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와중에 '기업 기죽이기' 입법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오문영 기자 2020.06.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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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고기영 법무부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공정 경제 입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6.10/뉴스1(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고기영 법무부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공정 경제 입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6.10/뉴스1


정부가 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을 재추진한다. 20대 국회에서 추진됐지만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무산된 법안을 초거대 여당 출범과 동시에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을 지나치게 옥죄는 것이라는 반발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속고발제 폐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이 10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 개정 재추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오는 11일부터 내달 21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2020.6.10/뉴스1(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이 10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 개정 재추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오는 11일부터 내달 21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2020.6.10/뉴스1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11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0일 밝혔다.



공정위는 개정안에서 가격·입찰 담합 등 경성카르텔 사건에 대해 전속고발제(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 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를 없앤다. 해당 사건은 검찰이 직접 수사·기소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은 상장·비상장 여부과 관계없이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인 경우로 통일한다. 현재는 상장사 30%, 비상장사 20%로 이원화돼 있다. 해당 기업이 지분을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 이에 따라 규제 대상 회사는 종전 210개에서 591개로 확대된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 30% 미만’인 삼성생명보험(총수일가 지분율 20.82%), 현대글로비스(29.99%), SK(주)(28.59%)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의 자회사인 삼성카드, SK실트론 등 134개 기업도 규제망에 들어온다.


현재 규제 대상인 기업의 자회사 217개가 새롭게 편입된다. 삼성웰스토리, 제일패션리테일, 서울레이크사이드, 현대첨단소재 등이 대표적이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도 금지된다.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신규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은 강화(상장사 20%→30%, 비상장사 40%→50%)된다.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총수는 국내 계열사에 출자한 해외계열사의 주식소유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자산총액이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인 경우로 정한다.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추진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고기영 법무부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공정 경제 입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6.10/뉴스1(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고기영 법무부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공정 경제 입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6.10/뉴스1
이날 법무부도 △다중대표소송제도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다중대표소송제란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과실 등으로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주회사 지분의 1% (상장사 0.01%)만 보유하면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법무부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통해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사적인 이익 추구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한 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선출단계에서부터 일반 이사와 분리해 뽑도록 하는 제도다.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고 법무부는 밝혔다. 현행 상법은 전체 이사를 주총에서 일괄선임한 이후 이들 중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될 이사를 별도의 주총에서 다시 선임하도록 한다.

아울러 개정안은 전자투표를 실시해 주주들의 총회 참여를 높인 회사들에 대해 주총 결의 요건을 완화해주도록 했다. 상법 368조에 따르면 주총에서 안건을 결의되기 위해선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법무부는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경우 ‘출석 주주 의결권 과반수’ 만으로 의결이 가능토록 했다. 발행주식 총수요건을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또 현행 상장회사 감사위원회 위원의 3% 의결권 제한 규정은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최대주주와 나머지 주주, 2조원 이상 상장사와 나머지 상장사를 분리해 다루고 있는데, 개정안은 이같은 구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등을 합산해 3%, 일반주주는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일원화했다. 재계가 추진을 반대해온 제도 중 하나인 집중투표제는 이번 법안에서 빠졌다.

재계 ‘기업옥죄기’ 우려 …투기자본 악용 우려도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이 10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 개정 재추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오는 11일부터 내달 21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2020.6.10/뉴스1(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이 10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 개정 재추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오는 11일부터 내달 21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2020.6.10/뉴스1
이들 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상정됐지만, 야당과 재계의 반발 때문에 별다른 논의를 거치지 못하고 임기 만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됐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이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상장사협의회 등으로부터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친 끝에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지만 재계 입장은 다르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할 경우 공정위와 검찰의 ‘중복조사’ 가능성은 물론 두 기관이 ‘기업 옥죄기’ 경쟁에 나설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또 신규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지분 요건 강화의 경우 지주사 체계 전환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지속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총수 일가 등 대주주의 의결권 등을 제한하는 조항은 투기자본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본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투기자본의 ‘기업 흔들기’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또 외국계 투기자본은 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악용, 이른바 ‘지분쪼개기’로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소버린자산운용과 SK 경영권 분쟁 당시에 소버린은 보유하고 있던 14.99%의 지분을 5개로 쪼개는 방식으로 모든 의결권을 행사했다. 반면 SK 최대주주 측은 제한된 3% 의결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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