 이병만 코스맥스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2세 경영이 본격화된 코스맥스는 업계 최초로 '최소 주문수량'을 철폐하며 신규 고객사의 화장품 산업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집중하고 있다. 신생 화장품 브랜드의 '온라인 브랜드 큐레이터'가 되겠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앞장섰던 코스맥스는 지난해 홈페이지를 개편, 상담 창구를 단일화했다. 인플루언서 같은 개인 사업자들은 5000개 또는 1만개 가량인 첫 주문수량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을 고려해 업계 최초로 최소 주문 수량을 철폐하고 상담 창구를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이미지 출처=미샤이미지 출처=미샤
코스맥스는 온라인으로 화장품을 판매할 고객사들과 오프라인 고객사를 구분해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영업 조직을 이원화했다. 최근 디지털 채널이 중요해지자 온라인 브랜드 론칭에서 제조, 영업, 디자인, 패키지 개발까지 전 과정을 동시에 구현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코스맥스는 이미 화장품 ODM을 넘어 OBM(Original Brand Manufacturing) 기업을 지향하며 브랜드 론칭의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는데 특히 언택트 시대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컨설팅하고 있다.

남중현 코스맥스 온라인마케팅팀 실장은 "올해는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 되고 다양화 되면서 댓글·후기를 보고 화장품을 사는 언택트(비대면) 구매가 많이 늘었다"며 "코스맥스는 좋은 아이디어와 역량을 갖춘 신규 고객사들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은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