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하는 철강-조선…'카타르 잭팟'에도 건배 못한다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0.06.04 17:00
글자크기
밀당하는 철강-조선…'카타르 잭팟'에도 건배 못한다


"당연히 우리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몇 년 뒤에나 좋을겁니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32,700원 ▼600 -1.80%), 삼성중공업 (9,630원 ▲90 +0.94%) 등 국내 조선 '빅3'가 100척이 넘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을 카타르에서 수주한 것을 두고 한 철강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사상 초유의 대규모 선박 계약 덕에 후판(선박을 건조할 때 쓰이는 두께 6mm 이상 철판) 판매 급증이 예고됐지만 철강업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선박 계약과 건조, 이에 따른 후판 판매까지의 '시차' 탓에 당장 실적 개선이 절실한 업계 갈증을 해소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철강·조선업계 간 올 상반기 후판가격 협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한 협상은 6월 들어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대한 가격을 묶어두려는 조선업계와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려는 철강업계 샅바 싸움만 치열한 상태다.

A철강사 관계자는 "100척 이상 계약 소식이 전해진 뒤로도 가격협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로 분위기가 별로 달라진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 100척 이상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올해와 내년 후판 공급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 통상 조선사가 선박을 수주하면 그 시점부터 설계를 거쳐 필요한 후판 주문을 1년 뒤쯤 넣게 된다.

게다가 이번 카타르 계약은 일종의 '가계약'으로 수주 시점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다. 카타르 선박의 건조 시점을 이르면 내년 말 정도로 보고 있는 조선업계의 추정을 감안하면 후판 물량에 대한 가격 협상도 1년 반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철강업계의 속은 타들어간다. 수년간 업황 둔화에 시달린데다 올해 코로나19(COVID19) 후폭풍까지 겹친 포스코, 현대제철 (31,500원 ▼550 -1.72%), 동국제강 (8,210원 ▲60 +0.74%) 등은 실적 방어가 절실하다. 업계 매출의 15% 안팎을 차지한 후판 가격을 끌어올리는게 필요한 이유다.


현재 조선용 후판 가격은 톤당 7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2011년 110만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최악의 수주절벽을 겪은 2016년의 50만원 선보다는 다소 올랐지만 현재 철광석 가격 상승 등 원가 부담을 감안하면 더 끌어올려야 후판 마진을 맞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일각에선 조선 시황이 최악일 때 후판 가격을 동결하며 이미 '고통분담'을 일정 부분했다는 기류도 형성돼있다.

조선업계도 할 말은 있다. 최근 들어 수주 상황이 개선됐지만 완전히 회복된 상황은 아니다. 현재 실적도 철강업계보다 부진하다. 5년 연속 적자를 낸 삼성중공업의 경우 올해도 적자 탈출 여부가 불투명하다.

후판은 선박 건조비용의 약 20%를 차지한다. 후판 가격이 1% 오르면 조선사 영업이익은 최대 3%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가격 방어에 조선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차원에서 철강업계가 이례적으로 조선사의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후판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입장을 냈을 정도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카타르 낭보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당장은 상황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며 "당분간 소폭 인상과 동결을 오가는 지난 2~3년간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