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낙규 원장/사진=홍봉진 기자
이 회사가 사업장 유턴을 결정한 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의 지원을 받으면서부터다. 제조공정 자동화를 요청했고, 생기원은 속눈썹 제조 자동화 장비를 개발·지원했다. 인조 속눈썹을 자동 재단하고 연마할 수 있도록 후처리 공정을 자동화하고 제조된 속눈썹의 염색·열처리 공정도 최적화했다. 기존 1000평 공간에 600명의 현지 인력을 필요로 했던 이 회사는 이제 100평대 공간에 300대의 장비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회사측은 기존 50억원이던 매출을 200억원대로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원장은 “국가·조직은 큰 위기 속에 변화를 꾀하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획기적 전환 중 하나가 리쇼어링”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그는 “싼 인건비나 큰 시장을 찾아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우리는 도대체 왜 했나, 그것을 먼저 쳐다봐야 한다”면서 “이 질문의 해답에 대한 솔루션을 마련하면 다시 돌아올 메리트가 생기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낙규 원장/사진=홓봉진 기자
문제는 역시 내실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가 하반기에 접어들수록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해외 진출 중소·중견기업들의 20% 정도가 리쇼어링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인력 확보 및 인건비 부담 문제 등은 여전히 큰 걸림돌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로 복귀한 제조업체는 68개사에 그친다. 이 원장은 “노동조합, 규제, 법인세 등의 문제는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고, 공공연구기관 입장에선 인건비 문제, 제품 품질 유지 문제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 ICT(정보통신기술)기술을 적용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스마트 팩토리’가 제조 기업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제조사들이 중국, 베트남, 인도 등 인건비가 저렴한 신흥국으로 나가던 때는 이런 ‘제조업의 스마트화’가 먼 미래 얘기였지만, 이젠 협동로봇, AI 등으로 인력을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 맞춤형 자동화 라인 설계·개발을 지원한다면 그분들이 돌아와도 승산이 있겠다, 수지타산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ICT 기술을 다 도입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그는 스마트 팩토리 전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AI 소프트웨어(SW) 전문가가 아닌 제조공정을 잘 아는 숙련된 현장(도메인) 인력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자동화 솔루션이 접목된 최신의 공장, 이른바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위해선 다양한 공정 지능화 기능들을 기존 장비·공정 단위에 최적화해 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원장은 “기존에는 소프트웨어 하는 사람이 제조현장에 가서 전 공정을 지능화하겠다고 했고 관련 부처·기관에서 용도가 모호한 수 천 만원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중소기업에 무료로 뿌렸다”면서 “하지만 정작 대부분 기업들이 받아 놓고 활용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기업 입장에서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써먹으려 하니 우리 공장이랑은 딱 맞지도 않고, “어디에 써 먹지?”라는 물음표가 생겼다는 것.
이 원장은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붓는 주조를 예로 들어 “온도·화학 조건은 어떻게 맞추지, 주조용 틀은 어떻게 만들지, 녹인 금속 유체를 어떻게 흘려보내지 등의 설계는 현장 인력들이 가장 잘 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알기는 힘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예로 삼아 “개발 초기 바둑을 둘 때 생뚱맞은 곳에 수를 놓아 오류가 나면 이를 바로잡는 건 구글 프로그래머가 아닌 바둑 전문가였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면서 학습을 시키는 과정에서 도메인에 있는 사람이 인풋(In-put)·아웃풋(Out-put)을 보고 디버깅 (debugging·오류수정)해 AI 학습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국내 유턴 기업들의 성공적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AI 스마트제조 플랫폼’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전국의 모든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스마트 제조 공정 모듈’을 일일이 보급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서다. 그래서 기계 가공, 사출·금형 등 비슷한 성격의 산업군을 묶어 공통된 AI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예컨대 물병이나 자동차 부품 등은 사출공정 방식으로 만드는 방식은 똑같지만 온도·가압, 쿨링타임 등의 조건이 약간씩 다르다”면서 “공통된 플랫폼을 가지고 각 기업 주력제품 특색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맞춤제작서비스)을 해주고 ‘AI공정데이터센터’를 통해 각 공장별 상황을 AI를 통해 자동으로 원격 모니터링 하고 디버깅해주는 시스템을 5년 이내 가시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