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원에 숨넘어가는 건전성…은행들 영구채 봇물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2020.06.0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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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


우리금융지주 (14,230원 ▲30 +0.21%)는 지난 2월 4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일명 영구채를 발행한 지 4개월 만인 이달 영구채 3000억원을 추가로 발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후순위채권을 포함해 1조9500억원 자본 조달에 이어 상반기에만 벌써 7000억원이다.

코로나19로 서민금융 지원 확대에 의한 재무건전성 악화 가능성에 금융지주들과 소속 은행들이 이처럼 영구채, 후순위채를 발행하며 대규모 자본확충에 나서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와 해당 지주사 소속 은행들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발행한 영구채, 후순위채권 등 조건부자본증권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섰다.

조건부자본증권은 보통주나 이익잉여금처럼 자기자본에 들어가지만 일반적인 주식처럼 의결권이 없다. 증자를 하려면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고 증자 후에는 그만큼 주주들의 주권이 강해진다. 반면 조건부자본증권은 정해진 보유자에게 정해진 이자만 주면 된다. 조건에 따라 만기 전에 발행사가 되찾아올 수도 있다.



금융지주·은행들이 조건부자본증권 발행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BIS(국제결제은행) 비율과 관련이 있다. 코로나19로 서민금융 지원을 강화하라는 정부 시책에 따르면서 부실 대출 위험이 그만큼 높아지고 BIS 비율 역시 하락할 상황에 몰려서다.

BIS 비율은 자기자본으로 대출이나 투자를 했을 때 떼일 수 있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지표다. 비율이 높을 수록 안정적인 데 금융감독원은 대형 금융지주와 은행 BIS 비율 하단으로 11.5%를 설정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대 지주의 3월 말 현재 BIS 비율은 11.79~14.06%였다. 은행의 경우는 14.77~15.54%로 모두 안정권이다. 국내 금융 지주 전체 BIS 비율은 지난해 말 대비 0.14%p, 은행권은 0.54%p 떨어졌다. 경기에 따라 시중 유동성 조절 장치인 경기대응 완충자본(최대 2.5%)을 적용하면 BIS 비율 하단은 14.0%로 뛰므로 여유로운 건 아니다.


무엇보다 얼마 전 시행된 1.5% 초저금리 소상공인 대출의 만기가 1년에 불과한데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연체율 상승 등 부실 위험이 높다. 은행들은 이 현상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은행들이 정부 압박에도 불구하고 소상공인 대출에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지난달 18일부터 2차 소상공인 대출이 시작됐지만 우리·NH농협은행 등을 제외하고 1차 대출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자본건전성을 우선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조건부자본증권이 절차가 간소하고 주주 저항이 적다는 이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렇게라도 부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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