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저성장 원인은 수요 부족…국토보유세로 기본소득 재원 만들자"

머니투데이 대담=김경환 정책사회부장, 정리=김춘성 기자 , 세종=박경담 기자 2020.05.1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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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

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수요부족이 경기침체의 원인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극단적인 갈등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총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본소득' 만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불평등도 완화하고, 빈부 격차도 완화하고, 수요도 촉진하고, 지속적인 성장도 담보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유지·성장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미스터 기본소득'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8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났다. 이 지사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기본소득 논의를 10년이나 앞당기는 '혁명적 변화'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위기 극복을 위해 전 도민에게 10만원을 지급한데 이어 정부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전 가구에 40만~100만원을 지급하면서 국민들이 기본소득 개념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정부에 경기도가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제안했다. 부동산 불로소득, 개발이익 등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크고 경제 악영향이 커 국토보유세를 통해 해소할 수 있으며 토지 공개념에도 부합한다는 지론이다.

우리나라의 토지에 대한 세금은 OECD 평균의 '4분의 1'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2배 올려도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며, 이를 통해 16조~18조원의 세수를 확충해 국민들에게 연간 1인당 40만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는 "공급부족 시대에서 수요부족시대로의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기본소득은 이에 합당한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대해 경제 축소를 막을 유일한 길"이라며 "초원이 마르면 결국 티라노사우루스도 죽는다. 초원에 물을 열심히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일문일답.

-이 지사께서 주창해오던 기본소득이 일회성이긴 하지만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으로 현실화됐다.
▶기본소득은 아니고 비슷하게 접근했다. 경제에 관한한 저는 '시장주의자'다. 공정한 경쟁 기반 위에 시장이 형성되면 자원의 합리적 배분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포퓰리스트' 보다 '실용주의자'에 가깝다.

자본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질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 경제체제는 지금껏 공급역량 확대, 공급 측면의 확대에 집중했다. 투자할 돈만 모으면 투자할 곳이 얼마든지 있고 자연스럽게 분배되고 소비와 수요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관계에 있던 '성장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최근 세계경제의 침체 원인은 수요 부족이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 시장경제시스템의 작동, 자본주의체제의 존속을 위해서는 수요 역량을 확대 강화해야 한다. 공급 역량이 상당히 남아돌아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지만, 수요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총수요 부족 시대에 근접하면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침체에 가까워지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

-4차산업혁명이 수요부족시대를 더욱 앞당길텐데?
▶4차산업혁명 시대는 생산역량과 공급역량이 극대화된다. 한계비용이 제로에 수렴하는, 규모의 경제가 거의 무한대인 4차산업혁명시대, 디지털경제시대가 열렸다. 4차산업혁명은 고용의 대폭 감소, 초과이윤, 독점, 경제총량 감소 등으로 귀결돼 수요 부족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노동 배분 강화나 정부의 복지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총수요 부족의 시대에선 선별적 복지나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 결론에 도달한 것이 초보적으로 논의되던 '기본소득' 제도였다. 우리가 갖고 있는 충분한 공급역량과 거기서 생겨나는 소수의 이익 독점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잘살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방법으로 기본소득제도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
-기본소득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나?
▶한꺼번에 기본소득을 적용할 수는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는 실용주의자다. 일단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 성과를 내야한다. 기본소득 제도가 모두에게 좋은 제도라는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우선 부분적으로 특정영역, 특정 령대에 기본소득을 적용해봤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과 산후조리비 지원이다. 산후조리비 지원은 사실 0세에 대한 기본소득이다. 이어 더해 중앙정부의 아동수당도, 박근혜정부가 시작한 노인기초연금도 특정 연령층에 대한 기본소득이다.

이미 기본소득의 징검다리가 상당부분 놓여져 있다. 영유아 보육대상자에 대한 지원과 노인계층에 대한 기초연금 확대 등 징검다리를 계속 놓으면 결국 어느 시점에 기본소득제도가 기본적 틀을 갖춘다.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기본소득이라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기본소득이란 이름을 붙였다면 저항이 심했을 것이다.

보통 기본소득은 현금을 정기적으로, 자산과 수익에 관계없이, 충분히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만큼 지급하는 것으로 보는데 소액·장주기로 10만 원을 1년에 한번씩 주다가, 2번, 4번으로 횟수를 늘리고, 금액도 조금씩 올리는 등 순차적으로 접근하면 실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 것은 '혁명적 변화'다. 국민들도 당당히 내가 낸 세금을 받아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 10만원을 전도민에게 지급한다고 했을때 논란이 있었다
▶극복해야 될 논쟁 중 하나다. 이미 기초생활수급자엔 매월 52만 원정도씩 지급한다. 극단적으로 본다면 특정소수를 골라 기초생활 수급자란 이름을 붙이고 50여만 원을 지급하는 경우인데 '낙인효과'와 더불어 노동의욕을 제로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노동을 해 돈을 벌게 되면 수급자에서 배제되니 아예 일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현 상태에서 쉽게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할 방법이 있다. 선별 지급하지 말고 선별 환수하는 방법이다. 모두에게 50만 원씩 지급하고, 지급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겐 조세로 환수하는 방법이다.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비용도 적게 든다. 낙인효과도 없고, 노동을 거부할 이유도 없다. 생산성은 낮지만, 삶의 만족도가 높은 직업도 개발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예술 활동이다.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한달에 100만 원만 벌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50만 원을 합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기본소득이 실업 압력도 낮추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 환수 대상자를 조금씩 줄여가면 기본소득이 된다. 발상의 전환을 하면 지금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와 결합시키면 수요를 진작시켜 경제 회복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했더니 신용카드 매출 회복률이 다른 광역시 시도들보다 10%포인트 높았다. 효과적이고 유용한 경제정책 수단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복지의 지급 방식을 바꾸면 경제정책이 된다.

기본소득을 '복지정책'으로 보지 말고 경제정책으로 봐야한다는 것에 대해 선도적 시각을 가진 경제인들이 있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드, 엘론 머스크 등 성공한 기업인들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수익 독점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기본소득 주장은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에 방점을 둔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공급 부족의 시대에서 수요 부족의 시대로 대전환을 맞고 있는 와중에 발생한 코로나19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급작스럽게 앞당기고 있다. 전통적 정책들의 확장판으로는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수요를 유지하거나 총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어떤 정책을 계획하나?
▶전 구성원의 최소한의 생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소득제도가 필요하다. 경기도에서 10만 원, 시군에서 10만 원 등 2조5600억 원을 우리나라 인구 4분의 1에 지급했더니 경제 선순환 효과가 나타났다.

1인당 연 20만 원 정도로 이런 효과가 나오는데, 1년에 2번 시행해 3~4개월 정도에 집중 사용하게 하면 엄청난 수요 유발과 소비 촉진 효과가 나타나고, 매출과 생산 증가로 이어져 경기활성화 효과가 클 것이다. 국민들도 재정지출이나 복지형태로 정부 재정을 지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유발효과나 사회통합효과가 크다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처음 전국민에 연간 50만 원을 지급하려면 25조 원이 소요된다. 이 정도면 현 재정규모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증세가 필요하다. 증세가 어려운 점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체감이 되는 정부 지출이 있으면 세금을 안낼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0% 수준으로 OECD 평균(25%) 보다 낮다. 처음엔 증세없이 소액·장주기로 기본소득을 도입해 운영하다가 서서히 증세를 통해 선진국 수준으로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려 기본소득 금액을 늘려가면 된다. 총수요 부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일자리 부족과 지나친 부의 편중에 따른 본질적 위기도 완화할 수 있다. 공감하고 이해하면 적정한 선에서 초보적 기본소득은 지금도 가능하다.

-중앙정부에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인가?
▶대한민국 전역으로 시행하려면 위험 부담이 크다. 그래서 중앙 정부에 경기도에서 먼저 시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제안한 것이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다. 우리나라의 토지에 대한 세금은 OECD 평균의 '4분의 1' 정도 밖에 안된다. 2배 올려도 절반을 조금 넘는다. 2배로 올리면 16조~18조원의 세수가 확충되는데 국민들에게 40만 원 정도는 줄 수 있다.

부동산 불로소득, 개발이익 등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크고,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토지공개념에도 부합된다. 국토보유세를 부과하되 전액을 도민에 돌려주는 조건으로 '목적세'를 만들면 저항이 약할 것이다. 정부와 당에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망설이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이재명 경기도지사 인터뷰 / 사진=수원(경기)=이기범 기자 leekb@
-가장 큰 관문이 기획재정부일듯 한데.
▶정부에서 기본소득 재원을 만들어서 전국민 상대로 지급하는 것은 기재부로서는 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방정부 단위에서 하는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지 않나. 지방자치국가에서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책임은 우리가 진다. 설득할 자신이 있다.

처음부터 국토보유세를 많이 걷기보다 1인당 연 10만원 정도 줄 수 있는 수준부터 시작하면 된다. 사회적 타협을 거치고. 순차적으로 늘려나가면 된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로봇세, 탄소세, 데이터세 등 새로운 세목도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임기 중 기본소득 실험을 한번 더 해볼 계획이 있는지?
▶재정의 문제가 있지만 소규모로 효과가 큰 실험을 한번 더해보자는 구상은 있다.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경기도 소비 축제 기간'을 만들어 도민들에게 1인당 2만-3만 원정도 지급해 소비 기간 1주일 동안 모두 쓰게 하는 것이다. 소상공인 보호도 하고, 세금 낸 맛도 느껴보도록 하고 싶다. 소상공인 지원보다 재정지출의 승수효과에 더해 소비유발 효과까지 곱하기 몇 배의 효과가 나올 것이다.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거라는 판단도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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