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나는 검찰의 불법수사 피해자"…무죄 주장하는 여권 인사들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20.05.3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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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1.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30일 '동병상련..한명숙 전 총리 재심운동 응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최근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제기되며 재조사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해 한마디를 보탰다. 겉으로는 "지금까지 본 일부 정치·부패 검찰의 행태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무죄를 유죄로 만들려는 검찰의 위증교사는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된다"며 한 전 총리 사건 재심을 주장하기 위한 글 같다.

그러나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본인 사건의 무죄 주장이다. 그는 "촛불혁명 후에도 증거조작과 은폐로 1370만 도민이 압도적 지지로 선출한 도지사의 정치생명을 끊으려고 한 그들(검찰)"이라며 자신 역시 검찰의 강압 수사 피해자라고 내세웠다. 이 지사는 현재 '친형 강제입원'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대법원에서 이를 확정하면 당선무효에 피선거권도 제한돼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를 맞게 된다.



#2. 지난 22일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항소심 공판에서도 "무리한 (검찰) 수사의 피해를 본 피해자" 주장이 나왔다. 그는 1심 판결에서 롯데홈쇼핑으로부터 3억원을 불법 수수했다는 혐의가 인정돼 징역 5년을, e스포츠협회 자금으로 부인의 여행 경비나 의원실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한 점 등 다른 혐의들에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억5000만원의 벌금과 2500만원의 추징금도 내야한다. 항소심에서 그가 내세운 방어논리는 검찰의 불법 수사다. 전 전 수석은 "수사 발단된 사건과 무관함이 드러나자 검찰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죄를 만들어 내려 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검찰의 잘못된 불법 수사를 바로잡을 것을 기대한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전 전 수석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반년 만이다. 결국 부패사건으로 기소돼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난 첫 정권 인사가 됐다. 당시 전 전 수석을 수사한 곳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에, 신봉수 평택지청장이 첨단범죄수사1부장을 각각 맡아 문재인정부 첫 청와대 인사의 부패사건 수사에 나섰다. 아직은 이들이 '적폐수사'의 선봉장으로 불리며 여권과 그 지지자들에게 칭송을 받던 때다.



#3. '검찰 수사'를 부정하는 방향의 '검찰개혁'이 급속히 추진되는 촉매제가 됐던 '조국 수사'에선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모두 인정해놓고도 선처를 구하는 명분으로 "언론과 검찰이 바뀌는 데 도움이 되겠다"면서 검찰을 탓하는 장면도 펼쳐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자산 관리인이자 정씨의 증거 인멸을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투자은행 프라이빗뱅커 김모씨는 지난 22일 최후 변론에서 "수개월간 직접 경험한 이 순간 언론개혁, 검찰개혁은 당사자인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임을 절실히 느낀다"며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기어코 걸고 넘어졌다.

조 전 장관 역시 지난 8일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후 열림 첫 공판에서 검찰 수사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검찰이 왜곡하고 과장한 혐의에 대해서 사실과 법리에 따라 하나하나 반박하겠다"며 "지치지 않고 싸우겠다"고 선포했다. 설령 법원이 유무죄를 제대로 판단한다 하더라도 '없는 죄를 만들어낸'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란 예상이 나온다.

#4.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대상이 될 사건에 대해 검찰의 '과거사'가 주 타깃이 될 것이란 점을 예고했다. 추 장관은 "공수처는 검찰이 제대로 사법 정의를 세우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것"이라며 "권력과 유착해서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거나 아니면 제 식구를 감쌌다거나 하는 그런 큰 사건들이 공수처의 대상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나아가 "정치는 발전했지만 사법발전은 국민이 그렇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을 것"이라며 "모든 첫 번째 잘못,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은 검찰"이라고도 주장했다. 법조계에선 추 장관의 이같은 말이 자칫 공수처의 성격을 검찰의 과거사 진상규명 및 처벌로 규정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 단추를 다시 제대로 꿰면 달라지는 것은 뭘까. 한 법조계 인사는 "잘못된 검찰 수사가 법원의 유죄 판결로 이어졌으며 이를 밝혀 처벌하면 판결 역시 무죄로 바뀔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면 사법 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한명숙 사건'의 재조사 주장에 대해 법조계가 한목소리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당장 재판을 받고 있는 여권 인사들이 '이게 다 검찰 때문'이라며 속속 무죄를 주장하고 나서는 모습이 법조계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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