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의 상징으로 떠오른 '오페라의 유령'

박병성(공연 평론가) ize 기자 2020.06.0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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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중단된 가운데 한국서 유일하게 상영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지금까지 올라간 뮤지컬 중 가장 위대한 한 편을 꼽으라면 아마도 가장 많은 득표를 하는 작품은 '오페라의 유령'일 것이다. 전 세계 공연계 심장과 같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30년 넘게 공연한 유일한 작품이고, 티켓 매출액만 60억 달러를 넘겼으며,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종영을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던 '오페라의 유령'이 지난 3월 코로나19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가 문을 닫으면서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연계가 코로나19의 치명타를 맞았다. 브로드웨이는 6월까지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으나 올해 안에 다시 문을 열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일하게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지난해 12월 부산부터 공연한 '오페라의 유령'은 서울 공연에서 앙상블 배우 중 확진자가 발생해 잠시 공연이 중단되었으나 철저한 방역을 거쳐 공연을 재개했다. 현재 '오페라의 유령' 공연장에서는 발열 체크와 문진표 작성은 물론 분사형 소독기를 마련해 손뿐만 아니라 전신 소독이 가능하게 했다. '오페라의 유령'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한국이 유일하게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는 나라이며, 영국 문화부는 한국의 대응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오페라의 유령'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가는 K-방역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번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은 7년 만에 이루어진 공연이다. 이 작품은 전 세계 프로덕션이 동일한 작품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한 공연은 물론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라이선스 공연까지도 모든 무대와 의상을 공수해오고, 해외 오리지널 스태프들이 참여한다. 그만큼 제작비가 높은 공연이기 때문에 자주 기획되지 못한다. 이번 프로덕션은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1막 마지막 장면 추락하는 샹들리에의 속도를 높여 긴박감을 더하고, 크리스틴이 아버지 무덤가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유령의 불꽃 무기를 보완하는 등 소소한 변화를 주었다.

'오페라의 유령'이 지난 30년 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대, 의상, 노래, 드라마 모든 부문에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클래식 집안에서 자란 웨버는 데뷔작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는 록 오페라를 선보였지만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장기를 발휘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팝클래식으로 담아냈다. '오페라의 유령'의 명곡들 ‘The Phantom of the Opera’, ‘Music of the Night’, ‘Think of Me’, ‘Masquerade’ 등은 광고나 드라마 BGM, 행사 음악 등으로 애용돼 뮤지컬을 보지 않은 이들조차도 익숙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무대 역시 1980년대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놀라운 무대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유령의 테마곡 ‘The Phantom of the Opera’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등불을 단 나룻배가 미끄러지며 들어오면 일렁이는 촛불들이 가득한 지하 은신처가 펼쳐진다. 1막 도입부에 유령이 크리스틴을 지하 은신처로 데려가는 장면은 신비로우면서도 로맨틱한 비주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샹들리에 추락 장면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의 시그니처다. 수없이 들었고 여러 번 경험했지만 대형 샹들리에가 눈앞에서 떨어지는 광경은 볼 때마다 놀랍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오·페라의 유령'을 고전으로 만든 것은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유령의 캐릭터와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이다. 작곡가이자 연금술사이고 철학자이며 건축학자인 유령은 테마곡 ‘The Phantom of the Opera’처럼 카리스마 넘치고 좌중을 압도하는 능력을 가진 절대적이고 신비스런 인물이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가면 속에 아픔을 숨긴 상처가 유령을 더욱 매혹적인 인물로 만든다. 유령은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들게 하면서도 연민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의 유령'의 처음 등장하는 음악이 웅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테마곡인 ‘The Phantom of the Opera’로 생각한다. 작품은 유령이 사라지고 10여 년 후 경매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경매로 나온 원숭이 오르골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음악이 바로 2막 가면무도회 장면에 나오는 ‘Masquerade’이다. 2막 가면무도회 장면에서는 화려한 의상과 무대로 현혹되어 노래의 의미를 놓치기 쉽지만 실제 이 곡은 화려함 뒤에 숨은 상처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곡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왜 웨버가 서곡에 앞서 ‘Masquerade’를 선보였는지 이해가 된다.

박병성(공연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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