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 한달…"무관심·악플에 두번 웁니다"

뉴스1 제공 2020.05.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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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처·시공사·감리사, 보상은커녕 사과·애도 없어"
"38명 죽었는데"…오늘 청와대앞 관련자 처벌 촉구 회견

6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엄수된 추도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2020.5.6/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6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엄수된 추도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2020.5.6/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시민도, 언론도, 정부도…. 점점 관심이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부디 관심을 주시고 유족들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경기도 남양주에 거주하는 김진호씨(가명·37)는 28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딱 한 달 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로 아버지(62)를 잃었다. 김씨의 아버지를 비롯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로 총 38명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정치인들은 잇따라 분향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사이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고 있었다. 또 38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지, 사고의 진상(眞相)도 흐릿해지고 있다.

한 달 동안 분향소를 지켰던 김씨는 얼마 전 아버지 시신을 겨우 화장하고 나서야 다시 출근하고 4살짜리 딸 아이를 돌보는 일상을 살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에는 울분이 응어리진 듯했다.



김씨 아버지는 어머니가 은퇴하는 오는 6월, 함께 일을 그만두고 강원도 전원주택에 들어갈 요량이었다. 이미 강원도에 집도 지어놨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시간은 무심히 흘러 아버지가 기다리던 6월이 한 손에 꼽힐 만큼 성큼 다가왔다.

김씨는 "혼자 남으신 어머니가 더 걱정"이라며 "어머니가 갈 길을 잃으신 것처럼…, 뭘 해야 할지 모르시고…, 아직도 당황해하신다"고 했다.

6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3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2020.5.6/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6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3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2020.5.6/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김씨는 화재 딱 한 달째인 이날(29일) 출근도 미룬 채 한익스프레스에 대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기 위해 거리에 나설 예정이다. 김씨와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이천 화재 책임자 한익스프레스 처벌 촉구 및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대형 화재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이 유가족을 방문해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있지만 매년 대형 화재 사고가 반복하고 있다.

김씨는 "2년 전 제천 화재 사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또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경기도 이천에서도 약 12년 전인 2008년, 비슷한 화재 사고가 있었다. ㈜코리아2000의 냉동창고에 난 불로 40명이 사망했다. 당시에도 정부는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코리아2000 화재 사고 역시 약 10년 전의 1998년의 부산 '범창콜드프라자' 냉동창고 화재사고와 비슷하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부산 범창골드프라자 화재에서는 인부 27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발주처(한익스프레스), 원청 시공사(건우), 감리사(전인CM) 그 어느 곳도 보상은커녕 사과나 애도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며 답답해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원청 시공사 소속 일용직이었다.

김씨는 발주처, 시공사, 감리사뿐만 아니라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이제 아무런 연락이 없다고 했다. 답답한 유족들은 세 업체를 대상으로 민사소송에 나섰다. 나라가 해결해주지 못하자 유가족들은 민사소송을 통해 자력으로 진상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1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2020.5.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1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2020.5.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가족의 죽음, 지지부진한 감식, 불확실한 책임규명 외에도 유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악플'이다. 김씨는 "악플들이 유족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얼마를 받으려고 저러느냐'는 악플을 많이 봤다"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우리도 먹고 살 만큼은 있는데…. 악플을 보는게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기사를 잘 안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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