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은 못한다는데…1원까지 공개하는 시민단체 있다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2020.05.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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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기부자는 알 권리가 있다]②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성역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역할을 해왔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정의연 문제는 한일 관계, 역사 인식 등과 맞물리는 진영간 이슈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지적돼온 시민단체들의 불투명한 운영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기도 하다. 정의연 사태를 계기로 시민단체들의 불투명한 운영 실태, 심각성, 개선점 등을 살펴봤다. 

'정의연'은 못한다는데…1원까지 공개하는 시민단체 있다


'2월13일: 천원의 기적 장00씨 2000원(수입), 법인카드 문자서비스 400원(지출)'

'루게릭병' 환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승일희망재단 홈페이지에 매달 올라오는 월별보고서에는 1원 단위까지 기부금(수익금)과 사용처를 적어 놓는다. 2월 보고서만 30쪽에 달한다. 외부감사 의무는 없지만 2018년부터 감사도 받는다. 승일희망재단의 직원은 4명에 불과하다.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어느 NGO(비정부기구)가 활동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느냐.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정의연 주먹구구식 회계…"어느 NGO가 활동내역을 낱낱이 보고하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가 후원금 의혹을 제기한 이후 정의연의 주먹구구식 회계가 드러났다. 전년도 이월 기부금 수익 약 22억원을 누락하고, 한 술집에서 기부금 약 3300만원을 하루에 지출한 것으로 잘못 신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4년간 국고보조금으로 13억4000만원을 받고도 국세청 공시에는 5억3800만원만 적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확한 보조금 수입과 반환금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다. 정의연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은 횡령이나 자금 유용이 아닌 관행이나 단순 실수로 인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국세청은 정의연에게 재공시를 요구했다. 정의연이 여러 회계오류를 일으키고도 지금껏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로는 외부 회계감사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정의연의 지난해 말 자산은 22억9400만원으로 외부 회계감사 대상(자산 100억원 이상)이 아니다.

정의연은 회계 문제가 불거진 후 외부 회계감사를 받으라는 요구에 "왜 시민단체가 의혹에 몰려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또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는 영수증을 공개하라는 기자의 질문에 "세상에 어느 NGO가 활동내역을 낱낱이 보고서처럼 만들어 공개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연이 틀렸다…1원까지 공개하는 NPO도 있어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최근 불거진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논란과 관련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최근 불거진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논란과 관련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하지만 정의연이 틀렸다. 활동내역을 낱낱이 보고서처럼 만들어 공개하는 NPO(비영리단체, NGO의 상위 개념)는 많다.


자산 67억원의 승일희망재단도 외부회계감사 대상이 아니지만 2018년부터 외부 감사를 받고 있다. 경영공시에는 매일 기부액(수익)과 지출을 세세하게 표시한다. NPO의 재무투명성을 평가하는 한국가이드스타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크라운인증을 받았다.

고재춘 승일희망재단 실장은 "의무대상 여부와 무관하게 재정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회계 관리의 정확성을 검증받으려는 재단의 의지"라며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재단 특성상 부담이 많이 되지만 사업별 보고는 가장 자세하게 공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자살예방, 저출산해소 등 사업을 하는 단체로, 기부금(연 13억원)과 직원 수(10명)에서 정의연과 규모가 비슷하다. 이 단체는 외부회계감사와 결산 공시를 의무 기간인 1년 중 1번이 아닌 분기별로 진행하는 등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3년 연속 크라운인증을 받았다.

재단 관계자는 "팀장 전결 대상인 소모품 몇천원짜리라도 이사님 결재를 받고 재단 자동차를 쓸 때는 기름의 연비까지 고려해 투명하게 운영한다"며 "기부금을 전달한 후에도 해당 단체의 사용내역을 1원 단위까지 확인해 남는 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수혜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민의 자발적 기부가 활동의 토대가 되는 NPO는 활동의 투명성이 필수다. 전문가들은 작은 단체라도 외부회계 감사를 철저히 받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정의연도 '회계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15일 "공익법인을 전문으로 하는 회계기관을 통해 검증을 받겠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부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기부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자발적으로 나서서 감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를 받은 단체는 정부에서 인증마크를 부여해 지원을 늘리고 시민들도 이런 단체를 찾아 기부하면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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