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아시아나항공의 운명

머니투데이 강기택 금융부장 2020.05.22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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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착 상태다. 사는 쪽은 거래를 완성하는 것과 깨는 것, 양방향을 다 보고 있다. 전자보다는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의 현 단계다.



 주가가 주는 신호는 명확하다. 금호산업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사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난해 9월2일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의 주가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1분기 매출이 급감하고 5500억원가량의 당기순손실을 낸 뒤 인수포기설이 확산하자 주가 반등세가 가팔라졌다. 시장은 ‘딜 파기’에 베팅한 것이다.

 시작은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던 정몽규 HDC현산 회장과 호텔 등 관광산업에 투자를 해 온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함께 인수하자는 데 뜻을 모으면서다. HDC현산이 전략적투자자, 미래에셋대우가 재무적투자자로 역할분담을 해 컨소시엄을 짰다. 인수가격을 2조5000억원으로 써내 지난해 9월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12월 말 본계약을 했고 계약금(2500억원)도 지불했다.



 일이 꼬인 건 코로나19(COVID-19)로 항공산업의 업황이 망가지면서다.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유상증자를 미뤘다. 금호산업이 보유한 구주를 사는 것도 일단 연기했다. 각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러시아가 아직 승인하지 않은 탓이라고 했다. 대외용 멘트에 가깝다.

 HDC현산은 지난해 4분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계약하기 전인 3분기보다 약 2조6000억원 늘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금호산업이 매각 전 이행해야 할 ‘선행조건’도 충족되지 않았다고 했다. 파는 쪽의 귀책사유를 하나씩 열거한 셈이다. 인수조건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원하는 수준을 맞춰주지 않으면 그것조차 엑시트하기 위한 소송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물론 유리한 인수조건을 끌어내려는 제스처임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HDC현산 입장에선 계약을 되돌려야 하는 이유가 적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 부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은 1분기에 추가로 5900억원의 빚을 졌다. 2분기가 끝나면 더 많아진다. 그만큼 기업가치가 떨어진다. 항공업 경험도 없는 HDC현산이다. 그룹 매출이 6조5000억원 남짓인 HDC현산까지 부실화할 수 있다.


 게다가 컨소시엄의 일원인 미래에셋대우는 7조원대 미국 호텔인수 계약을 해지했다. 박 회장과 정 회장이 애초 구상한 계획이 틀어졌다는 의미다.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아메리칸, 델타, 사우스웨스트, 유나이티드 등 미국 항공사 지분을 전량 손절매했다. 아무도 항공업에 투자하지 않는 시점이다.

 그렇지만 계약을 물리는 것에도 리스크는 존재한다. 매각이 불발될 경우 HDC현산을 비롯한 이해관계자 모두 패배자가 된다. 이대로라면 아시아나항공은 2분기에 완전 자본잠식이 될 것이다. 이는 곧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의 가치가 제로가 된다는 얘기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팔아 그룹의 회생을 도모하려던 금호 계열사들이 존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금호그룹이 해체되는 것은 아시아나항공을 부실기업으로 만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자업자득이고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

 문제는 HDC현산과 채권단, 정부의 손해다. HDC현산이 날리는 건 계약금만이 아닐 수 있다. 정부로부터 신뢰를 잃는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의 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그 주주인 정부의 부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두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나빠지면 재정(혈세) 투입도 커진다. 채권단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HDC현산도 사업적 판단에 따른 정무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광화문]아시아나항공의 운명


 여전히 ‘일말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HDC현산이 발을 뺄 수도 있다고 보고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마련해 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금으로 넘어가는 순간 아시아나항공은 좀비 상태로 연명하는 신세가 된다. 주인도 없이, 경쟁력도 없이 추락할 것이다. 그것이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이라면 하는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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