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기록·카드결제 추적…'과도한 인권침해' vs '방역 필요악'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2020.05.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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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방역당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신용카드 사용내역 조회, 기지국 접속기록 등 개인정보 추적에 나선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방역당국과 공공 보건을 중시하는 쪽에선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시급한 공익이 우선되는 만큼 일부 개인들의 인권 제약은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반면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쪽에선 국가의 의한 개인정보 침해 전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방역당국이 1만2000여명에 달하는 황금연휴 기간 이태원 클럽 방문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신용카드 결제 정보와 이동통신 기지국 정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800명 이상의 이태원 클럽 방문자 카드결제 내역을 확보해 숨은 접촉자를 찾아냈다. 특히 통신사가 확진자의 주요 동선에 포함된 클럽·주점 주변의 17개 기지국에 접속한 휴대전화 통신기록을 모두 제출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커졌다. 클럽·주점 등을 방문한 사람들 뿐 아니라 이태원 특정 지역에 30분 이상 체류한 이들의 명단이 모두 제출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빅브라더'가 코로나19로 인해 모습을 드러냈다는 말까지 나온다.



카드정보·기지국 정보로 이태원 숨은 방문자까지 '싹'…일각 "'빅브라더'가 모습 드러냈다"

논란이 커지자 행정당국은 정보수집의 당위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출연해 "확진자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과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코로나19 환자 신원과 소재를 공개하는 게 지나친 사생활 침해가 아니냐는 질문에 "개인정보 보호 문제는 맥락에서 벗어났다"며 "우리는 사생활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법적 테두리를 정해 놓았다"고 답했다. 이어 "사생활은 중요한 인권이지만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통신업계에 기지국 접속기록을 요청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해당 기간 이태원 인근에 있었던 사람들은 총 1만905명"이라며 "지역 확산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빠른 전수검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시내의 한 빌딩 옥상에 통신사 5G 기지국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서울 시내의 한 빌딩 옥상에 통신사 5G 기지국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정부가 지나치게 권한 남용" VS "감염병 방지, 프라이버시 침해 우선될 수 없다"
이번 조치를 두고 개인정보보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유럽 등의 정보보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감염병 확산 방지 목적으로 인한 민감한 개인정보 수집과 관련해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며 "감염병 방지를 위한 목적의 접근을 단순히 개인정보 침해라는 측면으로만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는 "이번 이태원 사건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시간대나 장소를 특정해서 정보를 수집했는데 이번 사태와 관련해선 지나치게 정보 접근 범위를 넓혔고 권한을 남용한 측면이 있다"며 "최근 이태원 인근 상권이 위축되는 등 또다른 2차 피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춘식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공익의 목적을 달성하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지키기 위해 방역당국과 정부에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성적 취향, 범죄 유무, 직장, 사는 곳 등의 정보는 모두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한 영역인데 방역이라는 목적만으로 범죄자도 아닌 사람들의 이러한 정보가 대중에 공개되는게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이 범죄자 신상공개에 있어서도 수사자문단의 자문을 받듯이 정부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전문가 집단의 스크리닝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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