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 대신 시간을 더 들이는…” BTS 졸업 축사가 남다른 이유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20.06.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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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분 간 이어진 유튜브 '가상 졸업식' 축사…작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언어들

8일 유튜브로 중계된 BTS(방탄소년단)의 가상 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 축사. /사진=유튜브 캡처<br>
8일 유튜브로 중계된 BTS(방탄소년단)의 가상 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 축사. /사진=유튜브 캡처


몇 해 전만 해도 예쁘고 멋있는 아이돌 그룹이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는 비슷했다. “용기와 꿈을 가지고…”로 시작해 “넌 할 수 있어…” 같은 자신감으로 맺는 그들의 언어는 허무하진 않지만,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동기를 부여받기 어려웠다.

같은 표현이라도 좀 더 고민의 흔적을 안고 진심으로 공감되는 경험의 언어를 선사해줄 수는 없었을까.



그룹 BTS(방탄소년단)가 8일 오전 4시(한국시간) 유튜브로 중계된 가상 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Dear Class of 2020)에서 던진 축사는 이전의 아이돌 언어와 달랐다.

최고의 위치에서 여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작은 용기부터, 고립된 환경에서 보는 긍정의 가치들, 모두가 나를 비난해도 칭찬해줄 단 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까지 한 번 듣고 터는 소비용 언어가 아닌, 필터링 과정에서 자꾸 되 내이게 하는 소장용 멘트로 감각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아직도 서툰 20대”, “섬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 나 자신의 틀을 깨는 것”, “서울이라는 도시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면…”

20대 아이돌 그룹에게서 이런 표현을 듣는다는 건 가슴 뭉클하다. 이미 우리와 다른 잘난 이들이 주는 그렇고 그런 위로가 아니라 ‘너와 다르지 않다’는 그 평범한 상황을 특별한 묘사로 이해하게 하는 공감이 서려있다. 가식을 배제한, 몸으로 느낀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BTS(방탄소년단)의 'Black Swan' MV 1억뷰. /사진=유튜브 캡처BTS(방탄소년단)의 'Black Swan' MV 1억뷰. /사진=유튜브 캡처
리더인 RM은 축사에서 “사람들은 저희에게 많은 것을 이뤘다고 하지만 저희는 여느 또래들과 마찬가지”라며 “아직 학사모를 벗지 못한 채 날 것의 세상과 마주하는, 아직도 서툰 20대”라고 했다.


12분짜리 영상에서 RM은 “나와 우리 멤버들이 하는 얘기가 어떤 식으로든 위로와 희망이 되고 영감이 되면 좋겠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중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걸어뒀다며 “그때의 두려움과 벅찬 마음이야말로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전했다.

막내인 정국은 “남준(RM)이 형과 다르게 먼 길을 걸어온 거 같다"며 "나를 믿고 멤버를 믿고 세상을 믿고 지금 이 자리에 멤버들과 서 있기에 여러분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끊임없이 달려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게 두려웠다고 진은 자신의 ‘청춘’을 소개했다. 그는 “때론 앞서가는 친구들이 신경 쓰였지만, 걸음이 느린 대신 남들보다 시간을 조금 더 들이는 습관을 갖게 됐다”며 “춤 연습을 하더라도 멤버들보다 며칠 앞서 준비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여유를 갖고 느려도 한 걸음 성실이 내디딘다면 예전에 몰랐던 소중한 것들이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슈가는 “요즘 한참 달리다 넘어진 것 같은 기분”이라며 “그리도 다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섬 안에 갇혀버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섬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 나 자신의 틀을 깨보는 것"이라며 "여러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나도 방탄소년단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지민은 “여기 한국이라는 나라, 서울이라는 도시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면 좋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고, 제이홉은 “음악하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딱 한 번만 더’라는 생각으로 나를 일으켜 세운다”고 했다.

BTS(방탄소년단)의 'IDOL'(Feat. Nicki Minaj) MV 1억뷰. /사진=유튜브 캡처BTS(방탄소년단)의 'IDOL'(Feat. Nicki Minaj) MV 1억뷰. /사진=유튜브 캡처
선택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20대로 진입한 청춘에게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이기도 하다. 제이홉은 “여러분들도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대로 가면 실패하진 않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될 것"이라며 "그럴 때는 내 인생을 이끄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꼭 기억하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재능 대신 즐거움에 빠져 이 자리까지 왔다는 뷔는 “졸업을 앞두고 무얼 해야 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진심에 기대 보라. 지금은 힘들어도 그 끝자락 어딘가에 기회와 행운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RM은 “우리 마음 어딘가에 불안감과 상실감이 아직 남아있다”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마음을 추스르고 음악을 통해 모두 연결돼 있음을 느끼고 서로에게 웃음과 용기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 팝스타 비욘세,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등이 연사로 참여했고 저스틴 팀버레이크,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등이 스페셜 게스트로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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