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처도 원치않는데…'애물단지'된 대기업 참여제한제도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20.05.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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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발목잡힌 공공 SW시장] ① 갈라파고스 규제에 멍드는 공공SW 생태계

편집자주 대기업의 공공SW 참여제한 제도가 시행 7년차를 맞아 기로에 섰다. 대기업의 공공시장 독점을 막아 역량있는 중소·중견 SW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였지만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국가 공공 IT사업이 부실화되고 발주처들조차 원치 않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정부가 제도개선을 검토하고 나선 가운데 대기업 참여제한제도의 현주소와 개선점을 모색해본다.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 차원에서 ‘온라인 개학‘을 한 20일 서울 용산구 용산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으로 개학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초등 1∼3학년 137만여명이 3차 온라인 개학을 시작해 전국 초·중·고교생 535만명이 모두 원격수업을 받게 됐다. 2020.4.20/뉴스1(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 차원에서 ‘온라인 개학‘을 한 20일 서울 용산구 용산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원격으로 개학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초등 1∼3학년 137만여명이 3차 온라인 개학을 시작해 전국 초·중·고교생 535만명이 모두 원격수업을 받게 됐다. 2020.4.20/뉴스1


# 지난달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심의위원회는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구축 사업에 대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교육부의 요청을 끝내 거부했다. 교육부는 NEIS 사업이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학적을 관리하는 핵심 시스템으로 중요성이 큰 만큼, 대기업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 제한 제도의 예외 대상으로 허용해줄 것을 지난해 12월부터 세차례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심의에서 탈락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 안팎에서는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IT업계에서도 NEIS는 정부 어떤 시스템보다 이용기관이 많고 구성이 복잡해 대기업이 아닌 중견 IT기업이 구축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설득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중견기업 중심으로 구축해 올 초 개통한 교육기관 회계행정업무 시스템 ‘K-에듀파인’이 잇단 접속장애로 교사들의 보이콧 사태에 직면했던 사태가 NEIS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2013년 시행돼 7년 차에 접어든 대기업 공공SW사업 참여제한 제도가 잇따라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공공SW 시장에서 일부 중견SW기업들만 득세하고 프로젝트 부실화 논란까지 이어지자 발주기관들의 고민이 깊다.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책으로 디지털 뉴딜을 내세웠는데 대기업 참여 폭이 커지지 않으면 IT인프라의 안정적 구축은 물론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발주처들부터 불만을 제기한다. 최근 주요 차세대 IT 프로젝트를 발주한 공공기관들 상당수가 대기업 참여 예외적용을 신청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차세대 지방세시스템, 국세청의 빅데이터시스템, 기획재정부의 차세대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 보건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등이 대기업 참여를 신청해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통과율은 50%에도 못 미친다. 발주처들은 국가안보와 관련되거나 신기술을 접목한다는 이유로 대기업 예외적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초대형 국가 기간시스템 사업을 중소 IT기업에 맡
길 경우 제때 구축되지 않거나 자칫 부실화될 것을 우려한 속내가 담겨있다.

실제 한 발주처 관계자는 “수천억원 규모 대국민 서비스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면서 “중견기업의 구축역량이 과거보다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프로젝트가 부실화된 사례가 적지 않았고, 최신 트랜드인 클라우드와 AI(인공지능),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신기술 역량에서도 뒤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참여제한 시행이후 전자정부 수출은 반토막이 났다/자료=행정안전부대기업참여제한 시행이후 전자정부 수출은 반토막이 났다/자료=행정안전부


이는 지난달 EBS의 온라인클래스 구축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개학을 위해 갑작스레 온라인클래스를 추진했지만 시스템 장애가 지속되고 '교육대란' 직전까지 가자 대기업인 LG CNS에 긴급 요청해 문제를 해결한 것. 그러나 현행 법령대로라면 대기업인 LGCNS는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없어 회사가 무료로 시스템구축에 나섰다.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대기업의 사업참여 기회를 가로막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했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3월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자정부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법안은 대규모 민간투자가 필요하다고 행안부 전자정부추진위원회가 인정하거나 설계가 복잡하고 고도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사업 중 행안부 장관이 고시하는 경우 소프트웨어진흥법상 대기업참여제한 예외를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결국 국회통과는 실패했지만 그만큼 행안부 등 발주처들의 불만이 읽히는 대목이다.

한 공공기관 정보화담당관 출신 인사는 “공공프로젝트를 마중물삼아 중소중견 SW를 육성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결국 대기업의 빈자리를 몇몇 중견IT 기업들이 차지했다”면서 “전 국민이 이용하는 공공IT시스템의 안정적 구축이 무엇보다 우선된 가치이고 과거와 같은 갑질이나 횡포도 제도적으로 차단된 만큼 대기업과 중견, 중소기업이 모두 상생하며 사업에 참여하는 구조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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