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前 삼성CEO에게 이유를 물었다[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6.12 11:30
글자크기

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성 CEO 출신이 중국 IT 기업에 취업했다는 소식에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논란의 중심에선 장원기 현 에스윈 부회장을 기자가 처음 만난 것은 2004년경 삼성전자 천안 LCD 공장 투어 때다.

천안 LCD 공장장을 맡았던 그가 방진복을 입고 삼성전자 출입기자단에게 라인을 세세히 설명하던 것이 16년 전이다.



장원기 부회장의 소속사로 중국의 에스윈이 적혀 있다./사진제공=네이버 인물검색장원기 부회장의 소속사로 중국의 에스윈이 적혀 있다./사진제공=네이버 인물검색


오랜 동안 연락이 끊겼던 그와의 통화에서 느꼈던 것은 중국행 이후 파장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불안함에, 가벼움이 더해진 목소리였다.

16년 전 공장 투어에서 그와의 인상적인 대화는 LCD의 핵심장비인 화학적 기상증착장비(PE CVD)의 국산화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1대 수백억원하는 LCD용 PE CVD(대형 냉장고를 10여대 정도 붙여놓은 크기)를 보고 기자가 "이것이 증착기냐"고 물었고, 그는 "미국과 일본 합작사인 AKT의 증착기다"고 답했던 기억이다.

LCD 장비 국산화에 관심이 많았던 기자는 "왜 국산증착기인 주성엔지니어링 제품은 쓰지 않느냐"고 했더니 "AKT와 주성이 소송 중이어서 국산은 안쓴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그 때 의아했던 것은 쌍방소송일텐데 한 쪽의 제품만 쓴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경쟁사였던 LG필립스LCD(현재 LG디스플레이)는 그런 국산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과 AKT 증착기를 함께 쓰며 단가도 낮추고 LCD 세계 1위를 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 그는 승승장구했고 일본 소니와 합작한 S-LCD의 한국 측 대표도 맡고, 2009년부터 LCD사업부장을 맡다가 실적악화 등을 이유로 2011년 삼성전자 CEO 보좌역으로 물러났으나, 그 해말 운 좋게도 중국삼성 사장으로 가는 기회도 잡았었다.

그렇게 6년을 중국에서 일하고 2017년부터 3년간 퇴직임원 예우를 받은 후 지난해 말을 끝으로 퇴직임원 예우가 끝나자마자 찾은 곳이 중국 기업이었다.

오랜 만에 그와의 전화에서 "굳이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지신 분이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이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내가 그렇게 유명한 인물도 아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삼성의 CEO로 10여년을 근무했으면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고 했더니 "자신이 가는 곳은 삼성의 경쟁사가 아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도 아주 오래 전 것이어서 기술유출의 우려도 없다"고 항변했다. 공감이 가지 않는 답이었다.

그는 '돈이 아니라 왕동셩 전 BOE 회장과의 의리' 때문에 컨설팅하는 위치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 하이디스(과거 하이닉스의 LCD 부문)의 기술을 빼 가서 삼성과 LG의 LCD 부문을 저가 공세로 무너트린 중국 BOE 출신의 회장과 같이 일하는 것이 의리일까. 중국 기업에 가지 않는 게 자신을 키운 삼성과 국민들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물었으나 그는 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의 중국 진출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게 자신의 역할이 아니겠느냐"는 딴소리를 했다.

일자리를 찾아간 그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소한 삼성이라는 국내 대표기업의 한 사업부문의 CEO를 10여년 맡았던 그라면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 신중했어야 한다.

이런 비판의 소리가 있을 줄 몰랐다면 감이 없는 것이다. 그의 걸음이 그 개인의 것을 넘어 우리의 자존심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가 중국 기업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들은 후 그를 데리고 일했던 사람과, 그의 아래에서 일했던 과거 여러 사람들과 통화했다. 그를 아는 모두는 당혹해 했다. 그는 회사를 옮기기 전에 전 직장인 삼성 쪽과도 어떤 논의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를 아는 일부는 "지금 병 중에 계신 누구보다는 그나마 그를 중국이 데리고 간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다행"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장 사장으로 불렸던 장 부회장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번 결정은 옳은 것 같지 않으니 되돌릴 가능성은 없느냐"고.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