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 파주 8세대 LCD공장 /사진제공=LG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도권은 각종 규제에 묶여 있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19(COVID-19) 시대에서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을 '유턴'시키는 게 알자리 창출과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래 신성장 동력을 중심으로 수도권 진입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대규모 신증설을 막아놓은 수도권 규제를 피해 중국이나 대만을 향할 뻔했던 디스플레이 생산시설은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규제는 살펴보고 바로 조치토록 하라"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파주로 발길을 돌렸다. LG디스플레이가 LCD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한 초석은 그렇게 파주에 자리했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별도 허가가 필요하고 수도권 공장의 신증설 총 면적 허용량을 정해두는 총량규제도 있다. 이외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 적용되는 법만 9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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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생산시설이 몰리는 것을 막아 지방으로 분산하겠다는 의도지만 '거미줄 규제'는 지역 균형발전 기여보단 부작용이 더 크다. 기업이 해외를 택하기 때문이다. 투자 메리트가 적고 물류비용이 드는 지방에 가느니 중국, 베트남 등 외국에 공장을 짓는 게 낫다는 논리다. 물류비용이 상대적으로 올라가도 적은 인건비 덕에 상쇄가 다능하고 그 외 중앙정부-지방정부 규제가 적은 것을 고려하면 이득이라는 계산이다.
정부가 해외로 나간 기업을 다시 불러들이는 유턴기업(국내복귀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 역시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도 수도권으로 복귀할 경우 입지·설비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강력한 수도권 규제는 한국에 투자하려던 외국인투자기업이 발길을 돌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2006년 영국계 기업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백신 제조공장을 경기 화성에 세우려다가 공장총량제로 투자를 포기한 게 대표 사례다.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와 경쟁하고 잇는 해외 주요국은 수도권 규제를 푸는 추세다. 고도성장이 도쿄 집중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택했던 일본은 2000년대 정책을 180도 돌렸다. 입지제한을 없애고 자국기업의 국내 투자를 적극 유도 중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수도권에 대한 규제 대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정책기조를 맞췄다. 대도시권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판단이다.
국내에서도 수도권 규제를 풀면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연구원은 수도권 규제 완화시 일자리 94만개를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세계가 'K-방역'에 주목하는 시점에서 기업 투자를 고민하게 하는 대못 규제를 뽑아 한국의 매력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포스트 코로나에 유턴기업 바란다면…"그린·IT만에라도 수도권 문턱을"
코로나19 이후 경쟁에는 수도권 규제는 효과 보단 기업 혹은 도시 경쟁력 강화를 막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2018년 기준 중소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전년 대비 31.5% 증가한 100억달러인 반면 국내 투자가 24.6% 감소한 것이 단적인 예다.
기업이 해외를 찾는 이유는 대개 시장개척 혹은 국내규제 회피다. 기업의 유턴을 촉진하기 위해선 적어도 규제회피로 인해 바다를 건너는 일은 줄여야 한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정부·공공기관은 지방으로 보내면서 수도권 규제는 그대로 묶어두니 기업이 해외로 나간다"며 "'어차피 물류비용이 들고 인력 충원이 어려울 바엔 해외로 나가자'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자연보전권역 규제, 공장의 신·증설 제한 규정을 조금만 완화해 주거나 반도체 등 수출주도기업 또는 최근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린뉴딜 관련 기업의 등에 한정해서라도 제한적으로만 풀어만 줘도 효과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기업이 국내로 돌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는 상황"이라며 "생산성이나 인력 효율에 따라 공장 입지 선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참에 각종 수도권 규제를 완화할 필요성이 나온다. 수도권 공장 신증설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이 늘면 세수증가도 뒤따른다. 이를 지방에 골고루 분배한다면 추가적인 고용창출과 경제 활성화, 지방의 세수 확보로 이어지는 선순환 을 만들수 있다는 계산이다.
세계 무대에선 나라가 아닌 대도시 단위로 경쟁을 하는 시대다. 2014년 기준 수도권은 우리나라 인구의 49.5%, ICT(정보통신기술) 사업체의 약 72.8%, ICT 종사자의 약 68.1%가 몰려 있다.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건 수도권의 풍부한 인프라 덕분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수도권만 옭아매는 구조로는 지금껏 쌓아온 글로벌 경쟁력조차도 언제든 모래성처럼 사라질 수 있다. 이창무 교수는 "해외 주요 국가는 국가 간 경쟁이 결국 대도시권 경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며 "대도시 간 경쟁인 시대에서 국가가 전체적으로 먹거리를 확대하지 않는 한 지방에 나눠줄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행정구역상 서울·인천·경기 권역에 속해 도심과 동일한 수도권 규제를 받는 역차별도 존재한다. 경기 동부와 북부 등 일부 지역은 혁신도시를 포함한 지방 거점보다도 인구나 생산성에서 뒤떨어지지만 규제는 서울과 동일하게 받는다는 지적이다. 지난해에는 경기도가 양평, 가평, 김포, 파주, 연천, 양주, 동두천, 포천 등을 수도권에서 제외해달라고 정부에 요구까지 나왔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동북부는 다른 지방에 비해 상당히 낙후됐음에도 행정구역상 수도권 규제에 자연보존권역 규제까지 받는다"며 "코로나19 이후 기업유턴을 바란다면 친환경 혹은 IT 기업에 한해서라도 과감한 규제 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