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던 정몽규 HDC현산 회장과 호텔 등 관광산업에 투자를 해 온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함께 인수하자는 데 뜻을 모으면서다. HDC현산이 전략적투자자, 미래에셋대우가 재무적투자자로 역할분담을 해 컨소시엄을 짰다. 인수가격을 2조5000억원으로 써내 지난해 9월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12월 말 본계약을 했고 계약금(2500억원)도 지불했다.
HDC현산은 지난해 4분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계약하기 전인 3분기보다 약 2조6000억원 늘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금호산업이 매각 전 이행해야 할 ‘선행조건’도 충족되지 않았다고 했다. 파는 쪽의 귀책사유를 하나씩 열거한 셈이다. 인수조건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원하는 수준을 맞춰주지 않으면 그것조차 엑시트하기 위한 소송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물론 유리한 인수조건을 끌어내려는 제스처임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HDC현산 입장에선 계약을 되돌려야 하는 이유가 적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 부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은 1분기에 추가로 5900억원의 빚을 졌다. 2분기가 끝나면 더 많아진다. 그만큼 기업가치가 떨어진다. 항공업 경험도 없는 HDC현산이다. 그룹 매출이 6조5000억원 남짓인 HDC현산까지 부실화할 수 있다.
게다가 컨소시엄의 일원인 미래에셋대우는 7조원대 미국 호텔인수 계약을 해지했다. 박 회장과 정 회장이 애초 구상한 계획이 틀어졌다는 의미다.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아메리칸, 델타, 사우스웨스트, 유나이티드 등 미국 항공사 지분을 전량 손절매했다. 아무도 항공업에 투자하지 않는 시점이다.
그렇지만 계약을 물리는 것에도 리스크는 존재한다. 매각이 불발될 경우 HDC현산을 비롯한 이해관계자 모두 패배자가 된다. 이대로라면 아시아나항공은 2분기에 완전 자본잠식이 될 것이다. 이는 곧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의 가치가 제로가 된다는 얘기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팔아 그룹의 회생을 도모하려던 금호 계열사들이 존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금호그룹이 해체되는 것은 아시아나항공을 부실기업으로 만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자업자득이고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
문제는 HDC현산과 채권단, 정부의 손해다. HDC현산이 날리는 건 계약금만이 아닐 수 있다. 정부로부터 신뢰를 잃는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의 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그 주주인 정부의 부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두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나빠지면 재정(혈세) 투입도 커진다. 채권단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HDC현산도 사업적 판단에 따른 정무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