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갈곳 없는 돈, '오피스 거품' 키운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김도윤 기자, 김태현 기자 2020.06.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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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밀어올린 오피스 거품]① 강남 현대해상 빌딩 인수전, 평단가 신기록 전망... 출구 막힌 유동성 탓 '거품' 우려도

편집자주 코로나19(COVID-19)로 갈곳 없는 돈들이 오피스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심화되며 대체투자 시장을 찾는 자금은 늘어나고 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해외로 나가지 못한 자금이 정상 수준 이상의 거품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실률이나 오피스 투자수익률 등 관련 지표의 악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오피스 가격 상승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머니투데이가 현 상황을 진단해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급등한 가격 수준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각종 논리들이 제기되는 때가 있다. 과거 숱한 테마주들의 경우가 그랬고 EPS(주당순이익)에 근거한 PER(주가이익비율)이 아닌 SPS(주당매출)에 근거한 PSR(주가매출액비율)이라는 지표가 나올 때가 그랬다. 사후적으로 높은 가격수준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생소한 지표가 동원되는 것은 이미 해당 자산의 가격이 꼭지 부근에 다다랐다는 징표로 꼽힌다.

국내 오피스 시장에서도 유사한 논리로 거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온다. 보다 높은 가격에 더 많은 거래가 이뤄질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는 증권업계에서 이같은 목소리들이 주로 나온다는 점이 눈에 띈다. 코로나19(COVID-19)로 갈곳 없는 돈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여겨지는 오피스 빌딩에 몰리면서 새로운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당 3500만원 신기록 전망, "아파트에 비해선 여전히 싸다"
코로나로 갈곳 없는 돈, '오피스 거품' 키운다
최근 입찰 절차가 진행 중인 서울 역삼동 현대해상 빌딩은 역대 서울 강남업무지구(GBD)의 지표 가격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종전까지 GBD 지역의 최고 거래 가격은 2018년 8월 3.3㎡(평)당 3050만원씩 총 7484억원에 거래된 삼성물산 서초사옥이었다. 이 때 평단가가 최초로 3000만원을 뚫었다. 최근까지 업계 동향에 따르면 10여개사가 현대해상 빌딩에 입찰해 평당 3200만원 이상을 써낸 곳들만이 쇼트리스트(적격 인수후보)로 꼽혔다고 한다. 현 수준에서 가격이 더 오르지 않고 매매가 체결되더라도 신기록이 세워지는 것이다. 현대해상 빌딩의 가격이 평당 3500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북권에서는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본사 건물의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곳의 가격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3.3㎡당 1900만~2000만원선에서 올해 들어 2500만원선으로 급등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 주요 업무지구 오피스의 가격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이같은 급등세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많다. 서울 주요 업무지구인 만큼 우량 장기 임차인의 확보가 수월해 안정적인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등 논리가 주요 업무지구 오피스 빌딩 호가를 정당화시킨다.

아파트값에 비해 오피스 시세가 과도하게 낮다는 평가도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서울지역 아파트가 급등하면서 평당 5000만원은 물론이고 1억원을 웃도는 매물들이 속출하는 데 비해 오피스 빌딩의 가격이 저평가돼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 핵심 업무지구에 아파트에 비해 훨씬 고급자재를 사용해 호화롭게 건설되는데도 불구하고 서울 오피스 평당 거래가격이 서울 아파트의 절반 내지 그 이하 수준에 거래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오피스 수익률 지표 악화 추세 지속
서울 지하철2호선 역삼역 인근 빌딩에 임대 광고가 붙어있다. /사진=이재윤 기자서울 지하철2호선 역삼역 인근 빌딩에 임대 광고가 붙어있다. /사진=이재윤 기자

그러나 경기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오피스 가격만 상승세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오피스 건물에의 투자는 시세차익과 임대료 수익 등을 기대하기 위해 투자하지만 두 가지 지표가 모두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마치 배당주로 주목을 받던 종목이 배당수준이 낮아진다는 등 이유로 주가가 하락하는 것과 마찬가지 모습이 오피스 시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1분기 3개월간 전국 오피스 빌딩 투자 수익률은 1.59%로 2017년 3분기(1.39%) 이후 10개 분기만에 가장 저조했다. 오피스 투자수익률은 임차료 수입을 의미하는 '소득 수익률'과 시세 차익을 의미하는 '자본 수익률' 등 2가지로 구성되는데 경기회복 기대감이 컸던 지난해 4분기(총 수익률 2.1%)에 비해 소득수익률(1.07%→1.06%) 자본수익률(1.03%→0.53%) 모두 약세를 기록한 것이다.

공실률 지표 역시 부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 1분기 전국 824개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은 11.1%로 전분기(2019년 4분기) 11%에 비해 소폭 늘었다. 공실률 통계는 단순 시계열 비교가 불가능하다. 한국감정원이 경제상황 등을 반영해 표본 등을 수시로 변경하는 데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추세적으로 공실률이 늘어나는 모습은 확인이 된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에 걸쳐 전국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은 4.8%에서 8.9%로 높아졌고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공실률이 8.5%에서 13%까지 높아졌었다. 2017년~18년에도 재차 표본 조정이 있었지만 이 기간에도 공실률은 11.5%에서 12.4%로 늘었다. 2019년 들어 공실률이 잇따라 하락해 11.5%까지 줄었지만 올해 들어 다시 상승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갈곳 없는 돈, '오피스 거품' 키운다
기업이 어려운데 오피스만 오를 수 있나
아직까지는 오피스빌딩에는 코로나19 영향이 적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감정원은 "오피스는 이번 분기에 코로나19의 영향이 상가에 비해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며 "오피스는 주로 기업 등 업무관련 시설로 코로나19로 인한 공실률 영향은 미미한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영향은 다른 지표에서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수익형부동산 연구업체인 상가정보연구소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3~4월 전국 업무용 부동산 거래량은 508건으로 전년 동기(595건) 대비 14.6% 줄었다. 서울내 3~4월 업무용 부동산 거래 건수는 18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8% 줄었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오피스의 경우 기업이 공간을 빌려서 들어가야 하지만 경기 부진으로 폐업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1인 기업이나 소규모 기업 위주의 소형 오피스는 그나마 괜찮을 수 있지만 대형 오피스 시장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오피스 빌딩 평당 매매 단가가 공시지가 상승 등 영향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이는 임대료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평단가도 조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외 출구 막힌 부동산 투자자금, 국내 거품 만든다"
지난해 사상 최초 마이너스 물가가 나타난 데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3%를 기록하며 2008년 4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각종 경제지표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와중에서 오피스 빌딩 가격만 독주하는 현상은 정상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의 상황을 무조건 '과열'이라고 몰아가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연 6~8%에 비해 기대수익률이 낮아졌다더라도 매월 임차료 현금흐름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핵심 상권 소재 오피스 매물의 매력은 남아 있다"며 "매도자와 매수자의 기대수익률이 다르다면 충분히 손바뀜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또 다른 한 대형 증권사 IB(투자은행) 담당 임원은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린 탓"이라며 "현재와 같은 자산가격 상승은 다소 성급하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정상 수준 이상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모습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주요 부동산 투자사들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나 각종 공제회 등 장기 투자자들로부터 출자금을 받아 펀드를 조성했음에도 코로나19로 해외 투자 기회가 원천봉쇄되다보니 자금을 소진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오피스에 돈을 쏟아붓고 이 과정에서 오피스 빌딩의 가격 거품이 생긴다는 설명. 결국 펀드의 주요 LP(유동성 공급자)들 사이의 머니게임이 펼쳐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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