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中 유혹에 넘어갔던 김부장 1년만에…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주명호 기자, 심재현 기자 2020.05.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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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중국 인력 블랙홀 '천인계획'] (上)

편집자주 미국 트럼프 정부가 미국 기술을 활용한 반도체 부품을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또다시 미중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돈다. 중국의 반도체 사업은 더욱 '독자생존' 길을 걷고 한국 기술인력 사냥은 한층 노골화할 전망이다.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베끼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 중국의 한국 기술인력 스카웃을 집중 조명해본다.

김 부장은 왜 1년만에 중국에서 돌아왔나
"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中 유혹에 넘어갔던 김부장 1년만에…


#국내 대기업 A사 출신인 김영철(가명,49) 부장은 2년 전 중국 땅을 밟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중국의 한 디스플레이업체 자회사로 스카웃 됐는데 한국에서 받던 연봉의 2.7배와 자녀 교육비와 거주비를 별도로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김 부장은 '기본 3년' 계약에 추가로 얼마든지 고용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김 부장은 고심 끝에 중국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자녀들까지 모두 데리고 중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김 부장은 단 1년 만에 중국의 실상을 뼈저리게 통감해야 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을 스카웃 했던 중국 기업은 당초 제시한 조건과 달리 1년 만에 김 부장을 해고했다. 김 부장의 효용 가치가 기대 이하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일방적 계약 파기였지만 외국인으로 현지에서 소송을 하는 것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며 "최소 3년 이상 중국에서 경력을 쌓으려고 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토사구팽' 알고도 떠나는 이유

김 부장의 사연은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중국 업체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한국 엔지니어들을 유혹해 고용한 뒤 필요한 기술만 빼내고 '토사구팽' 한다는 사실은 이제 정설이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한국 연구진과 기술진의 중국행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그만큼 중국의 한국 인력 스카우트가 블랙홀처럼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디스플레이, 반도체,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한국 인력을 사냥한다. 검증된 인력을 손에 넣는 것이 신기술 습득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무기는 돈이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은 기존 연봉의 3배 이상 고연봉과 거주비, 교육비 등 파격 대우를 내걸고 한국의 우수 인력을 빼가고 있다.

◇진화하는 스카우트 수법…"인력유출 집계 안 돼"

"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中 유혹에 넘어갔던 김부장 1년만에…
스카우트 방식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BOE 같은 중국 대기업의 한국 지사가 자체 네트워크를 활용하거나, 국내 협력업체를 통해 소개 받던 방식은 지양하고 있다. '동종업계 재취업 금지' 같은 견제가 심해 이 방법을 썼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아예 한국 업체가 이직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자회사나 연구기관, 컨설팅업체 소속으로 한국 인력을 위장 취업시키는 수법이 많이 쓰인다. 한국 업체들이 중국 기업으로 넘어간 자사 인력을 파악조차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2018년 제기한 전직 금지 가처분신청 소송의 당사자였던 OLED 패널 관련 퇴직자도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쟁사인 중국 BOE의 협력사 청두중광전과기유한공사(COE)에 입사하면서 문제가 된 케이스다.

한국 법원은 당시 COE의 대주주가 BOE와 같고 회사 건물도 BOE 생산공장과 6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데다 급여를 지급한 회사 이름이 은행거래 내역에 기재되지 않은 것 등을 이유로 BOE에 우회 취업한 것으로 판단해 '전직 금지' 처분을 내렸다.

◇中 연봉 20배 줘도 '남는 장사'…이직 막는 것 한계

업계에서는 중국업체들의 한국 기술진 대우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기존 연봉의 3~4배를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한국에선 경쟁이 치열하고, 정년보장도 어려워 중국을 기회로 여기고 이직을 택하는 직원들에게 무조건 '산업스파이'로 몰아세우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이 한국 기술진에 대한 전략적 스카웃에 나선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 한국 기업들은 뾰족한 처우 개선을 해주지 못한다.

때문에 중국의 인력 사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에서 5년간 100명이 함께 개발한 핵심기술의 경우 기업이 지출한 연봉 기준으로만 해도 수 백억원의 값어치가 있는데 중국은 한국인 개발자 1명의 연봉으로 10배를 제시하더라도 훨씬 비용이 적게 드는 셈이다. 설계도면 등 자료를 빼돌리는 행위는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처벌되지만 단순히 회사를 옮겨 노하우를 전하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인력 신진대사"…국내 여건 만들어야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김 부장은 중국 업체로부터 고용 계약 파기에 따른 위자료 명목으로 한달치 급여만 받았다. 중국으로 취업했다는 '꼬리표'가 붙어 김 부장은 한국 재취업은 꿈도 못 꾼다.

서광현 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40~50대에 퇴직한 사람들은 중국으로 한번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고용을 유지하고 특허 기술개발에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게 절실하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은 "중요한 건 전문 인력의 신진대사"라며 "매년 삼성과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인력이 수 백 명씩 나오는데 이들이 한국에서 계속 일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중국 갔지만…
"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中 유혹에 넘어갔던 김부장 1년만에…
중국 기업들은 과연 어떤 조건을 내걸기에 한국 전문인력을 순조롭게 빼갈 수 있을까? 중국 기업들이 제시하는 카드의 면면을 보면 소득수준과 삶의 질이 한결 높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거주지를 옮기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이 내건 한국 전문인력 채용조건을 보자. CATL은 당시 한국 배터리업체 부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180만위안(약 3억1116만원) 수준의 연봉을 제시했다. 부장급 직원들이 한국에서 받는 평균 연봉이 1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연봉만 3배가 넘는다.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도 파격 조건으로 한국 직원들을 스카웃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 BYD는 고액의 연봉 외에 성과급, 숙소, 자동차 구입 보조금까지 다양한 조건을 내걸었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ATL은 10년전 만해도 기존 연봉의 10배까지 제시하며 한국 인력 모시기에 나섰다.

물론 최근에는 한중 양국의 기술격차가 좁혀지며 이 같은 몸값은 많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받는 연봉의 2~3배는 기본이다. 여기에 대도시 아파트 임대료가 유난히 비싼 중국에선 주택 임대료와 자녀 국제학교 교육비 등이 추가로 붙는다. 한국을 오갈 수 있는 항공권까지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금액만 1억원을 넘기도 한다.

이 같은 파격 조건이 얼마나 심각한 중국 엑소더스(대량으로 인원이 빠려나가는 현상)을 부를 수 있느냐는 통계가 있는 항공 조종사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 7월까지 외국 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 460명 중 80%에 달하는 367명이 중국 항공사로 이직했다.

그러나 중국의 파격 조건은 또 한편으로 위기 시 '해고 1순위'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단적으로 지난 3월 코로나19(COVID-19) 사태 확산으로 경영난을 겪은 중국 동방항공이 한국인 객실승무원 73명을 무더기 해고한 게 대표적이다. 때문에 처음에는 파격 조건만 믿고 이직했다가 2~3년이 채 안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낭패를 겪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중국에서 근무하는 한국기업 주재원은 "중국의 한국인 채용조건은 겉으로 볼 때는 엄청난 조건이지만 정규직이 아닌 경우도 있는 등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헛점이 많다"며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재취업하지 못하는 사례도 꽤 있다"고 말했다.

주명호 기자

'인재 사냥터' 美 막히자 韓으로…반·디 인력 사냥 나선 中
"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中 유혹에 넘어갔던 김부장 1년만에…
"미중 무역전쟁이 재점화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 분야에서 한국 인재들이 다시 중국의 인재 사냥감이 되고 있다."

19일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중국의 인재 스카우트가 다시 활개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5일 사전허가 없이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칩을 공급할 수 없게 하는 수출규제 개정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해법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업계 한 인사도 "3~4년 전 정점에 달했던 중국 업체들의 한국 인력 쇼핑이 2018~2019년 미국의 잇단 제재에 다소 뜸해지는 듯하다가 올초부터 다시 노골적화하고 있다"며 "더는 미국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 차원의 전략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업체들이 노리는 한국 인력은 삼성전자 (80,800원 ▲1,000 +1.25%), SK하이닉스 (178,200원 ▼3,000 -1.66%), LG디스플레이 (10,580원 ▼50 -0.47%), 삼성디스플레이, LG화학 (440,000원 ▼4,000 -0.90%), SK이노베이션 (118,400원 ▼2,300 -1.91%) 등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다.

"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中 유혹에 넘어갔던 김부장 1년만에…
과거에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원했지만 최근에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인재까지 넘본다. 이미 기술 자체가 중국에 상당히 넘어가면서 기술개발을 넘어 실질적인 양산 단계에서 수율(생산품 가운데 합격품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인재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중 무역전쟁이 재점화하는 국면에서 생산성만 높이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한국 인력 스카우트에 다시 열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다.

세계 5위이자 중국 1위 파운드리업체인 중신궈지(SMIC)의 경우 미국의 수출규제 개정 발표 직후 올해 43억달러(약 5조3000억원)를 설비 확장과 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수정 발표했다. SMIC가 올초 내놨던 투자 계획보다 34% 더 늘린 금액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증액된 투자금 가운데 상당액이 한국 기술진을 스카우트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본다.

SMIC는 회로선폭 14나노(10억분의1m) 제품의 시험 양산을 막 시작한 단계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의 7나노 양산 기술과는 아직 격차가 있지만 감히 두 업체를 넘볼 수 없었던 시절에선 벗어났다는 평가다. 원천기술과 함께 생산성을 높이면 격차를 더 좁힐 수 있다는 게 SMIC의 입장이다.

디스플레이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업체들이 한국 인력이라면 수율을 10~20% 올릴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영입한다"고 전했다.

"연봉 3배에 아파트까지" 中 유혹에 넘어갔던 김부장 1년만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애당초 미중 무역갈등이 중국의 전략산업 인재 확보 때문에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제조 2025'의 중점사업으로 반도체를 선정하고 전세계 인재를 싹쓸이하자 중국의 급부상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다는 얘기다.

중국은 2008년부터 첨단산업 분야에서 '천인계획'(1000명의 인재 확보 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업 인재를 대거 스카우트했다. 이 과정에서 2018년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핵심인재 2명을 스카우트하려다가 소송에 휘말린 사건도 있다.

반도체 학계의 한 인사는 "올 들어 미국 정부가 중국의 '천인계획'을 겨냥해 칼을 빼든 게 중국의 한국 인재 확보전을 다시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스카우트가 막히자 풍선효과로 주변국인 한국과 대만 인력을 스카웃하는 방향으로 중국이 눈을 돌렸다는 지적이다.

미국 검찰은 올 1월 나노 테크놀로지의 아버지로 불리며 노벨 화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찰스 리버 하버드대 화학·생물학과 교수를 천인계획에 참여한 사실을 숨기고 지적재산권을 중국 우한이공대에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직원을 포함해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연구자에게 중국 등 미국에 적대적인 외국 정부가 후원하는 인재유치 프로그램 참여를 금지하는 등 미국 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천인계획을 정조준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마냥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중국행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행 수요를 억누르기만 할 게 아니라 국내에 남을 수 있는 유인책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지난 3~4년 동안은 중국을 향하는 인재들을 어떻게 막을까에 집중했지만 효과가 낮았다"며 "국내 환경을 개선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해 중국행보다 한국에 남는 게 낫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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