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본 '생리대'…아내가 왜 불안한지 알게됐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0.05.3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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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은 월경이다-③]38년만에 처음 '생리대' 공부…외계어 같은 성분들, 사용 '가이드라인' 필요

편집자주 밥을 먹으면 똥을 눕니다. 그게 '섭리'입니다. 그걸 에둘러서 '항문으로부터 기어이 빠져나오는 배설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월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은 누구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무척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런데 대관절 왜, 월경은 '그날', '마법'이란 말에 숨어야할까요.  똥을 누려면 휴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화장실엔 늘 휴지가 있습니다. 월경을 하려면 생리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왜 생리대는 어디에나 있지 않을까요. 이 기획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월경은 월경입니다.

처음 사본 '생리대'…아내가 왜 불안한지 알게됐다


어렸을 때 기억이다. 엄마 장롱에서 하얀 무언가를 봤다. 그 때 난 호기심이 많았다. 짧은 삶에서 얻은 기억을 총동원했다. 기저귀와 닮았다. 그래서 기저귀인줄 알았다. 어린 맘에 의아했었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기저귀를 할까. 나도 뗀 지 오래됐는데.

나중에 더 큰 뒤에야 알았다. 그건 기저귀가 아니라, 일회용 생리대였다는 것을. 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 이후로도, 생리대에 대한 관심은 그걸 넘어서기 힘들 정도로, 아주 사소한 거였다.



2017년 생리대 화학물질 파동 때도, 아내에게 "더 비싸고 좋은 것 쓰자"고만 했다. 그런 얘기만 했고, 직접 알아볼 생각은 못했다.

아내가 말했다, "뭘 써야할지 모르겠어"
아내가 사용했던 생리대./사진=머니투데이db아내가 사용했던 생리대./사진=머니투데이db


그 이후, 아내는 좋다는 생리대를 썼다. 인터넷가를 찾아보니, 중형 1개에 572원쯤 한다. 점심값도 아끼겠다며,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니던 그에겐 큰 결심이었다. 그만큼 생리대는 선택을 잘해야하는, 민감한 물품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뉴스 하나를 봤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였다. 익숙한 생리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아내가 쓰는 제품이었다. 긴장한 채 내용을 봤다. 접착제 성분을 속였단 내용이었다. 품목을 신고하며 '녹말풀 100%'라고 해놓고, 실제론 화학합성 접착제를 썼단다. 일반 생리대에 쓰이는 성분으로, 나쁜 건 아니라 했다.

그러나 속인 것 아닌가. 친환경·유기농이란 말에, 가격이 더 비싼데도 그 생리대를 썼었다. 무려 3년 동안이나. 인체에 유해하고, 나발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믿고 썼던 그 제품 역시, 대다수 생리대처럼 화학성분 접착제를 썼단 것. 그게 핵심이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알려줬다.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이제 뭘 써야할지 잘 모르겠어." 아내는 그리 한숨을 쉬었다.

38년만에, 일회용 생리대를 처음 샀다
생리대 종류가 참 많았다. 어떤 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사진=남형도 기자생리대 종류가 참 많았다. 어떤 걸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사진=남형도 기자
뭘 알아야 알려줄텐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싸고 좋은 것 써"란 말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게 했는데, 이런 불안이 또 생기지 않았나.

그래서 일회용 생리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맘 먹었다. 점심을 먹고, 광화문 올리브X에 갔다. 생리대 코너로 갔다.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하나씩 집어서 봤다. 유기농·순면·쿠션 등 온갖 좋은 얘기가 다 쓰여 있었다. 인증은 왜 그리 많이 받았는지, 없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몹시 혼란스러웠다.

생리대를 종이봉투에 담아줬다./사진=남형도 기자생리대를 종이봉투에 담아줬다./사진=남형도 기자
앞에 계속 서서 뒤적이니, 몇몇 사람이 날 이상하게 봤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난 아내 건강을 위해 여기 서 있는 것이다, 난 변태가 아니다, 난 당당하다.' 그리 자기 암시를 했다.

유기농 생리대라는 제품을 하나 집었다. 중형 생리대 14개에, 가격은 5900원. 1개에 421원 정도였다. 점심도 3000원짜리 야채 김밥 먹었는데, 속이 살짝 쓰렸다.

생리대를 뜯어보니…
생리대에 대해 궁금한 걸 아내에게 물어봤다./사진=남형도 기자 생리대에 대해 궁금한 걸 아내에게 물어봤다./사진=남형도 기자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사로 왔다. 종이봉투에 든 생리대를 가지고, 전화방(취재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걸어잠궜다. 조심스레 생리대를 꺼냈다.

생각했던 것보단 좀 작았다. 종이상자 안에, 생리대 14개가 포장돼 있었다. 뜯어서 하나를 꺼냈다. 드디어 처음 마주하는 그 실체가 드러났다.

전반적으론 기저귀랑 비슷한데, 이해가 안 가는 게 많았다. 뒷면이 끈적끈적했다. 양쪽엔 손잡이 같은 게 있었다. 아내에게 "이게 왜 이러냐"고 물었다. 아내는 웃더니 "팬티에 고정이 잘 되라고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즉, 부드러운 부분은 몸쪽으로, 접착제 성분이 있는 바깥 부분은 팬티에 붙여 고정시키는 거였다. 처음 알았다.

생리대에 적힌 '외계어'들
사용 방법은 이해했다. 이제 성분을 들여다 볼 차례였다.

생리대를 북 뜯었다. 솜 같은 것과, 작고 하얀 알갱이 같은 게 나왔다.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처럼 보였다. 그러나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겉면 박스에 모든 성분이 기재돼 있었다. 나열해보니 이랬다. 순면부직포, 부직포(폴리에틸렌 등), 흡수지(펄프, 흡수체), 면상펄프(펄프, 흡수체), 아쿠아키프(아크릴산나트륨공중합체 등), 폴리에틸렌필름(폴리에틸렌 등), 접착제(스티렌블록공중합체 등), 또 접착제(스티렌블록공중합체 등)까지.

엄청 어려웠다. 이게 무슨 외계어인가. 공중합체라니, 무슨 로봇도 아니고. 난해했다.

이 제품을 만든 회사에 전화했다. 소비자 상담실 직원이, 담당 부서 직원에게 연결해줬다.

생리대를 비로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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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가능한 쉽게 설명하겠다. 내가 구매한 중형 생리대는 크게 5개의 레이어로 구성돼 있단다.

처음 사본 '생리대'…아내가 왜 불안한지 알게됐다
먼저, 피부에 닿는 가장 겉부분이 '탑시트'라고 했다. 그게 순면부직포란 얘기다. 이 회사 제품은, 탑시트를 유기농 목화로 만든다고 했다. 피부에 가장 민감하게 닿는 부분이니 성분이 좋아야한단 설명이었다.

처음 사본 '생리대'…아내가 왜 불안한지 알게됐다
그 다음은 부직포인데, 부들부들한 날개 부분이라고 했다. 이게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으로 돼 있다고 했다.

생리혈을 흡수하는 고분자 흡수체, '아쿠아키프'./사진=남형도 기자생리혈을 흡수하는 고분자 흡수체, '아쿠아키프'./사진=남형도 기자
탑시트를 벗기면, 생리혈을 흡수하기 위한 부분이 나온다. 이게 흡수체다. 흡수체는 3가지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흡수지, 면상펄프, 아쿠아키프. 흡수지는 티슈처럼 돼 있고, 그 아래 나무펄프로 만든 흡수체가 있다. 아쿠아키프는 '고분자 흡수체'라 불리는 것으로, 동글동글한 알갱이로 돼 있단다.

그리고 마지막이 팬티에 붙이는 바깥 부분이다. 이건 생리혈이 바깥에 못 나가도록, 방수 재질로 돼 있다. 이 부분의 재질이 폴리에틸렌필름, 탄산칼슘 등이란 얘기였다.

처음 사본 '생리대'…아내가 왜 불안한지 알게됐다
접착제는 크게 두 가지로 쓰인다고 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레이어를 붙이기 위해 들어간다. 또 다른 하나는 팬티에 붙이는 위한 접착제다. 이 직원은 "접착제는 화학성분을 쓰는 게 불가피하다"고 했다.

설명을 다 듣고, 분해된 생리대를 보니 뭐가 뭔지 이해가 갔다. 그러니 다른 제품에 나와 있는 성분을 보고도 뭐가 더 나은지, 그나마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약처는 "생리대 유해하지 않다" 결론
처음 사본 '생리대'…아내가 왜 불안한지 알게됐다
더 공부할 부분이 있었다. 시중 생리대가 괜찮은지다. 3년 전 생리대 파문을 알고 있었다. 여성환경연대가 강원대학교에 의뢰해 진행한 실험에서, 독성물질이 나왔단 발표가 있었다. 식약처와 의사협회에선 증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이후 식약처가 전수조사를 했다. 지난해 말 결과가 나왔다. 대상 제품은 시중에 판매되는 생리대·팬티라이너·탐폰 등 총 359개였다. 여성이 생리대나 탐폰을, 하루 7.5개씩 한 달에 7일 정도 평생 사용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품질점검 결과는 적합. 생리용품 330개를 대상으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60종도 모니터링한 결과도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결론이 났다.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과 '암 유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퓨란류도 독성이 가장 약한 2종만 검출됐다. 이 역시 유해한 수준은 아녔다.

어떤 성분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이드라인'이 없다
처음 사본 '생리대'…아내가 왜 불안한지 알게됐다
한 마디로 믿고 쓰란 얘기인데, 아내는 여전히 불안하다고 했다. 생리대에 따라 분명 몸에 영향이 느껴지는데, 뭐가 좋고 나쁜지 전혀 알 수 없단 얘기였다. '가격이 비싸면 그냥 좋겠거니' 한단다. 불완전한 정보에서 오는 당연한 불안이다.

생리대 성분 하나하나를 검색해봤다. 더 혼란스러웠다. 어떤 성분이 들어가면 흡수력이 과해 안 좋다고도 했다. 또 어떤 성분은 피부염을 일으킨다고도 했다. 아내가 불안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문제는 이게 어디까지 '팩트'인지, 확인할 길이 없단 거였다. 대형 서점에 가서, 관련 서적을 뒤져봤지만 시원스레 해결이 안 됐다. 식약처가 세워놓은, 공신력 있는 '생리대 성분 가이드라인'이 필요해보였다.

또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생리대에 모든 성분을 표시하도록 제도가 실시됐지만 '의약외품 표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향료나 소량함유 성분은 예외적으로 기재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생리대에 들어간 성분 전체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인증 마크를 받았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전 점검 및 관리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안전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으니,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며 안전한 걸 쓰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아내의 '생리대'는 주저하느라 여전히 고르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갔다. 내가 배운 걸 열심히 설명하니, 아내는 "아, 아무 것도 잘 모르겠다"며 피식 웃었다.

그럼에도 평생 반려자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알아봐줘서 고마워"라고.

'월경은 월경이다' 기획 마지막 편은 6월2일에 연재됩니다. 기사 댓글이나 [email protected]로 제보 주시면, 필요한 내용을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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