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듣기 싫었던 '팩트폭행', 파월이 했다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5.14 07:14
글자크기

[월가시각]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모두가 두려움과 충격에 빠졌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오늘 한 말 중에 새로운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단지 우리가 갖고 있던 공포를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켄트 엔겔크 캐피톨증권운용 수석전략가)



코로나19(COVID-19)의 경제적 충격이 짧게 끝나지 않을 것임은 시장도 알고 있다. 다만 확인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 '팩트 폭행'의 악역을 파월 의장이 떠맡았다.

세계경제 대통령의 비관과 함께 V자 반등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깨졌다.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미국 경제의 V자형 회복 가능성은 환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다른 헤지펀드 거물인 데이비드 테퍼 어펄루사운용 회장은 "현재 주식시장은 1999년 닷컴 버블에 이어 내가 본 것 가운데 두번째로 고평가된 상태"라고 경고했다.

'코로나 쇼크' 오래 간다는 파월 "마이너스 금리는 안해"
13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급락세를 이어갔다. 블루칩(우량주) 클럽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516.81포인트(2.17%) 급락한 2만3247.97로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위주의 S&P(스탠다드앤푸어스) 500 지수 역시 50.12포인트(1.75%) 떨어진 2820.00로 마감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도 139.38포인트(1.55%) 내린 8863.17을 기록했다.


기업들의 연쇄 부도 우려와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에 은행주들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은 4% 넘게 떨어졌고, 웰스파고는 6% 이상 추락했다.

어닝스카우트의 닉 라이츠 CEO(최고경영자)는 "모든 건 앞으로 몇달간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대응과 경제활동 재개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며 "전 세계의 어떤 부양책도 오랜 기간 사업장의 문을 닫은 것을 벌충하진 못한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이날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가 주최한 화상 연설에서 "코로나19가 초래한 고통의 정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지금이 '마지막 장'(final chapter)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깊고 긴 충격은 경제에 지속적으로 충격을 가할 수 있다"며 "경기회복이 탄력을 받으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파월 의장은 특히 기업과 가계가 파산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수년 동안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재정지출은 비용 부담이 있지만 장기적으론 가치가 있다"며 경제위기 심화를 막기 위한 정부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파월 의장은 현재 제로 수준인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리는 방안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그것은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마이너스 금리 외에도 좋은 정책수단들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이너스 금리는 유럽과 일본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으나 경기부양 등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에서 "다른 나라들이 마이너스 금리로 수혜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역시 이런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연준에 마이너스 금리를 압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中 무역합의 100개도 코로나 피해 못 메워"
중국을 상대로 코로나19 사태 악화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이어간 것도 증시엔 부담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막 대단한 무역합의를 했다"며 "합의문의 잉크가 거의 마르지도 않았는데 중국에서 온 감염병(코로나19)이 세계를 강타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1월15일 1단계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상대하는 건 매우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며 "100개의 무역합의를 해도 (중국이 초래한) 차이를 메울 수 없다. 희생된 모든 무고한 생명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국에 경제적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인 대중국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지난 11일 미국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거짓말을 했고, 사람들이 죽었다"며 "중국에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책정해야 한 비용은 10조달러(약 1경2000조원)에 가깝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중국으로부터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중국이 앞으로 2년간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상품을 추가 구매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1단계 무역협정을 이행해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를 파기하고 협상을 재개할 것이냐'는 질문에 "조금도 관심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합의문에 서명했다"며 "중국이 그 합의를 이행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 내부에선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미중간 1단계 무역합의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양국 무역협상 대표인 중국의 류허 부총리와 미국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8일 전화 통화를 하고 1단계 무역합의 이행을 위한 협력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길리어드 사이언스의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中 해커들, 코로나 백신·치료제 정보 훔치려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업체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적용기간을 내년 5월까지로 1년 연장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15일 발효된 이 행정명령은 대상이 되는 업체명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었다.

실제로 미 상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튿날인 지난해 5월16일 화웨이와 60여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대상 기업 리스트에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 등의 자국 업체들의 통신장비를 통해 미국의 군사기밀 등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주장한다.

한편 미 수사당국은 이날 중국이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 관련 정보를 탈취하기 위해 해킹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미국 FBI(연방수사국)와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보안·기간시설 안보국(CISA)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과 연계된 이들이 사이버상에서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미국 단체들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치료제, 검사 관련 지적재산과 공중보건 데이터의 불법적 획득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중국의 시도는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에 상당한 위협을 가한다"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일하고 있는 의료보건, 제약, 연구 부문은 모두 그들이 이런 활동의 주요 표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시스템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존 데머스 미 법무부 국가안보 담당 차관보는 미국 지상파 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오랫동안 생의학 연구 정보의 탈취를 노려 왔다"며 "코로나19 연구는 현재 이 분야의 성배와 같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