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유턴 해봐야 '역차별' 뿐…돌아올 이유가 없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심재현 기자 2020.05.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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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메이드 인 코리아']④일자리 먼저! 규제 풀자 (下)

편집자주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 달라진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은 ‘제조업 리쇼어링’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무역·투자 상대국의 국경봉쇄가 잇따르면서 우리 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소비시장과 저임금 인력을 찾아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제조업 생태계는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짜인다. 대기업을 돌아오게 하는 과감한 정책전환과 사회적 문화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日 토요타가 부러운 현대차…'빈 손 유턴' 언제까지
대기업 유턴 해봐야 '역차별' 뿐…돌아올 이유가 없다


"일본 토요타는 리쇼어링(해외진출 자국기업 유턴·re-shoring)을 결정한 뒤 정부로부터 파격 혜택을 받았다는데…"

대규모 해외투자를 국내로 돌려세운 현대차 (249,500원 ▼500 -0.20%)그룹과 효성 (58,900원 ▲500 +0.86%)그룹은 토요타 사례가 부럽기만 하다. 우리 정부의 '유턴' 지원이 중견·중소기업에만 집중돼 이들 기업은 사실상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빈 손 유턴'을 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알아서 한 투자에 정부가 무슨 혜택을 주느냐"는 식으로 각 세울 일이 아니다. 판로와 인건비를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선 해외로 향하는 게 한결 유리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리쇼어링'으로 방향을 틀었다. 덕분에 그들이 돌아온 지역에는 엄청난 일자리를 제공했고, 경제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 현대모비스 (240,500원 ▼3,500 -1.43%)는 울산 북구 이화산업단지에 전기차용 부품공장을 짓고 있다. 전 세계에 현대·기아차 글로벌 생산기지가 12개나 되기 때문에 한국에 전기차용 부품공장을 짓는 것은 쉽지 않다. 전기차 시장 규모가 큰 중국이나 미국에 공장 건립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끝내 울산을 낙점했다.



대기업은 혼자만 움직이지 않는다. 현대모비스의 이런 리쇼어링 투자는 현대모비스만 오는 게 아니다. 이번 투자에도 협력사 50여개사가 함께 따라온다. 항공모함이 선수를 틀면 함대가 모두 함께 움직이는 식이다.

이 투자로 울산에 생기는 양질의 일자리 1000개가 훨씬 넘을 전망이다. 지방정부의 세수입은 물론 지역 경제에도 보이지 않는 효과가 기대된다.

대기업 리쇼어링의 엄청난 파급효과는 효성도 마찬가지다. 효성은 베트남에 지으려고 했던 차세대 섬유 생산라인을 역시 울산으로 돌렸다. 베트남 동나이성에 차세대 화학소재 '아라미드' 생산라인을 구축하려 했지만 막판에 울산공장 증설로 선회한 것이다. 올 하반기부터 증설 공사에 들어가 내년 5월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이 아라미드 공장도 수 백 개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효성은 사실 베트남에도 얼마든지 공장을 가동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남쪽에 효성, 북쪽에 삼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정이 밝다. 이미 동나이성 일대에서 대대적 첨단소재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효성이 베트남에 추가 투자를 한다면 당장 지방정부가 세제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몰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효성은 한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울산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현대모비스와 효성 사례를 이을 대기업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두 기업 외에 앞으로 당분간 추가 유턴을 선언하는 대기업은 찾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주력 판로가 해외인데다 각종 혜택도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더 좋은데 어느 대기업이 한국으로 돌아오겠느냐는 것이다.

노동력이나 원자재 확보도 해외가 한국보다 훨씬 유리하다. 한국 특유의 경직된 노동법과 높은 인건비, 각종 규제들은 기업 입장에선 선택할 이유가 없는 악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 진출 기업의 96%가 "한국 유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을 거치며 내수경제 사수는 이제 선진국들의 지상과제가 됐다. 전략적 리쇼어링은 각국 정부의 핵심 정책이 될 조짐이다. 당장 미국 같은 최강국도 반도체 부품 공급망은 물론 마스크 자체 조달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세계 각국은 앞다퉈 리쇼어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 이후 리쇼어링 열기가 뜨거워지며 매년 수 백 개 기업이 자국으로 사업장을 옮긴 경험이 있다. 수 만개 일자리가 창출되며 그 효과는 미국인들 스스로 생생히 목격했다.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라는 공공기관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정부의 의지가 강력하지 않으면 리쇼어링도 없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멕시코 공장 생산라인을 사이타마현으로 옮긴 혼다(2016년)와 2017년 미국의 캠리 생산라인을 아이치현으로 돌린 토요타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리쇼어링 정책을 단행하며 파격적인 대기업 지원에 나섰다. 일본 내 복귀에 필요한 자금의 50%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리쇼어링 정부 지원 현주소는 뜨뜨미지근하다. 한국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에 아직도 인색하다. 법 개정으로 지원 대상을 해외사업장 '50% 축소'에서 '25% 축소'로 낮췄지만 아직도 대기업에게는 리쇼어링 혜택은 힘들다. 한 화학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대부분의 해외사업 규모가 상당한데 이중 25%를 한국으로 옮기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대기업이 리쇼어링을 독려하려면 좀 더 전향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본다. '세금·토지·관세'의 3종 지원세트를 대기업에게도 분명히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혜택이 주어지더라도 규제가 동시에 작용한다면 리쇼어링 지원은 말장난에 그칠 것"이라며 "수도권 규제를 포함한 각종 규제 해소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TV·휴대폰 해외로 빼는 대기업들, 왜 협력사에만 유턴 독려하나

대기업 유턴 해봐야 '역차별' 뿐…돌아올 이유가 없다
"해외로 나간 공장을 국내로 돌아오게 하는 문제는 복합 방정식입니다."

국내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20일 기업 리쇼어링((해외진출 자국기업 유턴·re-shoring)은 절대 풀기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이유가 복합적이듯,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해법도 다층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2018년 11월 조사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해외 사업장을 가진 제조업체 150개사를 대상으로 해외 이전 이유를 묻자 △해외시장 확대 필요 △국내 고임금 부담 △노동시장 경직성 압박 △지나친 기업규제 △인센티브 부족 등 기업 수만큼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또 다른 4대 그룹 임원은 "애매모호한 인센티브 몇 개를 준다고 해서 기업이 적게는 수 백억원, 많게는 수 십 조원을 투자해야 하는 해외공장을 국내로 돌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기업의 발길을 돌리려면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확실한 '당근'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인 투아웃'…미국의 리쇼어링 성공비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로이터 / 사진제공=ap-로이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로이터 / 사진제공=ap-로이터
미국에서 유턴기업이 최근 2년 새 급증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리쇼어링을 그만큼 복합적으로 고민한 결과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자국 기업에 힘을 실어주며 해외공장 유턴을 위한 규제 완화에 힘썼다.

규제 하나를 새로 만들면 기존 규제 둘을 폐지하는 '원 인, 투 아웃(One In, Two Out)' 방침이 그렇게 만든 제도다. 해외로 나간 아디다스를 유턴시킨 독일에서도 이런 혜택들이 배경에 있었다. 독일은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기존 규제 하나를 없애는 '원 인, 원 아웃'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규제 공화국'으로 불린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18년 말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기업 관련 법안 1500여개 가운데 800개 이상이 규제법안"이라고 했을 정도다. 20대 국회 폐회를 앞둔 현재 규제 관련 법안 발의는 3800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미국이나 독일의 리쇼어링 혜택은 기업 규모와 아무 상관없이 이뤄졌다고 강조한다. 미국은 유턴기업이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공장 이전에 드는 모든 비용을 세액공제 해줬다. 소니와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일본도 대기업의 공장 이전비 50%를 정부가 내줬다. 그러자 혼다자동차까지 베트남 등지의 해외 생산라인을 자국으로 이전시켰다.

해리 모저 리쇼어링이니셔티브 회장은 "법인세 감면 등 규제 완화가 리쇼어링 성과를 내는 데 주효했다"고 공언할 정도다. 이런 혜택 때문에 기업들이 총 소유비용(TCO)을 분석해 해외생산에 드는 유지비와 운송비 같은 숨은 비용을 찾아냈고, 해외생산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안 된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역차별 말아야…일자리 초점 맞춘 혜택 필요

lg전자 구미사업장. /사진제공=LG전자lg전자 구미사업장. /사진제공=LG전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기업 유턴과 해외 첨단산업 투자 유치를 과감하게 추진해 '대한민국을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우리 현실은 안타까운 수준이다. 한국 기업이 유턴하려면 2년 이상 해외 사업장을 유지해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기여 효과가 더 큰 대기업은 공장을 국내로 돌려도 정부 보조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보조금 지원 비율이 지역에 따라 다른 것도 원하는 곳으로의 리쇼어링을 막는 요인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지금은 대·중소기업을 따질 시점이 아니다"라며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제와 인허가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LG전자 (90,800원 ▲200 +0.22%)가 해외에 진출한 협력사가 국내로 유턴할 경우 '일거리', 즉 구매물량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리쇼어링을 위한 민관 합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LG전자가 직접 리쇼어링에 나서지 못하고, 협력사 유턴만 지원하겠다는 것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진단한다.

대기업에게는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제도가 대기업은 여전히 해외에 붙잡아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LG전자는 구미사업장의 6개 TV 생산라인 중 2개를 연말까지 인도네시아로 옮길 것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공식적으로는 글로벌 생산지 효율화를 통한 TV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들지만 이면에는 국내의 노동·규제 현실에 대한 부담을 견디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TV 수요가 정체된 상황에서 중국 TV업체의 저가 공세가 심해지자 가격경쟁을 위해 해외 이전을 결단했다는 얘기다.

업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임금 수준은 한국의 15%~20% 수준이다. LG전자는 지난해 평택 휴대폰 공장도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차질로 기업들의 유턴 심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를 현실화하려면 아직도 멀었다"며 "리쇼어링을 제대로 유도하려면 대기업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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