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금 손댔다' 4년전 엉터리 보도 떠올린 삼성의 호소문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06.0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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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성이 '언론인 여러분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라는 이례적인 호소문을 통해 언론의 신중한 보도를 당부했다.

최근 정확하지 않은 검찰발 미확인 보도로 어려움을 겪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삼성 때리기'를 의도된 특정목적으로 하지 말고, 제대로 된 보도를 해달라는 얘기다.

이런 호소문을 낸 이유는 과거 북한발 뉴스처럼,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여론형성을 통해 사실처럼 각인되는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밀어준 후 59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던 게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의 일이다.

2016년 그 보도 이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삼성의 그 어떤 논리도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유는 국민들의 노후자금에 손을 댔다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첫 보도는 "이 부회장의 손실은 적은데, 국민연금은 이 부회장을 밀어주다가 더 큰 손실을 입었다"는 재벌 시장조사업체의 잘못된 데이터를 한 매체가 '5900억원 손실'이라는 엉터리로 해석한 데서 출발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합병 후 추가로 주식을 더 샀고, 국민연금은 합병 후 일부를 팔아 보유주식수가 차이가 나는데, 이를 계산에 넣지 않고, 합병전과 합병 후의 보유주식 총액만 단순히 따져 계산한 오류였다.

국민연금은 팔아서 없어진 주식까지 손실에 합쳐서 5900억원 손실이 났다고 썼고, 이 부회장은 뒤에 산 주식까지 합쳐 손실이 2000억원대로 덜 난 것처럼 엉터리로 계산한 것이다. 그 보도 직후 기사는 삽시간에 퍼졌고, 국회를 비롯해 여론의 삼성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실제로는 당시 이 부회장이 주가하락으로 5582억원을 잃는 동안 국민연금은 2252억원의 손실에 그쳐 이 부회장의 손실금액이 더 컸다. 이는 보유 주식수의 차이로 손실률은 둘 다 -11.17%로 같았다.

이런 프레임이 씌워진 후에는 이를 바로잡기 불가능했다. 우리의 뇌리에 가장 이해하기 쉽게 프레임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 엉터리 보도 후 '이재용은 국민의 노후자금에 손댔다'는 원죄의 프레임에서 더 이상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재벌조사업체는 삼성 때리기의 대표적 수혜주였고, 지금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당시 그 회사 대표에게 숫자 계산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줬었다.

그는 "데이터를 잘 줬는데, 기자가 해석을 잘못했다"며 "데이터의 비교 기준이나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한번 악화된 여론은 되돌리기 불가능했다.

삼성이 호소문을 낸 이유는 최근에도 일부 매체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을 갖고 여러 억측들을 쏟아낸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영업이익이나 자산규모로 볼 때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라는 논리다.

지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를 보면 이 논리도 틀렸지만, 어쨌든 상장기업간 합병비율 산정방법은 초등학생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법에 정해놨다.

법을 따르지 말고 자산기준으로 합병비율을 달리해달라고 했던 게 헤지펀드 엘리엇의 주장이었다. 엘리엇은 삼성때리기 여론을 제대로 활용해 여론몰이를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합병이 성사돼 실패한 케이스다.

법대로 했다고 주장하니, 이제는 주가를 조작해 합병 비율을 맞췄다는 논리를 갖다 댄다. 수주 보도내용이나 자사주 매입을 주가조작으로 몰아세운다면, 자사주를 산 기업이나 IR을 하는 기업들 대부분은 주가조작으로 조사를 받아야할 대상이다.

검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갖가지 정보들이 '받아쓰기' 형식으로 언론을 통해 삼성 때리기에 이용된다는 게 삼성의 하소연이다.

동양방송에 처음 입사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은 언론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그는 "삼성을 세 번 제대로 비판하는 언론이 있으면 100억원이라도 지원하라"며 "그것이 삼성이나 국가가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강조했었다. 이 회장은 제대로 된 비판은 보약이자 예방주사와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삼성이 호소문까지 내며 최근 언론의 보도 행태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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