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장혜영 당선인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방문해 휴대폰으로 본회의장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있다. /사진=뉴스1
장 위원장은 2011년 11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06학번으로 재학할 당시 명문대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이별 선언문'이라는 대자보를 학교에 내걸고 자퇴를 선언했다.
앞서 자퇴한 두 사람이 학벌 폐지 등의 이유를 앞세운 반면 장 위원장의 자퇴 명분은 좀 더 단순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대학 졸업장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고 한계 없는 자신을 찾겠다는 선언이었다.
장 위원장은 "대학에 안갔으면 연세에 안 왔으면 또 그 나름 다른 무언가를 만나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느낌들을 가지며 살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어느 날, 교정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좁아보여 나는 바야흐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장 위원장의 대학 자퇴 이후 삶은 실제로 다양했다. 2018년 정의당 입당 전까지 2년여간 세계 여행을 하는가 하면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버 활동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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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장 위원장은 장애인 동생의 자립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든 영화 감독으로도 변신하면서 인권운동가 활동도 했다. 이 영화는 17년 동안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한 동생이 시설의 인권침해 논란으로 퇴소해 언니와 살게 되는 일상을 다뤘다.
장 위원장은 동생과의 경험을 통해 혁신위원장 1호 공약으로 '장애인 활동 지원 24시간 보장'을 제안했다.
장 위원장은 앞으로 4·15 총선에서 지역구 1명, 비례 5명 당선이라는 기대 이하 성적을 낸 정의당을 재정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장 위원장은 전날 혁신위 발족식에서 "혁신이란 어쩌면 정의롭다는 게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진보정당이 가져야 하는 건 뭔지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위 위원장이 지난 2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21대 총선 비례대표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나는 06년도에 사과대에 입학한 장혜영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공개 이별을 선언합니다. 나의 이별 상대는 여러분도 잘 아는 연세, 우리 학교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진리하고, 또 진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자유를 진리함이란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웠으며 또한 계속 그러하리라 함을 깨닫는 것이고, 진리를 자유케함이란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 바를 자유로이 펼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날개의 자유를 깨달은 새들이 하염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새들에게 날개의 자유가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믿고 사랑할 것을 선택할 자유, 그렇게 선택한 아름다움을 지켜낼 자유, 즉 `사랑에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깨닫고 소중히 여겨야 할 진실에 가장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요.
문득 생각해봅니다. 만일 연세를 만나지 않았다면, 대학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모든 지점들에 닿을 수 있었을까. 이 느낌들, 생각들을 가질 수 있었을까. 눈 앞의 이 순간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까.
글쎄요. 아쉽지만 이건 그냥 과장된 강조의 수사입니다. 대학에 안 갔으면, 연세에 안 왔으면 또 그 나름 다른 무언가를 만나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느낌들을 가지며 살았겠지요. 우리가 사는 시간은 결코 역행하는 법이 없기에 `만일 내가 그 때 너를 못 만났다면` 같은 가정은 치사한 얘기입니다. 한편 가지 않은 길을 애써 폄하하며 상대적으로 현재를 비교우위에 놓아보려는 시도 역시 참으로 안타깝고 볼품없는 사업입니다.
나는 지금 연세에게 천의 고마움과 천 하나의 아쉬움을 담아 담담히 작별을 고합니다. 고마워, 학교야. 근데 우리 이제 더는 아냐.
감히 말하건대 우리 연애는 연탄재 발로 차도 될 만큼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교정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좁아보여 나는 바야흐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연세와 깨진다 하니 주변에서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다채로운 반응의 구절판을 맛보았습니다. 4년을 다녀놓고 이제 와서 아깝게 무슨 짓이냐. 조금만 참으면 그 또한 다 지나가는 것을. 혹은 네가 배가 불렀구나, 한국 사회에서 고졸로 사는 게 만만해 보이냐.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까지 쿨해보이고 싶냐는 소리까지도 들었습니다.
허나 이 이별에는 아무런 당위도 없습니다. 물론 핑계를 대자면 삼일 밤낮을 주워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안 들더라, 이런 줄 알았는데 저렇더라, 속았다, 지쳤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변심을 변호하기 위해 한 때의 연인을 깡그리 몹쓸 존재로 전락시키는 이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떠나는 까닭은 그저 여름이 가을로 변하듯 내 마음이 어느새 학교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마음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또 다른 긴 사연입니다.
사랑에의 자유,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선배를 둔 우리가 사랑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누가 한 점 부끄럼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까.
나는 이제 연세가 아닌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
재미없는 질문을 몇 개 남기고 싶습니다. 학우 여러분은 학교를 사랑합니까? 예비 학우 여러분은 연세와, 아니 대학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지금 여기 있습니까? 혹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정말 내일이 오나요?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네 명의 해맑은 영국 청년들은 이렇게 노래해 주었습니다. `All You Need Is Love(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에요)`.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