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소송' 삼성자산운용…KODEX WTI ETF 주요 쟁점은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0.05.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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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시가총액 1조2000억원이 넘는 국내 최대 원유선물 ETF(상장지수펀드) 'KODEX WTI원유선물(H)'의 운용방식을 두고 삼성자산운용에 대한 투자자들의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삼성운용의 사전고지 없는 롤오버(월물변경)로 인해 예상치 못한 손해를 봤다며 배상을 요구한다. 반면 삼성운용 측은 투자자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투자설명서·약관 등 절차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였다고 반박한다. 앞으로도 최소 수백 명의 투자자들이 관련 소송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운용 측도 법무대리인을 선임해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 말았어야 할 롤오버?
/자료=삼성자산운용/자료=삼성자산운용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관련 ETF 투자자 220명이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삼성운용을 상대로 총 3000여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전날(13일)에도 투자자 2명이 관련 소송을 제기하며 법정 다툼의 포문을 열었다.



사건의 출발은 마이너스 유가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지난달 21일이다. 당시 5월물 WTI(서부텍사스유) 가격은 -37.7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다음날인 22일 차근월물인 6월물 가격도 장중 6.5달러까지 하락했다. 앞서 삼성운용은 구성종목을 5월물에서 6월물로 변경했기 때문에 주된 관심은 6월물 가격의 향방이었다.

삼성운용은 23일 오전 KODEX 원유선물ETF의 구성 종목을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유가폭락으로 원유선물 계약에 필요한 증거금 이하로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상당수 선물계약을 청산해야 하는 위기가 예상되면서다. 이에 이날 새벽 73% 비중으로 편입하던 WTI 원유선물 6월물을 34%로 대폭 축소하는 대신 △7월물 19% △8월물 19% △9월물 9%로 월물을 분산시켰다.

삼성운용 측은 "만약 본 펀드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6월물의 종가가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투자자는 투자금액을 전액 잃게 되며 본 펀드의 거래중단 및 상장폐지로 인해 그 손실은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며 "당사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적절한 안정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롤오버 안 했으면 더 벌었는데…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21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WTI 선물 차트를 바라보고 있다. 2020.4.21/뉴스1
투자자들은 삼성운용의 이 같은 롤오버로 인해 6월물 유가의 폭등분을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4월 21일 21.1불이었던 6월물 가격은 다음날(22일) -48.6% 하락한 10.89불이 됐고 새벽 롤오버가 진행된 23일에는 다시 +41.4% 반등해 15.4불이 됐다.

반면 KODEX 펀드의 수익률은 22일 상하한폭 제한규제(±30%)로 인해 -30%, 23일에는 +4.3% 상승에 그쳤다. 단순히 수치로만 비교해보면 23일 ETF 상승률이 원유선물 대비 37.1%포인트나 낮아 투자자들이 제대로 된 수익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도 삼성운용의 롤오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이 같은 가격차를 주된 이유로 제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2일 하한가가 없었다면 추가로 빠졌어야 할 18.6%를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유선물을 추종하는 ETF 상품들은 선물 변동성을 반영한 기준가를 추종하게 돼 있는데, 이 기준가가 30% 이상 크게 하락하더라도 30% 하한가에 막혀 ETF 시장가격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삼성운용에 따르면 22일 ETF 종가는 3960원이지만 기준가는 2900원대로 약 1000원의 괴리가 발생했다. 이날 하한가에 막혀 반영되지 못한 하락분은 다음날인 23일에 반영돼 다음날 6월물 가격이 41.4% 올랐지만 ETF 가격이 170원(4.3%) 밖에 오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눈 떠보니 롤오버
(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원유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2020.4.22/뉴스1(울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원유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2020.4.22/뉴스1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논란거리는 사전공시 없이 롤오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후 기초지수 산출기관 S&P(스탠다드앤푸어스)가 롤오버를 통지할 때는 충분한 사전공시가 이뤄지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삼성운용 측은 사전공시를 하지 않은 것이 투자자들의 이익에 보다 부합하는 결정이었다는 입장이다. 당시 뉴욕선물거래소 6월물 시장에서 KODEX WTI ETF 펀드의 점유비중이 약 9.5%에 달했기 때문에 6월물 매도계획을 밝힐 경우 제3 투자자들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즉 삼성운용의 6월물 비중 축소 계획을 사전에 알게 될 경우 제3 투자자들의 선행매매로 가격이 추가하락하고, 사전고지가 없는 경우보다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운용 관계자는 "선물시장은 23시간 동안 열리기 때문에 6월물 비중이 높은 매매계획을 공지하는 순간 가격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라며 "(사전공시)가 무슨 실익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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