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때문에…'제약 전쟁'하면 미국은 중국 못이긴다?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20.05.19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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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양국간 갈등이 코로나19 치료제 등 의약품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제약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국이 큰 약점을 노출하게 된다고 17일(현지시간) CNN이 보도했다.

클로로퀸 띄운 트럼프 한마디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BBNews=뉴스1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BBNews=뉴스1


CNN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코로나19 치료제로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이는 하이드로클로로퀸(HCQ)을 "매우, 매우 좋다더라"라면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오히려 미국 제약 산업의 취약성만 드러낸 꼴이 됐다.



인도는 전세계 HCQ 공급의 70%를 차지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전세계에서 수요가 높아지자 인도는 자국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출을 중단했다. 인도 역시 전국봉쇄령으로 생산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규제를 풀라고 압박하기 까지 했다.



인도 보건당국은 현재 클로로퀸 생산량을 늘리고 있으며, 독일, 브라질, 동남아, 아프리카를 비롯해 전세계 97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미 식품의약국(FDA)이 HCQ를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하진 않았지만, 이같은 에피소드는 미국이 인도에 얼마나 큰 복제약 의존도를 지니고 있는지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중국 → 인도 → 미국'...결국 美 숨통 쥔 中
인도 뉴델리의 한 약국에서 판매중인 '클로로퀸' 복제약. 트럼프 대통령이 클로로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지목하면서 전세계 수요가 급증했다. /AFPBBNews=뉴스1인도 뉴델리의 한 약국에서 판매중인 '클로로퀸' 복제약. 트럼프 대통령이 클로로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지목하면서 전세계 수요가 급증했다. /AFPBBNews=뉴스1

인도는 세계 최대의 복제약 수출국이다. 수출 규모는 연간 약 200억달러(약 24조6000억원), 물량으로는 전세계 수출량의 약 20%, 백신의 약 50%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인도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미국은 처방전의 90%가 복제약인데다가, 미국인들이 소비하는 복제약 3개 중 1개는 인도에서 생산된다.

문제는 전세계 제약 허브로 불리는 인도에 원재료라 할 수 있는 원료의약품(API)를 대는 건 중국이라는 점이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이미 인도는 올 1분기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API 수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지난달말 인도 대외무역총국(DGFT)은 지난 3월 API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도에는 API 업체들이 1500여개에 불과한데 중국은 7000여개가 넘는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업체들에게 보조금까지 주고 있어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효능은 똑같은데 저렴하게 공급가능한 복제약의 특성을 고려하면 중국산을 배제하기엔 쉽지 않다.

미국 역시 중국산 API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FDA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미국에 공급되는 API의 72%는 수입된다. 이중 유럽연합(EU)이 26%, 인도 18%, 중국이 13%다.

중국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개최할 때도 API 공급이 줄어들면서 복제약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공기오염을 줄이겠다며 3주간 API를 비롯한 각종 제조업 공장을 문 닫으면서다.

미국과 중국간 제약전쟁이 벌어질 경우 중국이 API 공급 조절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미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탈(脫)중국 노리지만…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트럼프 대통령도 이같은 사실 때문에 필수 의약품은 미국에서 만들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다.

미 정치권에서도 의약품 탈중국 지지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미 민주당에선 2023년까지 중국산 API 수입을 모두 차단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인도 역시 API 중국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팬데믹 기간, 혹은 그 이후까지 상당기간 중국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CNN은 전했다. 그러면서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처럼 민감한 시기엔 공급망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한 국가에 의약품 부족 사태가 일어나는 등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생명윤리 전문연구소 헤이스팅스센터의 로즈메리 깁슨 시니어 어드바이저는 이러한 조치들이 미국의 중국 의존도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복제약의 24.5%는 인도에서 온다"면서 "인도는 원재료를 중국에 상당수 의존하기 때문에 미국이 완전히 제약 부문에서 자립하려면 인도도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네쉬 두아 인도의약품수출입협회(Pharmexcil) 회장도 당장 중국 API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인도 제약산업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데는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CNN은 "당장은 인도도 중국에 의존하는 방법 외엔 없고 미국도 인도 의약품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면서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완료되는 순간 이러한 공급망은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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