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고삐 죌 땐데…39개월만의 이재용 검찰소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김태은 기자, 오문영 기자, 이정혁 기자 2020.05.26 17:10
글자크기

(종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2박3일 동안의 중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위해 경기 김포 호텔마리나베이서울에 마련된 임시생활시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2박3일 동안의 중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위해 경기 김포 호텔마리나베이서울에 마련된 임시생활시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의 소환조사를 받은 지 3년 3개월 만이다.



코로나19 사태의 후속조치와 이에 따른 미중 무역전쟁 재점화 등으로 전 세계 각국의 이전투구가 격렬해지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기한 없이 글로벌 기업의 경영 활동을 옭매는 상황에 대해 재계뿐 아니라 학계와 정치권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3년3개월 만에 검찰 소환…이번엔 '비공개'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8시쯤 비공개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에 출석해 영상녹화실에서 신문을 받았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에 이 부회장이 어떻게 관여했는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어떤 식으로 보고받고 지시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옛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로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이 부회장 등은 이 과정에서 합병비율을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로 맞추기 위해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뜨리고 제일모직 가치는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는다. 삼성 측은 줄곧 이런 의혹을 부인하면서 무리한 수사라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에 방점을 찍은 채 수사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으로 시작된 수사지만 사실상 국정농단 사건의 연장선 상에서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였던 만큼 최종 목표가 이 부회장이라는 점에서다.

검찰은 그동안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전현직 삼성 사장단을 대거 소환 조사하며 이 부회장 혐의 확인에 집중해왔다. 올 들어서만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사장) 등이 각각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1년 6개월이란 오랜 시간 동안 검찰이 공들여 수사한 사건인 데다 국정농단 특검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뇌물죄가 대법원에서 인정된 만큼 수사팀은 삼성 사장단과 함께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관건은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간 상관 관계 등에 대해 검찰이 어느 정도 규명할 수 있느냐 여부다. 수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던 삼성그룹 사장단들은 대부분 이들의 상관관계를 부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수사를 시작한 이후 증거인멸 관련 혐의로 삼성 관계자들을 기소한 후 본류인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서는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사 본류로 넘어가기 위한 핵심 인사로 꼽아왔던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에 대해 검찰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모두 기각하는 등 '윗선 수사'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숨죽인 삼성…정·재계서도 우려
검찰이 이날 이 부회장을 전격 소환 조사하면서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다시 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단 법적 공방에 앞서 이 부회장이 수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스캔들에 엵이면서 사회 전반의 여론이 삼성그룹의 경영행보를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2017년 글로벌 자동차 전장(전자장비)업체 하만을 국내 M&A(인수합병) 역사상 최고가인 9조원대에 인수한 이후 3년여 동안 100조원 가까운 현금을 쌓아만 두는 데 주목한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삼성그룹의 전략적 행보가 사실상 멈췄다는 평가다.

자동차용 전장 반도체 시장에선 지난해만 해도 시장 2위의 독일업체 인피니언테크놀로지가 미국의 사이프러스반도체를 90억유로(약 12조원)에 인수했다. 이보다 한달 앞서 네덜란드의 NXP는 미국 시스템반도체업체 마벨의 무선랜(와이파이) 사업을 17억6000만달러(약 2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도 세계 1위에 올라서겠다는 '비전 2030' 전략을 2018년 발표했지만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고군분투 중이다.

재계에서는 무엇보다 검찰 수사와 재판이 장기화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재계 한 인사는 "최근 1년의 변화는 평상시의 10년의 변화에 필적할 정도"라며 "가뜩이나 대내외적인 악재와 변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장기화하는 검찰 수사와 재판 등으로 삼성그룹은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법조계 한 인사는 "삼성이 국가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이니 이 부회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누구나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없는 법 적용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냐"며 "특정 목적으로 수사나 재판을 장기화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차원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배제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법 리스크가 3년 이상 이어지면서 삼성그룹이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강한 조직력과 자부심, 1등정신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던 예전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혁신을 위한 고삐를 죄지만 잇단 악재 앞에서 현장 조직력이 느슨해지고 자부심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을 한차례 매듭짓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