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적신호, 완전원소 철(鐵)이 멈췄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6.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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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완전 원소 철의 생산 라인이 멈췄다.

철(Fe)은 우주에서 가장 안정적인 원소다. 더 이상 합쳐지거나 나눠지기를 거부하는 원소이기도 하다. 원소기호 1번인 수소(H)에서 출발하거나 자연상태의 마지막 원소인 92번 우라늄(U)에서 역으로 출발하더라도 그 귀착지는 철(원소기호 26번)이다.



수소가 뭉치고 뭉쳐 별이 되는 과정의 종점이기도 하다. 수소가 뭉쳐 헬륨이 되고 다시 뭉쳐 탄소와 질소, 산소가 되고 결국 철에 다다른다. 수소로만 뭉친 태양이 뭉치고 뭉치면 철로 된 항성이 되는 것이다. 우라늄이 붕괴되고 붕괴되는 과정을 거쳐 안정단계의 물질로 가는 종착지도 철이다.

별의 진화과정에서 철은 1차 종점이다. 우주의 기본 시스템으로는 철 이상의 원소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런 별이 초신성의 폭발과 같은 엄청난 힘에 의해서만이 그 이후의 물질인 우라늄까지 만들어지지만, 이들은 핵분열을 통해 철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우리 몸속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주성분인 철분도 이 우주 탄생의 과정에서 생성된 어느 별의 잔해이며, 지금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철이나, 건물을 올리는데 사용된 철근구조물도 약 45억년 전 지구가 형성될 때 어느 별로부터 온 그 철의 일부다.

오늘 출고된 자동차도 최소 45억년 이상의 역사를 담고 있는 셈이다. 단단하고, 가장 안정적이어서 우리 일상에서 뼈대를 이루는 것이 철이다.

우리 몸속의 헤모글로빈이 혈관 구석구석 세포까지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철이 산소와 친화력이 좋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철광석이 산소가 붙어 있는 산화철(FeO, Fe3O4, Fe2O3)의 형태인 이유다.


이런 철에서 산소를 떼어내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제련이 포스코나 현대제철, 동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 기업들이 하는 일이다. 인류 진화의 상징적인 철기시대를 이끌었고, 여전히 현 인류의 중심 뼈대인 그런 철의 생산이 멈췄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글로벌 팬데믹의 영향으로 사람의 이동이 멈추면서 자동차도 멈추고, 생산도 멈추자 철의 생산도 타격을 입었다.

국내 최대 제철기업인 포스코가 오는 16일부터 일부 생산설비의 가동을 중단하고 유급휴가에 들어간다고 밝혔고, 앞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도 지난 1일부터 열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철강산업은 글로벌 경제의 바로미터다. 배를 만들려고 하면 강판이나 후판 주문이 미리 이뤄지고, 부동산 경기를 가늠하려면 철근수요를 파악하면 된다. 전자산업은 프리미엄 철강 제품의 수요를 보면 알 수 있고, 자동차 시장의 경기는 고강도 강판 수요가 그 잣대다.

용광로의 멈춤은 경제 성장의 멈춤을 의미한다. 이는 당장 경제 전망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지난 8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2%로 급격히 떨어뜨렸다.

이런 전망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다. 세계은행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3배가량 급격한 경기침체라며, 더 위험하게는 -8%까지 역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K-바이오나 반도체 산업 등 일부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지만, 산업의 바로미터이자 근간인 철 생산의 중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의 멈춤이 경제성장의 중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포스코 등의 일시 생산 중단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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