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가 될 순 없어' 웃픈 현실판 '부부의 세계'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5.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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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부터 4년차가지 세 부부 통해 웃음과 공감 선사

사진제공=JTBC사진제공=JTBC


개그판 ‘부부의 세계’다. “이 지옥 같은 고통을 어떻게 해야 돌려줄까. 남김없이 공평히 완벽하게”같은 서슬 퍼런 대사는 없지만 “미친 인간아” “이 병X” 등 듣는 입장에서는 뼈가 아리는 현실판 대사들이 터져 나왔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관찰도,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찰도 아닌 체면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으려 버티는 프로그램이라니. JTBC ‘1호가 될 순 없어’는 신선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신선하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일부터 방송됐다. 발단은 ‘아는 형님’에서의 박미선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16호 커플까지 나온 개그맨 부부 가운데 이혼한 커플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유로 “금슬이 좋아서가 아니라 모두 다 자신들이 1호가 되길 주저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서로가 마음에 안 들고, 징글징글하지만 개그맨 부부 1호 이혼이라는 불명예가 더 싫은 것이 다분히 개그맨들답다. 이 설정은 그대로 프로그램이 됐다.

올해 32년차 부부이자 첫 개그맨 부부였던 최양락-팽현숙을 시작으로 4호 개그맨 부부이자 16년차 부부 박준형-김지혜, 12호 개그맨 부부이자 4년차 부부인 강재준-이은형이 자신들의 일상을 공개한다. 거기에 역시 3호 부부이며 개그맨 이봉원과 살고 있는 박미선이 옆을 거들고,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17호 개그맨 부부를 꿈꾸고 있는 장도연이 가세했다.

프로그램은 첫 방송부터 7%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화제를 모았다. 일단 ‘1호가 될 수 없다’는 설정부터가 다분히 개그스럽다. 제작진은 만약 이 부부들이 싸우고 서로 갈라설 때를 대비해 실제 쓰이는 이혼서류를 한쪽에 비치해놓고 도장도 준비해 출연하라고 한다. 그리고 관찰 카메라 와중에 둘이 싸우기라도 할라치면 “아… 1호로 가나요?”하면서 흥미진진해 한다. 싸우려고 하다가도 1호가 되기 싫어 눈치를 보는 상황이 아이러니한 웃음을 준다.

일단 이 상황의 힘이 강력하다. 사실 이것을 제외하면 ‘1호가 될 순 없어’는 지금까지 나온 많은 연예인, 비연예인 대상 관찰예능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부부가 만나 서로 티격태격하고 하지만 웃음을 기반으로 해 이 상황을 그냥 뭉개고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SBS ‘자기야’나 TV조선 ‘아내의 맛’ 등에서 보여준 화면이다. 이를 단지 출연자 범위를 개그맨 부부로 한정하고, 특히 관찰예능에 등장하지 않았던 출연자들을 모두 섭외하면서 신선함을 주려고 했다.

사진제공=JTBC사진제공=JTBC
세 부부는 기본적으로 모두 아내 쪽에서 기선을 잡고 남편들은 철부지로 그려진다. 팽현숙은 가사를 돕지도 않고 베짱이처럼 노는 최양락에게 계속 잔소리를 하고, 최양락은 이를 피하고 짜증을 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한다. 김지혜 역시 박준형의 가사 참여를 독려하면서 자신의 수입이 조금 더 많은 상황을 웃음으로 펼쳐낸다. 막내 강재준-이은형 부부 역시 개그맨 기수로서도 선배고 현재 활동도 활발한 이은형이 강재준을 귀여워하는 설정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개그맨 부부를 다룬다는 설정 그리고 아내 쪽에 쥐어진 주도권. 때로는 험악한 말이 오가며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출연자 모두가 동지의식으로 묶여있고 심지어 서로 형, 동생 그리고 언니, 동생하는 스튜디오의 편안한 분위기가 날카로운 부분을 많이 희석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마치 개그를 짜듯 웃음을 갈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개그맨으로서 삶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결국 부부의 행복을 위한 과정을 보여준다는 목표점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은 결국 이러한 설정 역시 횟수를 거듭할수록 익숙해질 예정이고, 그렇다면 결국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관찰예능처럼 매주 작위적인 소재와 설정이 이어지는 또 하나의 개그코너가 되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설정의 특이함으로 초반에는 인기를 얻지만 결국 프로그램 개그맨 부부가 그만큼 금슬이 좋다는 부분만을 강조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이혼까지 가는 상황은 아니더라도 계속 새로운 부부를 등장시키거나 설정을 추가해 진부함을 없앨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을 보면서 ‘부부의 세계’가 떠오른다. 특히 웃음을 위해 모든 것을 갖다 바치는 개그맨 부부의 삶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부부의 세계’보다 훨씬 막장스럽다. 하지만 진짜와 설정 사이를 오가는 이들의 웃음이 결국 부부의 행복에도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부부끼리 서로 낄낄거리며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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