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인증서만? 30년 낡은 '요금인가제도' 사라진다

머니투데이 김지영 기자, 조성훈 기자, 김주현 기자 2020.05.21 05:30
글자크기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오랜 기간 낡은 규제로 지적돼 온 통신요금인가제와 공인인증제도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일부 우려점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새로운 경쟁 환경을 구축할 것이라는 기대에 무게가 실린다.



이와 함께 해외 사업자의 무임승차 규제를 위한 넷플릭스 방지법과 'n번방 방지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요금인가제→ '유보신고제'로 옷 갈아입은 요금 규제
20일 국회 본회의 심사 안건 투표 결과 통신 요금인가제 폐지와 유보신고제 신설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재석 178인 중 찬성 170, 반대 2, 기권 6으로 가결됐다.



이에 통신 시장에서 요금제와 관련해 자유로운 시장 경쟁으로 요금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최기영 장관은 이날 법사위에 참여해 "자유경쟁체제로 가면 요금인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통신 3사 역시 요금 경쟁이 활발해지면서 이용자 확보를 위해 가격 인하 경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요금 인가제란 유무선 통신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거나 요금 인상시 정부의 인가(허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약탈적 요금정책을 막아 시장 왜곡과 이용자 후생 침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지난 1991년 도입됐다.

이에 따라 이동전화와 유선전화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KT는 각각 새로운 유·무선 요금 상품을 출시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이 새 요금제를 정부에 제출하면 KT와 LG유플러스가 이를 기준으로 유사한 요금제를 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각에선 정부가 사실상 ‘요금 하한선’을 정하는 효과를 내 통신사 간 요금 경쟁을 막는다는 비판과 함께 정부에서도 폐지 수순을 밟아왔다.


이번 20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시민단체들은 요금 인상 우려를 표하며 요금인가제 폐지에 강하게 반발해 왔지만 30여년 간 유지되어 오면서 변화된 시장 환경을 고려하고 유보신고제를 대안으로 제시해 힘을 얻은 것으로 풀이된다.

'공인' 계급장 뗀 공인인증서…블록체인·생체인증 등 신기술 기반 전자서명 시대 열린다
이날 공인전자서명의 우월한 법적 효력을 폐지하는 내용의 전자서명법 전부개정안도 국회(임시회) 문턱을 넘었다.

이번 개정으로 전자서명의 시장경쟁이 촉진돼 블록체인, 생체인증 등 신기술 기반의 다양한 전자서명의 개발‧이용이 활성화되고 국민의 전자서명 이용 편리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1999년 제정된 전자서명법은 공인인증제도를 도입해 인터넷을 통한 행정, 금융, 상거래 등을 활성화하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공인인증제도가 20년 넘게 유지되면서 우월한 법적효력을 가진 공인인증서가 전자서명시장을 독점해 새로운 기술기업의 시장진입 기회를 차단하고, 액티브엑스 설치 등 이용자의 불편을 초래하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2018년 공인인증제도 개선정책을 발표하고 시민단체, 법률전문가, 이해관계자 검토회의 등을 거쳐 같은 해 9월 전자서명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전자서명법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공인전자서명의 우월한 법적 효력 폐지를 통한 다양한 전자서명수단 간의 경쟁 활성화 △전자서명 인증업무 평가‧인정제도 도입 △전자서명 이용자에 대한 보호조치 강화 등이다.

개정법 통과로 공인전자서명의 우월한 법적효력이 폐지되면서 공인·사설 인증서 차별이 없어져 전자서명 시장에서 자율경쟁이 촉진될 전망이다. 블록체인, 생체인증 등 다양한 신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전자서명 서비스 개발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서명 이용기관은 기존 공인전자서명 대신 편의성 및 신뢰성이 높은 다양한 전자서명수단을 이용하고 국민들도 액티브엑스 설치 등의 불편함이 없는 다양하고 편리한 전자서명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으로 과기정통부는 내다봤다.

한편, 공인인증제도가 폐지되어도 기존의 공인인증서는 다양한 전자서명 수단 중의 하나로 계속 사용될 수 있다. 또 기존 공인인증서는 유효기간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그 이후에는 이용기관 및 이용자 선택에 따라 일반 전자서명 중 하나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2차관은 "이번 법 개정으로 신기술 전자서명이 활성화되고 국민들께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인터넷 이용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면서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대면 서비스의 핵심인 인증기술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용자보호, 이젠 ISP와 CP 공동책임"…해외 CP 횡포 견제 발판될 것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CP)들의 국내 통신망 무임승차 논란이 지속돼온 가운데 글로벌CP 횡포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글로벌 CP들과 통신사들의 망 이용료 협상을 둘러싼 대립 기류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국내 시장에서 돈만 벌고 망 품질과 관련해 국내 기업들에게 떠맡겨왔던 해외 기업들의 관례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번 법 통과로 예상되는 가장 큰 변화는 이용자보호 책임이 CP에게도 부과된다는 점이다. 해외사업자라도 이용자수‧트래픽양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대형 CP에게는 이용자보호 의무가 생긴다. 대상 사업자는 추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된다.

신설되는 법안에 따르면, 이용자수, 트래픽 양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이용자에게 편리하고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비스 안정수단의 확보,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 이용자보호 업무를 처리하고 자료제출을 이행해야 한다.

그동안 글로벌CP의 '기울어진 운동장'과 '무임승차' 논란은 수년간 반복돼왔다. 국내 사업자와 달리 해외 사업자는 국내법에 규제를 받지 않아 망 사용료도 내지 않고 국정감사 때마다 요구하는 국내 매출액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개정안 통과로 해외사업자가 망이용료를 지불하는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자보호'가 명문화되면서 글로벌CP가 망이용료 협상에서 망 품질 저하 등 이용자들의 통신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하지는 못하게 됐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이용자 보호에 대해 CP와 ISP간 공동 책임이 생긴 것이 가장 크다"며 "트래픽 발생 측면에서 CP는 책임을 모두 ISP에 돌렸는데 이제 CP에게도 책임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망이용료 협상을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넷플릭스는 지난달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확인해달라"며 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이번 법안 통과 여부가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사적 검열 논란 딛고 n번방 방지법 통과… 방통위 "실효성 담보" 의지
이날 본회의에서는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재석 177인 중 찬성 173 기권4로 가결됐다.

해당 법안 정보통신서비스 제공 사업자에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를 두고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등 유통방지와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앞으로는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불법 성착취물이 유통될 경우, 이에 대한 (피해자 등의) 신고, 삭제요청이 있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공공기관)에서 삭제 요청을 했을 때 사업자가 이를 지체없이 처리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사적검열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해 왔지만 n번방 사태가 국민들에게 준 사회적 충격이 큰데다 방통위가 "이용자의 사생활과 통신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표명해 입법 막차에 승차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n번방 방지법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업계 및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조치의 실효성은 담보하면서도 사생활 침해 우려는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의무사업자 관련해서는 "법사위 심사과정에서 수범자의 예측가능성 확보를 위해 조치의무사업자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할 시 전기통신역무의 종류, 사업자의 규모 등을 고려하도록 법안에 반영했다"며 "이를 토대로 방통위는 불법촬영물등이 주로 유통되는 서비스의 유형과 규모를 검토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또 "불법촬영물등을 발견한 이용자가 사업자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불법촬영물등의 재유통 방지 기능, 경고문구 발송 기능 등을 고려하고 있다"며 "과기부, 방심위 등과 조치의무사업자가 불법촬영물등의 재유통 방지에 활용할 '(가칭)표준 DNA DB'를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