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전세사는구나"…전월세신고제로 세입자 커밍아웃?

머니투데이 박미주 기자 2020.05.2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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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단지 모습/사진= 뉴시스다세대단지 모습/사진= 뉴시스


#서울 송파구 한 빌라에 사는 이모(40대)씨는 전셋집을 알아보려다 깜짝 놀랐다. 부동산 매물 플랫폼 지도에 그가 거주하는 집을 클릭하니 본인의 기존 전세 거래 내역이 올라와 있던 것. 층수만 표시됐지만 어느 집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걱정이 앞섰다. 주소를 아는 다른 학부형들이 자가거주 여부뿐 아니라 재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전세보증금도 알 수 있게 돼 무시라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보를 지워달라고 플랫폼업체와 국토교통부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월세 신고제 앞두고 빌라 등 임차인 거부감…"부동산 계급 사회인데..."
임차인을 보호 등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제가 '부동산 계급론'과 맞물리면서 일부 임차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내년말부터 전월세 신고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없애고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는게 정부 설명이다.

지금은 임차인이 동사무소 등에서 확정일자를 받은 곳만 국토교통부와 일부 부동산 플랫폼사 사이트에서 전월세 실거래가가 공개된다.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제가 의무화되면 확정일자가 자동으로 부여돼 모든 주택의 거래 내역이 공개된다. 이에 아파트와 달리 가구수가 많지 않은 빌라 등은 층수만 공개돼도 해당 가구를 특정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 세입자임을 공개하기 싫어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전월세 실거래가가 이미 공개된 빌라 등의 임차인들이 과도한 개인정보 공개라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토부는 "특정 동호수를 공개하지 않고 층수만 공개해 개인정보 침해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세대수가 많아 특정 가구의 거래 내역을 알기 어려운 아파트와 달리 빌라나 단독·다가구 등은 가구수가 많지 않아 주소를 알면 특정 가구의 전월세 거래 내역을 상대적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송파구 소재 빌라에 사는 A씨는 "안 그래도 거주지나 자산 규모로 사람들의 계층을 나누고 아이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이 생기기도 하는 사회인데, 빌라에 전월세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계층간 갈등 부추길수도...최소한의 절차는 거쳐 볼 수 있게 해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 내 전월세 가격이 공개된 모습/사진= 국토부 사이트 캡처화면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 내 전월세 가격이 공개된 모습/사진= 국토부 사이트 캡처화면
앞으로 전월세 실거래가 공개가 확대되면 이 같은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자산으로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적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면서도 "빌라 등 월세의 경우 보증금 낼 돈도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 더욱 사회적 갈등 요인이 잠재돼 있고 계층간 양극화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빌라나 단독·다가구주택은 각 집마다 특성에 차이가 커서 인근에 있더라도 시세가 크게 다를 수 있고 임차인들이 전셋집을 구할 때는 부동산 매물로 시세를 확인할 수 있다"며 "세입자가 참고할 수 있는 정보이긴 하지만 굳이 과거 전월세 실거래가격을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일반인들이 전월세 확정일자를 받으면 실거래가가 공개된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제를 도입하더라도 필요한 사람들만 절차를 거쳐 볼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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