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 속 거미줄…시장 성장세 급속도
해저케이블 시장이 급성장하는 배경은 전세계적인 전력사용량 급증이다. 전력망이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으면서 최근에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국가간 전력망 연계사업 구상까지 나왔다. 한국을 포함해 러시아·중국·몽골·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전력망을 연계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구상이 대표적이다. 국경과 바다를 넘어 국가 간 전력망을 연결하려면 해저케이블이 필수다.
풍력 발전을 비롯해 신재생 에너지 개발 붐도 해저케이블 시장 확대로 이어진다. 해상 풍력 발전은 2018년까지 전세계적으로 23GW(기가와트)가 설치됐다. 2030년이면 200GW로 10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바다 한 가운데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해상 풍력 발전의 성장은 바다에서 생산한 전기를 육상으로 보내는 해저케이블 시장 성장과 같은 말"이라며 "해상 풍력 시장이 연평균 20%씩 성장하고 있는데 해저케이블 시장도 이와 발맞춰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저케이블 70년사…국내에도 200㎞ 매설
통신용 해저케이블은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지만 송전용 해저케이블은 2008년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를 연결한 해저케이블 580㎞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 가장 깊게 매설된 해저케이블은 이탈리아 근해의 수심 1650m에 매설된 케이블이다.
국내에서는 1979년 전남 신안군 장산리에서 자라섬 사이에 놓인 1.7㎞ 길이의 케이블이 첫 해저케이블이다. 일본업체가 맡았던 이 프로젝트 이후 신안 앞바다에서만 수십 개의 해저케이블이 깔렸다. 국내 기술로 해저케이블이 처음 매설된 것은 2010년 11월이었다. 당시 전남 해남군 화원반도에서 안좌도까지 6.6㎞ 바닷길에 해저케이블이 설치됐다. 현재는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섬에 전기를 보내기 위한 해저케이블의 길이가 총 200㎞를 넘는다.
◆전선기술의 총아…진화하는 케이블
LS전선은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프랑스 넥상스와 함께 세계 톱 클래스의 해저케이블 업체로 통한다. 강원도 동해공장에 설치된 50m(아파트 18층) 높이의 대형 제조 설비도 전세계적으로 5대에 불과하다.
성인 남성 허벅지보다 두꺼운 평균 지름 20㎝의 케이블 안에는 도체인 구리와 절연층으로 이뤄진 전력선 세 가닥, 통신용 해저케이블 등이 동시에 들어간다. 가정용 220V는 전력선 두 가닥이면 충분하지만 송전용 해저케이블은 3상 전압이어서 반드시 세 가닥이 있어야 한다.
50㎞ 길이의 해저케이블 한 쌍을 한 번에 뽑아낸 뒤 바다로 운송해 이어붙여 100㎞짜리 완제품을 만드는 게 핵심기술이다. 한 치 오차 없이 이어붙여야 송전할 때 전력 손실이 없다. 50㎞ 전선이 한가닥이어서 제작이나 매설 도중 이상이 생기면 50㎞ 전체를 폐기 처분해야 한다.
심재현 기자
해저케이블 사업 왜 어렵나…태풍 만나면 수백억 손실 각오
8월 들어 태풍 덴무가 한반도로 향하며 공사 진행은 더 힘들어졌다. 강한 파도로 공사를 맡은 포설선이 조난 위기에 빠졌다. 당시 포설선에는 70여명의 선원과 LS전선 직원들이 타고 있었다.
LS전선 최고경영진은 포설선 철수를 결정했다. 진도에서부터 깔아오던 17㎞의 해저케이블을 포기해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매설 도중 작업이 중단되면 중간에 끊어버리는 케이블을 통째로 버려야 한다. 케이블 포기로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각오한 결단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 LS전선은 준공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해저케이블 포설선을 3척으로 늘렸다. 1대당 하루 사용료만 1억2000만원에 달하는 배였다. 하지만 기한을 맞추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했다. LS전선의 이런 경험은 훗날 고스란히 시공능력으로 이어졌고 시장의 신뢰을 얻는 발판이 됐다.
해저케이블은 심해의 조류와 파도 등 외부 악조건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때문에 개발·생산 단계는 물론, 매설작업에서도 고난도 기술이 필수다.
매설 작업은 2010년 LS전선의 진도-제주 매설 사업에서 보듯 돌발변수와의 싸움이다. 사전에 해저지형과 화산대·지진대 탐색, 해상 경계 등을 파악하려고 탐사를 진행하지만 예상치 못한 암반이 나타나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계획을 즉시 수정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초음파를 통해 미리 지형을 파악하지만 바다 밖에서 이뤄지는 기초조사이기 때문에 실제 바다 속 현장에서는 돌발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파도와 조류로 시공선이 흔들리면 정확한 좌표에 케이블을 내려 매설하기까지 유연한 판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해저케이블을 바다 속 땅밑에 매설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통신용 해저케이블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통신이 끊기는 정도에 그치지만 송전용 해저케이블에 문제가 생기면 대규모 정전 같은 최악의 피해가 생긴다. 이에 따라 송전용 케이블은 어선이 조업 중 건드리거나 대형 어류가 케이블을 파손시킬 가능성을 막기 위해 수중로봇이 심해에서 땅을 판 후 케이블을 깔고 다시 콘크리트나 자갈로 덮는 방식을 쓴다.
해저케이블 업체의 기술력을 판가름 짓는 최대 관건은 케이블 연결 노하우다. 통상 최대 50㎞까지 한 가닥으로 뽑아낸 케이블은 설치 거리에 따라 다른 한 가닥의 케이블과 연결해 매설한다. 이때 실제 한 가닥 케이블처럼 연결해야만 송전 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만약 자연재해로 케이블을 한 번에 설치하지 못할 경우에는 케이블이 끊어진 부분을 다시 잇기도 하는데 이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업체는 전세계에서 손에 꼽는다.
박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