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대국이고, 다른 나라는 소국이다"?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5.2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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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은 대국이고, 다른 나라는 소국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2010년 7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ASEAN) 외교장관회의 당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현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마이크를 잡고 한 말이다.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한 중국의 패권적 인식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망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곤노 히데히로 경제산업성 국제담당 차관은 "동아시아에는 서구처럼 독립된 주권국끼리 관계를 맺는 전통이 없었다"며 "이것이 외교에 대한 중국인들의 DNA"라고 했다.



중국이 주변 나라들을 동등한 주권국으로 존중하기보단 마치 속국처럼 다룬다는 얘기다. 한때 북한처럼 자신을 따르면 감싸주지만, 자신에게 맞서면 응징하는 게 중국의 외교 DNA다.

3년 전 우리가 사드(THAAD) 사태를 겪었듯 지금은 호주가 그런 꼴을 당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일부 호주산 소고기의 수입을 중단하고 호주산 보리에 반덤핑 관세를 물렸다. 스콧 모리스 호주 총리가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독립적 국제조사라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한 뒤 벌어진 일이다.



호주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약 30%에 달한다. 우리나라보다 높다. 소고기 뿐 아니라 철광석, 석탄, 와인 등 호주의 주력 수출업종 대부분이 중국 덕에 먹고 산다. 중국에게 호주는 선택의 문제지만, 호주에게 중국은 생존의 문제다.

이 때문에 호주도 2017년 전까진 실용적 이유에서 친중국 노선을 걸었다. 그러다 말콤 턴불 총리 때부터 급격히 반중국 기조로 돌아섰다. 중국이 호주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와 스파이 활동을 벌인 사건이 결정적 계기지만, 호주 내에서 꾸준히 확산돼온 반중국 정서와도 무관치 않다.

문제는 호주가 탈중국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중국 봉쇄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동참한 호주는 미국의 요구대로 중국 화웨이의 5G(5세대) 통신장비 사용까지 금지했다. 명분은 국가안보였다. 호주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란 영미권 5개국 정보동맹의 일원이다.


하지만 호주의 급격한 탈중국 행보엔 국민들의 반중국 정서에 편승하려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적 욕구도 한몫했다. 정부의 탈중국 시도가 중국의 반발을 초래하고 이것이 국민들의 반중국 정서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급기야 "호주는 중국의 신발 아래 붙은 껌"이란 중국 관영매체 편집장의 독설까지 나오면서 호주인들의 대중국 감정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이쯤되면 국익을 위한 이성적이고 균형잡힌 대중국 외교 따윈 불가능해진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에 돌입하고 각국에 양자택일의 줄서기를 강요하면서 우리나라도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졌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모순적 구조 탓이다.

미국은 탈(脫)중국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위한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에 참여하라고 우리나라에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 등 중국 기술기업들과의 거래를 끊으란 얘기다.

반면 중국은 연내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주도 신실크로드 전략 구상)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미국의 눈에 일대일로는 중국의 정치·군사적 패권 전략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손을 잡으면 한미동맹의 균열을,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제2의 사드 사태를 감수해야 한다.

패권적 중화사상에 젖어 걸핏하면 주변국을 길들이려 완력을 행사하는 나라에 수출의 4분의 1을 의존하는 구조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그 나라가 동맹국의 주적 국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이 더 이상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금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춰가는 건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대일본 부품·소재 의존도를 낮췄듯 장기적으론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잊지 말자. 단기적으로 외교적 균형을 잃어선 안 된다. 일도양단식 선택은 답이 아니다. 속도조절에 실패한 탈중국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아무리 기분 나빠도 감정이 앞선 반중국적 태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적어도 호주처럼 되는 길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은 대국이고, 다른 나라는 소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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