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證 연이은 '부실 펀드' 판매 논란에 몸살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0.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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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펀딩 펀드에 투자했다가 환매중단으로 돈이 묶인 투자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김소연 기자팝펀딩 펀드에 투자했다가 환매중단으로 돈이 묶인 투자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김소연 기자


"이 상품을 만들면서 많은 검토와 시뮬(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었고 본사 상품·리스크부서로부터도 4번에 걸쳐 혹독한 점검을 받았습니다. (중략) 충분한 검증이 된 만큼 제가 안심하고 추천해드립니다. 사장님 니즈에 가장 최적화된 팝펀딩 상품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한 번 믿고 투자해주시면 꼭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한국투자증권 분당PB(프라이빗뱅커)센터 관계자가 팝펀딩 대출채권 펀드를 고객들에게 추천하며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 중 일부다. 투자자들은 280억원 가량의 환매중단이 발생한 '팝펀딩 사태'의 핵심은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이 상품 설계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한, 이른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펀드' 여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비스자산운용, 헤이스팅스자산운용 등이 P2P(개인 대 개인) 대출업체에 투자하도록 만든 '자비스 팝펀딩 홈쇼핑 벤더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헤이스팅스 더 드림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등 펀드의 투자자들이 판매사인 한국투자증권 및 관계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르면 이달 중 고소 절차가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를 대리해 기업·금융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강점이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가 이 사건을 수임해 진행하고 있다.



이들 펀드들은 올 1월 이후 연이어 환매가 중단됐다. 자비스에서만 5, 6호 펀드가, 헤이스팅스에서는 4, 5, 6, 7호 및 메자닌형 펀드 등 5개가 환매중단됐다. 투자자들은 환매중단 규모가 35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반면 주요 판매사였던 한국투자증권은 280억원이라고 보고 있다. 이 펀드는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자비스 및 헤이스팅스가 홈쇼핑에 출연해 물건을 판매하는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판매용 물건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려주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펀드들은 P2P 업체 중에서도 '팝펀딩'이라는 곳에 주로 투자됐다. 팝펀딩은 이른바 '동산 담보대출'로 주목을 받았는데 2018년 3월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혁신금융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팝펀딩은 홈쇼핑에 납품할 물건을 전혀 생산하지도 않은 데다 펀드로 조달한 자금을 돌려막기 등 명목으로 유용했다는 등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투자자들은 위 한국투자증권 관계자의 문자 메시지 등을 이유로 문제 된 펀드들이 한투 측 의뢰를 받아 설계된 OEM펀드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하게 타 운용사가 만든 상품을 판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투자증권이 상품 설계단계부터 개입한 정황이 있는 만큼 보다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헤이스팅스운용의 대표이사 등 4명의 등기이사 중 3명이 한국투자증권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헤이스팅스운용과 한국투자증권 사이의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누리의 구현주 변호사는 "펀드의 투자대상, 담보, 차주사의 과거 대출 이력 등과 관련해 투자자들을 기망해 펀드를 판매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의혹 제기에 한국투자증권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판매사로서 투자자 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해당 문자 메시지만으로 일련의 팝펀딩 펀드들이 OEM 펀드라고 단정 짓기엔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외부 운용사가 만든 상품을 기계적으로 아무 심의 없이 그냥 판매하는 경우는 없다"며 "판매창구가 해당 증권사가 되는 만큼 각 증권사마다 판매상품의 적절성 등을 심의하는 기구가 반드시 있는데 이 과정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증권사가 운용사의 펀드 조성 절차에 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일반 투자자에 비해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모상품의 투자자들인 만큼 충분히 위험고지를 받았을 것"이라며 "문자 메시지만 믿고 가입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냐"고도 했다.

이외에 한국투자증권은 팝펀딩 펀드 설정자 중 한 곳인 헤이스팅스 관련 펀드와 관련해서도 불완전 판매 등 논란이 일고 있다. 헤이스팅스운용은 선글라스 등 안경제품 무역 및 도매업체인 브라이언앤데이빗에 투자하는 대출채권 펀드를 40억원 규모로 출시해 한국투자증권 및 한화투자증권을 통해 판매했다. 브라이언앤데이빗은 최근 회생 절차에 들어가 이 펀드도 현재 환매가 중단됐다. 브라이언앤데이빗의 모회사인 세원아이티씨는 올 1월 회계감사에서 매출채권 실재성 및 회수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할 능력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한정' 의견을 받은 바 있다.

투자자들은 "브라이언앤데이빗에 투자하는 펀드는 지난해 10월부터 출시가 됐는데 이미 9월경부터 모회사(세원아이티씨)의 존속기업 불확실성 등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며 한국투자증권 측이 차주(브라이언데이빗) 등의 문제점을 인지한 상태에서 펀드를 판매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한국투자증권 측은 "브라이언앤데이빗과 세원아이티씨의 감사의견은 2019년 1월 판매검토 당시 적정했고 이후 2019년 10월에 상품을 설정해 판매한 것"이라며 "이에 대해서도 판매사로서 자금회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감사보고서 발간이 1년이 1회 있는데 한국투자증권으로서는 2019년 감사보고서가 2020년 올해 1월에 나오기 전에는 세원아이티씨에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올 들어 한국투자증권은 상품 판매와 관련한 잇따른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팝펀딩 펀드 외에도 최근 해외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출채권에 투자하는 디스커버리펀드와 관련해서도 불완전 판매 의혹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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