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취소→무계획…‘바닥’으로 치닫는 공연계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20.06.03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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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확산으로 흔들리는 공연계…“무대에 설수록 손해”

국립무용단의 '제의'. /사진제공=국립극장국립무용단의 '제의'. /사진제공=국립극장


“3월엔 모두 5월쯤 공연이 재개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7월엔 가능할까요?” “이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하반기 공연도 거의 손을 놔야 할 것 같아요.”



공연 재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기 무섭게, 코로나19가 다시 덮쳤다. 상반기에 연기한 공연들은 다시 연기하거나 취소 수순을 밟고 있다. 공연 관계자들은 “한 해 농사를 모두 망친 기분”이라며 허탈감을 드러냈다.

상반기에 가장 많이 몰린 공연 스케줄은 잇따라 취소나 연기 결정에 돌입했다.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예정이던 코리안심포니의 ‘낭만의 해석Ⅰ’ 연주회는 취소됐다. 수도권 지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다.



국립극장도 정부의 수도권 지역 공공시설 운영 결정에 따라 14일까지 전속 단체 공연 및 공연예술박물관 전시를 중단한다. 이에 따라 오는 5~7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릴 국립무용단의 ‘제의’ 공연은 취소됐다.

연기→취소→무계획…‘바닥’으로 치닫는 공연계
4일 예정된 경기아트센터의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함께 하는 11시의 클래식' 공연은 연기됐다. 신한류 문화를 해외 곳곳에 알리며 산업 첨병기지 역할을 해온 엠넷의 케이콘(KCON)은 잇따라 취소 또는 연기 수순에 돌입했다.

뉴욕 케이콘 취소, 도쿄 케이콘 연기에 이어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케이콘까지 연기 결정을 내리면서 올해 가장 ’핫‘한 한류 축제는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엠넷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세계적인 대유행에 따라 행사에 참여하는 관객, 아티스트, 스태프 안전을 최우선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CJ ENM이 개최하는 한류 컨벤션 케이콘은 2012년부터 미국, 프랑스, 태국, 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서 누적 1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한류 문화를 전파해왔다.

1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연극, 뮤지컬, 클래식, 무용 등을 포함한 5월 공연계 매출액은 112억 3846만원이다. 이는 4월(47억원)보다 두 배 이상 상승한 수치지만, 300~400억원대 평균 수준으로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미미한 실적이다.

2018년 뉴욕에서 열린 케이콘. 2018년 뉴욕에서 열린 케이콘.
문제는 매출이 아니라 공연의 연속성이다. 이태원 발 확진자가 나오기 전까지 공연계가 다시 기지개를 펴는 상황이 마련됐는데, 재확산이 결국 이어지면서 공연 재개의 꿈도 수포로 돌아간 모양새가 됐다.

A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마음먹고 (공연을) 준비하기에는 코로나 변수가 너무 많고 유동적”이라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일단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보자는 인식이 대부분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하반기 공연 계획도 일부 대작을 제외하고는 아예 접자는 분위기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A 관계자는 내다봤다.

또 다른 문제는 ‘손해’ 부분이다. ‘한 칸 띄어 앉기’ 같은 정부의 지침 때문에 팔 수 있는 좌석도 울며 겨자 먹기로 놔둬야 한다. 매출은 반토막으로 줄어드는데, 대관료는 그대로이니 수익이 줄 수밖에 없다.

수익이 줄면 다음 공연을 계획할 수 없고, 이는 또다시 ‘빈곤의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성남아트센터가 ‘거리 두기’ 객석을 요구하자, 뮤지컬 '레베카' 기획사는 공연을 아예 취소했다. 눈에 보이는 손해를 감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면 서비스를 최소화한 '언택트시네마'를 선보인 CGV. /사진=이기범 기자<br>
대면 서비스를 최소화한 '언택트시네마'를 선보인 CGV. /사진=이기범 기자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도 최근 성명에서 “좌석 간 띄어 앉기를 공연에 적용하면 민간 기획사는 공연을 안 하는 것이 이득”이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민간 기획사 공연에 유예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다면 공연예술은 무관중 공연을 이어가는 국공립 기관의 공연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티켓의 할인율 경쟁에서도 공연은 비교 대상이다. 1만원짜리 영화는 4일부터 3주간 6000원 할인을 통해 4000원에 볼 수 있는데, 공연은 몇 만원 티켓값에서 8000원 할인해 주는 게 전부다. 그것도 언제 할인할지 미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돼야 공연 관람료 할인권을 지원할 수 있다며 시기는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B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영화계 지원책과 너무 비교되는 현실”이라며 “정부가 공연계의 근본적인 생존 방식을 고민하지 않으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기획사들이 한둘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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