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신발부터 징역 확정까지…'국정농단' 최서원의 1320일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06.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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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 2016년 7월 미르재단 보도로 사건 조명…특검 수사, 헌정사 최초 탄핵 거쳐 판결 최종 확정

프라다 신발부터 징역 확정까지…'국정농단' 최서원의 1320일


2016년 7월 미르재단이 대기업 자금 486억원을 끌어모아 설립됐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여기에 개입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국정농단 사건의 일각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미르재단뿐 아니라 K스포츠재단에 대한 언론 취재가 본격화됐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정치권에서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씨는 그해 9월 독일로 떠나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이 11일 '국정농단' 사건의 주모자로 평가받는 최서원(옛 이름 최순실씨)에 대한 파기환송심 판결 징역 18년, 벌금 200억원, 63억원 추징을 확정 선고했다. 이로써 관련 첫 보도 이후 3년 11월 가량 이어진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일단락됐다.

'태블릿PC' 보도 이후 검찰 수사 본격화
독일 도피 이후 계속된 최씨와 언론의 숨바꼭질은 10월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끝났다. 최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기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 등 각종 기밀자료가 발견됐다. 다음날 박 전 대통령은 1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과거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이라며 최씨의 존재를 인정했다.



최씨도 독일에서 취재진을 만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점은 시인하면서도 "국가기밀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운영, 국정개입 의혹은 모두 부인했다.

시민단체들은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고발장을 접수했고,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특수부가 아닌 형사8부에 배당했다. 수사의지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존재를 인정하자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사진=홍봉진 기자/사진=홍봉진 기자
비밀리에 귀국 "죽을 죄를 지었다"
최씨는 10월30일 비밀리에 귀국한 뒤 다음날 검찰에 처음으로 소환됐다. 최씨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 조사실로 향했다. 취재진과 최씨를 데려가려는 수사관들이 엉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최씨가 넘어지면서 신발이 벗겨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씨는 그날 밤 검찰에 긴급 체포됐고, 3일 뒤 구속됐다.


이후 안 전 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까지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약 3주쯤 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KT 등 사기업 이권에 개입한 혐의,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 등을 적용해 세 사람을 구속기소했다.

그 사이 국회는 특별검사 수사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검 중앙수사부장 경력이 있는 고검장 출신 박영수 변호사가 특별검사에 임명됐다. 3일 뒤 당시 야3당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최종 가결되면서 특검 수사와 탄핵정국이 동시에 진행됐다. 최씨는 "음해세력의 기획폭로 때문에 이 상황까지 왔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특검 출석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특검은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받아 2017년 1월25일 최씨를 강제 출석시켰다. 이 자리에서 최씨는 카메라를 향해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특검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돕는 대가로 400억원대 뇌물을 받았다며 최씨와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죄로 기소했다.

그해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 탄핵은 헌정사 상 최초의 일이었다. 헌재에 증인으로 나와 "충인으로 남고 싶었다"던 최씨는 이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이화여대 학사비리 사건을 재판에 넘긴 특검은 2017년 2월28일을 끝으로 수사를 마쳤다. 사건은 다시 검찰 특별수사본부로 넘어왔다. 검찰은 롯데그룹, SK그룹 뇌물 사건 뇌물 액수를 592억원으로 특정하고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기소했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법정서 종종 분노 표출 "못 참겠다. 죽여달라. 빨리 사형을 시켜달라"
법정에서 최씨는 종종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면서 "못 참겠다. 죽여달라. 빨리 사형을 시켜달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딸 이야기에는 눈물을 보였다. 덴마크 사법당국이 정유라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최씨는 "외부접견이 금지돼 있어 딸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소통 통로를 한 군데라도 열어달라"며 눈물을 훔쳤다. 최씨가 걱정한 것과 달리 정씨는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모녀는 2018년 5월이 돼서야 구치소에서 상봉할 수 있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된 후 본인 사건과 병합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재판받는 것은 고통"이라며 따로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두 사람의 뇌물 사건을 병합했다. 결국 5월23일부터 두 사람은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아 재판을 받게 됐다.

최씨는 "이 재판이 박 전 대통령의 허물을 벗겨줬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를 외면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16일 재판 보이콧에 나설 때까지 최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최씨에 대한 1심 판결은 2018년 2월13일에 나왔다. 결심에서 검찰이 징역 25년, 벌금 1185억원을 구형하자 고성을 질렀던 최씨는 덤덤한 표정으로 선고에 임했다. 1심은 최씨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 72억원 추징을 선고했다.

2심 판결은 같은해 8월에 나왔다. 형량은 징역 20년에 벌금 200억원, 70억원 추징이었다. 최씨는 2심 최후진술에서도 이번 사건은 "특정세력의 기획적인 음모"라고 주장했다.

프라다 신발부터 징역 확정까지…'국정농단' 최서원의 1320일
파기환송, 두 번의 대법원 판결
이 사건은 최씨와 특검 모두 상고해 대법원으로 가게됐고.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부쳤다. 그 사이 조국 전 법무장관을 둘러싼 자녀 학사비리, 불법 재산증식 의혹이 불거졌다. 최씨는 본인 처지에 비하면 조 전 장관은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라면서 대법원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지난해 8월 나왔다. 전원합의체는 최씨에게 자금 요구를 받은 대기업 측에서 요구를 거부할 경우 기업활동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위험을 구체적으로 인식했어야 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씨가 자금을 대라고 요구한 것만으로 강요죄를 유죄로 인정한 잘못이 있고, 이 부분은 무죄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파기환송심은 이 판단에 따라 관련 혐의에 대한 무죄 판단과 함께 징역 18년에 벌금 200억원, 63억원 추징을 선고했다.

최씨는 이에 불복해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11일 이 판결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최씨에 대한 형사절차는 3년8개월 동안 5번의 판결을 거쳐 완전히 종료됐다. 최씨는 그동안 구치소에서 남긴 수기를 책으로 엮어 최근 발간했다. 제목은 '나는 누구인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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