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넘겨받은' 아시아나 채권단…HDC현산에 뭘 내줄까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20.06.09 15:50
글자크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9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채권단의 고심이 깊어졌다. HDC현산이 표면적으로 "인수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더 나은 조건으로 조정되지 않는다면 인수전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는 일종의 압박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당초 오는 27일까지 '인수 의지를 밝히라'고 요구했던 채권단으로서는 공을 다시 넘겨받았다. 양측 모두 먼저 계약을 깨는 선택은 부담스러운 만큼 앞으로 매각 조건을 둘러싼 신경전이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HDC현산 "인수의지 변함없다, 재협상 필요"…채권단 '신중'
HDC현산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 관련 중대한 상황에 대한 합리적 재점검과 인수조건에 대한 원점에서의 재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경으로는 코로나19 사태와 정부 지원에 따른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 변화 등을 꼽았다. 코로나19로 항공업 전망이 나빠졌고, 정부 지원으로 빚도 늘어난 만큼 기존의 인수 방법과 시기를 고집하는 건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채권단 한 관계자는 "반가운 소식"이라며 "2분기 국적 항공사의 화물 부문 실적이 좋고,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여객 부문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기설'까지 무성했던 HDC현산이 적어도 인수 의지를 유지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목이다.



다만 채권단은 '원점 재점검·재협상' 요구에 대해선 신중한 표정이다. 그간 HDC현산의 '침묵'이 길면서 거래가 깨질 상황도 염두에 뒀지만, 일단 인수자가 의지를 밝힌 만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상황 변화 등을 고려해 재협상도 가능하다는 기류다.

거래 종료 시점을 연말로 미루는 방안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과 HDC현산 모두 계약상 "인수거래 종결기한(Long Stop Date) 연장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 말 주식매매계약(SPA)에서도 거래 종결을 오는 27일로 정했지만, 해외 기업결한승인심사 등 다양한 선결 조건에 따라 최장 오는 12월 27일까지 종결 시한을 늦출 수 있도록 했다.

딜 클로징 연기 무난할듯…매각 조건 변경 '난제'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한 채권단 지원자금 처리 방안, 가격을 포함한 매각 조건 변경 등 거론되는 과제는 어느 하나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채권단은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항공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1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지원 자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사다.


실제로 HDC현산은 이날 자료에서 계약 체결 후 발생한 상황으로 "추가 차입 규모의 산정 근거, 차입금의 사용 용도, 차입 조건, 상환 계획, 영구전환채로의 변경 조건, 영구전환사채의 주식으로의 전환 조건" 등을 재협상·재점검이 필요한 중요 배경으로 거론했다.

특히 채권단 지원 중 5000억원은 이달 말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영구채 인수 형식으로 투입하는데, 이는 완전자본잠식 위기에 놓인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출자 전환 시 채권단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이 늘어나는 만큼 HDC현산으로선 거부감이 클 수 있다. 이에 채권단은 영구채의 전환 조건 또는 지원 자금의 만기·금리 등 상환 계획에 '융통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거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구주·신주 매입 이슈는 더욱 난제다. 당초 양측은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구주)를 3228억원에 사고, 2조1771억원 가량의 유상증자(신주)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SPA를 체결했다. 그러나 HDC현산은 지난 4월 7일로 예정된 유상증자 납입 일정을 연기했고, 4월30일이었던 구주 인수일도 또 다시 연기했다.

우선 코로나19 사태의 한가운데 증자를 단행하는 점은 HDC현산에 부담스럽다는 평가다. 증자로 기껏 재무상태를 개선했는데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자본금을 까먹게 되고, 만에 하나 채권단의 추가 지원이 출자전환 등으로 이뤄지면 '새 주인'의 지분율이 희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상황이 어느 정도 회복기에 들어선 뒤까지 증자 시기를 미루는 게 HDC현산으로선 유리하다.

구주 가격 역시 이슈다. SPA 당시 구주는 주당 4700원을 적용했는데, 아시아나 주가는 한때 300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최근에야 4000원대를 회복했다. HDC현산이 가격 인하를 주장할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는 금호그룹 측의 동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채권단으로선 딜이 깨지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HDC현산을 제외한 다른 원매자를 찾기 어려운 데다 매각 무산은 산은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채권단과 HDC현산의 재협상이 공식화 된 것"이라며 "서로 유리한 협상 조건을 점유하려는 줄다리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