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검찰 'A4 30쪽' 전쟁, 시민위원을 설득하라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20.06.1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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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택시기사, 자영업자, 회사원 등 평범한 시민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판단하도록 할지 여부를 11일 부의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검찰과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20만쪽에 달하는 사건 개요를 A4 용지 30쪽 미만에 담아야 한다. 지난 8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8시간 이상 걸린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검찰측, '영장재판부 재판 필요성 언급' '관련 재판 결과' 등 내세울 듯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수사심의위 신청인인 이 부회장과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에 대해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며 수사심의위 소집이 필요없다는 점을 주장할 예정이다. 그 근거로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이 "기본적 사실관계가 소명됐다"며 기소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심리한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당시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혐의사실에 대해 아무런 소명이 없었다면 판사가 재판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검찰측 해석이다.

이들의 범죄 혐의가 각종 연관 재판에서 이미 유죄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들에게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을 유리하게 산정하기 위해 시세를 조정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바꿔 장부상 이익을 조작하는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이를 인지하고 지시하거나 관여한 혐의가 있다고 본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에 대해선 금융감독원의 분식회계 판단에 따른 고발에 의해 수사가 이뤄진 부분이다.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에 대한 시세조정에 대해서도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판결이 존재한다. 일성신약의 주식매수 가격변경 신청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을수록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의 이익이 커진다"며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이 이건희 회장 등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결문에 제시한 바 있다. 아직 대법원 확정 판결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확보한 물증으로 혐의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를 위한 이 부회장의 관여에 대해선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법원이 뇌물죄를 인정해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 부회장측, '무리한 수사' '기업 경영 피해' 등 주장할 듯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이 1년 8개월 간 장기간 수사를 진행하고도 구속 사유에 해당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판단을 받겠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장기각 사유의 핵심적인 내용은 합병과 삼바 화계처리 과정의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있었던 것은 알겠지만 이 부회장의 형사책임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즉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 부족을 에둘러 표현한 것인데 검찰이 이를 법원이 기소를 인정한 것이라 주장한다면 영장판사의 진정한 의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측은 앞서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하면서 "검찰이 구성하고 있는 범죄혐의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며 "국민의 시각에서 수사의 계속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심의해달라"고 밝힌 바 있다.

부의심의위에서도 삼성의 회계 의혹과 합병, 그리고 승계를 둘러싼 검찰의 수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사안인데, 검찰이 무리하게 범죄로 예단하고 수사를 밀어붙여 개인 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측이 기소 여부를 수사심의위에서 판단받겠다며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음에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해 제도를 무력화했다며 검찰이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데 대한 비판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공소유지가 불가능한 사건을 면피성으로 기소하는 것을 막다는게 제도의 취지인데 당사자가 심의를 신청했음에도 구속영장까지 청구하고 심의조차 회피한다면 이런 제도를 만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검찰이 혐의입증에 자신이 있다면 수사심의위 심의를 피해선 안된다는 주장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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