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계좌개설, 초간단 대출… 위조범에 농락당한 비대면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양성희 기자, 전혜영 기자 2020.06.0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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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위조 운전면허증으로 비대면 계좌를 개설하고 1억원 대출까지 받아간 사건으로 금융권의 허술한 비대면 관리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인터넷은행의 신규 고객 경쟁과 편의성만 강조한 대출 과정 등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머니투데이 8일 16시8분 '[단독]'위조신분증'에 뚫린 비대면금융…나도 모르게 1억 털렸다' 참조)

사건의 발단은 범인이 위조된 운전면허증으로 한 통신사에서 알뜰폰을 개통한 뒤 증권사와 인터넷은행 케이뱅크 등에서 6개 계좌를 개설한 데서 시작했다.



금융결제원 ‘NO’ 했지만 케이뱅크 계좌 개설
증권사에서 개설한 5개 계좌도 문제지만 케이뱅크가 사기 대출의 계좌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특히 은행권은 비상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통장 개설을 위해 신분증을 제출하면 사본을 금융결제원으로 보내고 금융결제원은 정부 DB를 활용해 신분증 진위여부를 가려낸다”며 “기계가 식별을 하기 때문에 오류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케이뱅크도 위조범 운전면허증 사본을 금융결제원에 보냈다. 금융결제원은 위조범 운전면허증이 원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케이뱅크에 전달했다. 케이뱅크는 그러나 면허증 발급 일자, 면허 번호 등 사진을 제외한 면허증 내 모든 정보가 일치한다는 데만 주목했다. 새로 개통한 휴대폰 인증을 거쳐 결국 통장을 개설해줬다.



위조범은 비대면으로 대출을 받을 때 타행 계좌로도 가능한 점을 노렸다. 범인은 광주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해 케이뱅크 계좌로 받았다. 피해자 명의의 광주은행 계좌는 필요 없었기에 개설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광주은행의 계좌가 필요했다면 로그인, 보안카드·OTP(일회용 비밀번호) 숫자 입력 등 절차를 거쳐야 해서 사기 범행이 불가능했을 수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신분증이라는 게 세월이 지나면 손상이 많이 가기 때문에 제대로 식별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휴대폰 본인 확인 같은 과정에서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계좌를 개설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인증서 들이민 위조범, 속수무책 대출
위조범에게 4000만원을 대출해준 광주은행은 위조범이 버젓이 본인 명의 휴대폰과 공인인증서, 대출 받을 계좌를 내밀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위조범은 비대면 계좌를 연 한 증권사에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았다. 계좌를 새로 뚫을 때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공인인증서 발급이 가능하도록 편의성을 높인 최근 금융사들 시스템이 독이 된 것이다.


은행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광주은행의 경우 안드로이드 휴대폰에서 타 기관 공인인증서를 불러올 때 등록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모바일에서 자동으로 뜨는 인증서를 클릭하면 그만이다.

광주은행은 위조범으로부터 본인 확인을 위해 위조된 운전면허증을 전송받았다. 그리고 면허증을 발급해준 도로교통안전공단에 면허증 내 각종 정보를 입력한 뒤 전송했다. 은행은 공단으로부터 정보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광주은행 관계자는 “공인인증서는 대출 과정에서 넘어야 할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관문인데 누군가가 타인 인증서와 OTP(일회용 비밀번호)를 모두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보험금 담보 대출도 척척...한화 “전면 재점검”
한화생명은 피해자 보험금을 담보로 위조범에게 7400만원을 대출해줬다. 한화생명은 ‘한화생명보험월렛’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시 휴대폰인증, 공인인증, 신용카드 인증 방식 등을 활용해 본인 확인을 한다. 대출지급 통장도 본인 명의의 금융계좌로만 활용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신규 등록 계좌로의 송금서비스를 중단하고, 보험료 납입 계좌로만 송금이 가능하도록 조치한 상태다. 또 비대면 금융 거래에 대한 시스템과 업무 처리 규정을 재점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 점검을 통해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을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비대면채널을 통한 본인확인, 정보조회와 변경, 지급처리 등 전반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재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며 “만약 미흡한 점에 발견되면 즉각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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