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똘이의 '똥꼬 스키'…이유를 알게 됐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0.05.0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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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반려견 신호·언어 공부…산책 왜 무서운지, 텅 빈 방 왜 보는지, 그동안 오해했던 것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겨울엔 스키, 카펫에선 똥꼬 스키. 마냥 귀여운 건줄만 알았다./사진=남형도 기자겨울엔 스키, 카펫에선 똥꼬 스키. 마냥 귀여운 건줄만 알았다./사진=남형도 기자


6살 똘이의 '똥꼬 스키'…이유를 알게 됐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똘이야, 그만 자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똘이 눈빛이 달라졌다. 느낌이 왔다. 그분이 오실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이불을 몇 번 긁고 시동을 걸더니, 내게 깡총깡총 뛰어왔다. 그리고는 내 팔뚝을 보송보송한 두 발로 잡았다. 그리고 허리를 앞뒤로 유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운팅(동물이 무언가 붙들고 교미하는 듯한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반려인들 사이에선 이른바 '붕가붕가'로 불리는 그것이다. 그러면서 날 핥아주는 게 아닌가. 난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귀여운 똘이는, 왜 밤에 자려고 할 때마다 이러는 걸까. 너, 설마, 나를? (정답은 기사 마지막에).



어흥, 무섭지. 똘이의 무시무시하게 귀여운 송곳니./사진=남형도 기자어흥, 무섭지. 똘이의 무시무시하게 귀여운 송곳니./사진=남형도 기자
반려견 똘이(6살, 몰티즈, 수컷, 처가서 키움, 날 최고로 따름, 귀여움 주의)를 본격 공부해보기로 했다. 비단 '붕가붕가'를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녔다.



똘이에 대해 여전히 궁금한 게 많았다. 왜 내가 나간 뒤엔 엎드려 현관만 바라보는지, 가끔 똥꼬를 바닥에 끄는지, 아침부터 밤까지 딸랑이(딸랑거리는 오색 빛깔 공)를 던져달라 하는지, 청소기를 보고 짖으면서도 왜 쫓아다니는지, 아무도 없는 곳을 빤히 보며 냄새를 맡는지(가끔 무섭).

의아할 때마다 '이런 거겠지'하고 짐작하거나, 대충 검색한 뒤 넘겼다. 그건 내 추측일 뿐인데, 틀리진 않았을까. 문득 똘이가 답답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말을 못 하지만 신호를 보내는데, 보호자가 그걸 계속 못 알아듣는다면 어떨까.

똘이를 배우게 해준, 반려견 동물심리전문가 한준우 딩고코리아 대표(왼쪽)과 마이펫상담소 윤샘./사진=남형도 기자똘이를 배우게 해준, 반려견 동물심리전문가 한준우 딩고코리아 대표(왼쪽)과 마이펫상담소 윤샘./사진=남형도 기자

푸르른 5월은 '가족의 달' 아닌가. 게다가 황금연휴(4월30일부터 5월5일까지)라서, 5일 동안 똘이와 함께 집콕을 하며(코로나19 모범 시민) 진지하게 배워보기로 했다. 한준우 동물행동심리전문가(딩고코리아 대표)와 윤샘(수의사, 마이펫상담소)에게 도움을 받았다. 똘이 모습을 보여준 뒤 자문을 해달라고 했다.

Case 1. 똘이는 '산책'이 무서워
산책을 무서워해서, 미끄럼방지 패드를 깔아주고 집에서 논다. 층간소음 고충을 잘 알기에, 매우 조심해서 살살 다닌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산책을 무서워해서, 미끄럼방지 패드를 깔아주고 집에서 논다. 층간소음 고충을 잘 알기에, 매우 조심해서 살살 다닌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똘이와 산책을 갔다. "어야 가자" 한마디에 흥분해서 난리가 났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이었다. 목줄을 물고 싫다는 듯 마구 흔들었다. 바깥에 나갈 때까지만 안아주기로 했다. 녀석은 품에서 벌벌 떨었다. 나갔더니 주위는 하나도 안 살피고, 냄새도 안 맡고, 오로지 직진만 했다. 내가 졸졸졸 끌려갔다. 겨우 한 바퀴 돌고 집 근처에 오니, 이제 들어가자고 줄을 막 잡아당겼다.

산책을 이리 무서워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어렸을 때 바깥에 나갔다가, 목줄 안 한 강아지가 갑자기 똘이에게 달려왔다. 다행히 두 녀석이 맞닥뜨리기 전 가까스로 안았다. 하지만 똘이는 이미 놀란 상태였다.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 뒤로는 바깥 산책을 시키기 몹시 힘들어졌다. 잔뜩 긴장했고, 스트레스가 심한 게 육안으로도 보였다. 억지로 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냥 똘이가 그런 거니 존중하자고. 실내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잔뜩 깔아놓고, 딸랑이를 던져주며 대신 놀아줬다. 그러면서도 '산책시켜야 하는데' 하며 마음 한편이 무거웠었다.

윤샘: 산책을 할 때 안고 나가는 것도 굉장히 좋다. 자기 몸을 움직여서 하는 게 제일 좋지만, 그게 무섭다면 말이다. 차에 태우고 창문을 좀 열어줘도 좋고, 유모차에 태워도 좋은 산책이다. 두려움을 강요하며 걷게 할 필요는 없다.

산책의 목적은 걷기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호자와 교감하고, 새로운 냄새를 맡고, 새로운 걸 보며 정신적으로 생기를 되찾는 과정이다. 특히 산책할 때 눈으로 보는 것보다, 코로 맡는 새로운 냄새가 중요하다. 그러면서 뇌를 계속 자극할 수 있다.

두려운 상태에서 산책하면 안 된다. 억지로 다른 반려견을 만나게 하고, 학교에 데려가고 하는 건 공포심만 더해주는 거다.

새로운 상황을 편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크다. 보통 70~80% 정도 잡는다. 나머지가 사회화 시기에 충분히 사회화를 못한 탓이다. 세르토닌이 부족한 거다.

원래 그런 애라고 받아들이고, 똘이가 무서워하지 않게 키우면 된다. 두려움이 극복되는 게 아니다. 피하면 된다. 난 수의사인데, 이구아나 못 만진다. 그래서 진료를 안 본다.

한준우: 산책할 때 똘이 모습을 보니, 긴장이 올라와 있다. 혀가 나와 있고, 두리번거리고, 입을 약간 벌리고 있지 않나. 그런데 불안하면서 호기심도 있는 것 같다. 이때 똘이가 보호자를 자꾸 돌아보는 건, 있는지 확인한 뒤 안심하고 싶어서다.

왜 무서울까. 여러 소리에 대한 실체를 몰라서다. 모르니까 무서움 쪽으로 가는 거다. 그래서 보통 50일에서 4개월 사이인 '사회화' 시기에, 새로운 걸 많이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더 오랜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그렇지만 천천히라도 보여주고 들려주고 하는 게 좋다.

산책할 때 편안하게 해주려면 말을 걸어주면 좋다. "똘이야, 나 여기 있어"하는 식이다. 보호자 목소리를 들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는다.

Case 2. 딸랑이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일어난 것 다 알아, 형아. 딸랑이 빨리 던져./사진=자는척하는 남형도 기자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아내일어난 것 다 알아, 형아. 딸랑이 빨리 던져./사진=자는척하는 남형도 기자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아내
아침이 됐다. 내 자그마한 움직임에 똘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날 빤히 봤다. 난 잠에서 안 깬 척했다. 눈을 슬며시 감고 있었다. 그러나 쉬가 마려워 별수 없이 일어났다. 똘이는 꼬릴 흔들고 무척 신나 하며 딸랑이(애착이 강한 오색 빛깔 공, 방울 소리가 난다)를 물고 왔다.

얼른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소용없었다. 똘이는 딸랑이를 내 얼굴에 내팽개쳤다. 침방울이 흩날렸다. "형아, 너 일어난 거 이미 다 봤어. 빨리 던져, 딸랑이 노예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고개를 파묻은 채 딸랑이를 던졌다. 똘이가 5초 만에 딸랑이를 물고 와 떨어뜨렸다. 다시 던졌다. 또 물고 왔다. 잠시 모른 척했더니, 앞발로 '멍멍 펀치'를 세게 날렸다. 울컥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그게 계속됐다. 주말에 '부부의 세계'를 볼 때도 계속됐다. 이태오(불륜 저지르는 남편)를 욕하면서도, 딸랑이를 던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마치 '딸랑이의 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딸랑이를 던지는 기계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작동하는 건 인간 몫인 거라.

사실 걱정이 됐던 건, 똘이가 숨차서 헉헉거리면서도 딸랑이를 계속 던져달라고 해서, 심지어 쇳소리도 나서 우려될 때가 많았다. 계속 던져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잘 안 됐다.

부부의 세계 이태오와 딸랑이를 던지라고 재촉하는 똘이. 이것은 '똘이의 세계'이며 '딸랑이의 세계'였다./사진=집중 못하는 남기자부부의 세계 이태오와 딸랑이를 던지라고 재촉하는 똘이. 이것은 '똘이의 세계'이며 '딸랑이의 세계'였다./사진=집중 못하는 남기자
한준우 : 놀자고 하는 사인이다. 어쨌든 놀아주는 건 좋은 거다. 즐거운 건 맞는데, 너무 힘든 것 같으면 균형 있게 조절해줘야 한다. 반려견은 힘들어도 계속 놀고 싶어하니까. (똘이 사진을 보며) 혀가 많이 나오지 않았나, 많이 피곤한 상태다. 저 정도면 놀이를 끝내야 한다.

놀이의 시작, 그리고 끝을 알려줘야 한다. 규칙이다. 일단 딸랑이를 물고 오면 "놀래? 놀고 싶어?"하고 물어봐 준다. 그렇다는 사인을 보내면 "그래"하고 놀아준다. 그게 1단계다.

정말 피곤해서 하기 힘들 땐, "네가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지금 말고 이따가 놀자"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따가 정말 놀아줘야 한다. 반려견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사정상 안 된다는 걸 알려주는 거다.

놀이를 끝낼 땐 "그만"하고 마친다. 그래도 재촉하면, 똘이가 규칙을 어기는 거니까 단호하게 거절한다. "난 정말 하기 싫어"란 사인으로, 다른 방에 들어간다. 그렇게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윤샘: 발바닥에 피가 나는 정도가 아니면, (딸랑이 놀이는) 괜찮다. 보호자와 교감하고, 이렇게 노는 걸 좋아하는 거다. 하루종일 뛰어노는 애들도 있다(그게 똘이임). 자기 몸이 망가질 때까지 하는 게 아니면, 그 전까진 운동으로 봐야 한다.

똘이는 산책을 싫어하니까, 실내에서 이렇게 푸는 거다. 자기 세상이고, 여기가 안전하다고 느끼니까. 그 안에서 즐겁게 노는 거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자제시켜야 하지만, 이 정도는 상관없다고 본다.

Case 3. 망부석 똘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올 때까지 기다립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주말에 하루 출근했다. 회사서 일하는데, 아내가 똘이 사진을 보내줬다. 녀석은 현관 앞에서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발 사이에 고개를 묻고, 풀이 죽은 채 엎드려 있었다. 바깥에서 소리가 나면, 고개를 번쩍 든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엎드린다고. 그 사진 한 장에 속상해서, 집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로또 1등이 된 게 아니라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월급의 노예).

함께 사는 장모님, 장인어른에겐 오히려 그러지 않는데, 내게만 이런 모습이었다. 그러니 퇴근할 땐 광화문에서부터 한껏 뜀박질을 했다. 빨리 보고 싶어서. 역시나 현관문을 열자마자 난리가 났다. 펄쩍펄쩍 뛰고, 다리에 붙고, 꼬리를 한껏 흔들고, 양쪽 귀를 90도 이상 젖혔다.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혹시 이게 TV에서 가끔 보던 '분리불안'일까 싶어 걱정도 됐다. 날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단 똘이 맘이 편했으면 싶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잘 몰랐다.

응아 다 했으면 빨리 나와 형아, 나 기다려.이럴 땐 몹시 집중하기 어렵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응아 다 했으면 빨리 나와 형아, 나 기다려.이럴 땐 몹시 집중하기 어렵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한준우 : 사람하고 떨어졌을 때 불안해하면 다들 '분리불안'이라 하는데,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소한 불안은 다 있다. 보호자와 애착 관계가 있으니, 사라지면 불안할 수 있다. 그 정도를 분리불안이라 할 수 없다.

통상 세 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다. 배변을 잘 가리던 아이가 실수할 때, 집에 있는 물건을 부술 때, 사람이 사라짐과 동시에 하울링 하는 등이다.

(형에게 유독 심한 건) 애착 관계가 깊어서 그렇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신뢰감과 유대감이 큰 거다. 어떤 사인을 보내면 잘 알아듣고 응해주고, 자주 놀아주고. "이 사람과 대화가 되네?" 그런 거다. (내 옷을 안고 기다리는 건) 보호자 체취가 묻어 있으니,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싶은 거다. 특히 양말이 그렇다.

분리불안이 있다고 할 때 보통 "기다려"라고 한다. 참을성을 기르겠다며. 생각해보라. "기다려"하고 보호자가 사라졌는데, 반려견 입장에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니다. 더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걸 학습하는 셈이다.

"기다려"가 아니라, "엄마 아빠는 나가도 금방 돌아와"를 이해시켜야 한다. 강아지 시점에서의 관점이 중요하다.

기다리다 잠들 땐, 벗어놓은 내 옷을 안고 잔다. 역시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란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기다리다 잠들 땐, 벗어놓은 내 옷을 안고 잔다. 역시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란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윤샘: 똘이는 분리불안이 아니다. 한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지 않나, 아주 차분하게 훌륭하게. 정서적으로 굉장히 안정된 강아지다.

사람이 없을 때 침을 많이 흘리고, 자기 몸에 피를 내고, 가구를 부수고 하지 않으면 분리불안이 아니다. 병적으로 불안할 때 나타나는 증상을 생각해보면 된다. 사람도 심한 강박이 있을 때 피나게 손톱을 씹거나, 벽을 긁거나 하지 않나.

보호자들이 말하는 '분리불안'의 90%는 거짓이다. 자연스러운 거다. 독방에 한 달씩 갇혀보라. 휴지라도 집어던지지 않겠나. 강아지 입장에선 무료하고 심심하니까, 정상적으로 스트레스를 푼 거다. 쓰레기통 뒤집을 수 있고, 여기저기 똥오줌을 쌀 수 있고, 즐겁게 보낸 거다. 그걸 보호자가 들어와 내가 원치 않는 행동이라 하면서 분리불안이라 하는 거다.

스트레스를 낮춰주기 위해 산책 많이 시켜주고, 더 많이 놀아주고, 그 정도가 답이다. 정상적인 아이를 치료할 이유가 없다.

Case 4. 똘이야, 귀신 봤어?(ㅎㄷㄷ)
대..대체, 거길 왜 보고 있는거야. 아무 것도 없는데../사진=간담이 서늘한 남기자대..대체, 거길 왜 보고 있는거야. 아무 것도 없는데../사진=간담이 서늘한 남기자
똘이가 아무도 없는 공간을 응시할 때가 있었다(납량특집 아님). 주로 침실을 바라봤다. 가만히 보고, 또 보고. "똘이야, 왜 그래?"하면 잠시 날 봤다가, 다시 그 방을 바라봤다.

가끔은 창밖을 그렇게 바라보기도 했다. 역시 허공이어서 특별히 주목할만한 건 없었다. "똘이야, 거기 뭐 있어?"하고 열어보면 별것이 없었다.

강아지는 사람이 못 보는 걸 본다는데, 혹시,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쩐지 무서워졌다. 귀신이라도 본 걸까, 아니야 설마.

한준우 : 똘이가 어떤 장소를 바라보고, 보호자를 보나? 그러면 거기 가보고 싶다는 메시지다. 호기심이 있을 수도 있고, 침실에서 좋아하는 보호자 체취가 풍겨나올 수도 있고, 이유는 다양할 거다. 아마 혼자서는 자신감이 없어서 못 가는 걸 수도 있다. 그럴 땐 안고서라도 데려다주면 된다.

윤샘: 똘이는 뭔가 본 거다. 귀신은 아니다. 우리가 못 보는 걸 보고, 못 듣는 소릴 듣는다. 벽 너머 너머 집에서 무슨 소릴 들었거나, 쿵쿵거렸거나, 고양이 소릴 들었거나,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청력이 워낙 좋아서 뭔가 소릴 들었을 것이다. 강아지들은 정확히 파악한다.

Case 5. 카펫서 '똥꼬 스키'
6살 똘이의 '똥꼬 스키'…이유를 알게 됐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청소가 끝난 뒤였다. 똘이가 갑자기 자기 몸을 막 털었다. 그러더니 카펫에서 똥꼬(항문)를 바닥에 놓더니, 앞발로 막 끄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똥꼬 스키'라고 부른단다. 평소엔 귀엽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항문낭을 짜주면 된다고 해서, 욕조에 놓고 짜봤는데 많이 나오진 않았다. 똥꼬 스키를 왜 탄 것일지.

한준우 : 보통 항문낭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 이유가 여러 가지다. 예컨대, 관심받고 싶을 때도 그런다. 그런데 지금 잘 보면, 몸을 터는 행동을 하지 않았나. 그건 불편하다는 사인이다. 보호자가 청소한 뒤였고, 그때 똘이가 청소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면(맞다), 그것 때문에 불편했을 가능성이 있다.

항문낭을 안 짜줘서 일 수도 있지만, 저런 행동을 매번 한다면 똥꼬를 끌면서 스스로 안정감을 얻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불안과 불편은 좀 다르다. 불안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고, 불편은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상태랄까. 강아지들도 그렇게 감정이 많다.

Case 6. 자려고 하면, 다가와 날 핥으면서(12금 주의)
ah... /사진=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남기자 아내.ah... /사진=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남기자 아내.
밤에 자자고 할 때마다, 다가와 '마운팅'을 하는 건 이유가 뭘까. 그러면서 다가와 이마와 귀를 핥기도 하고, 자려고 할 때면 꼭 그제야 배변을 보기도 했다. 불을 끈 뒤엔 배 위에 올라오기도 했고, 딸랑이를 가져와 던져달라고 하기도 했다.

한참을 씨름한 뒤에야 베개에 머리를 묻고, 잠을 자곤 했다. 잠을 자기 싫은 것 같긴 한데, 중성화까지 한 똘이가 왜 마운팅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됐었다.

한준우 : 잠자지 말고, 놀자고 하는 것이다. "보호자야, 더 놀자아" 이러는 것이다. 핥는 건 '미킹'이라는 건데, 원래 새끼강아지가 어미한테 입 주위를 핥는 행동을 해서, 먹을 걸 토해내게 한다. 거기서 발전된 것이다. 요약하면, '당신한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으니까 우리 놀자', 그런 표현이다.

윤샘: 혹시 마운팅을 하면 일어나서 놀아주진 않았나?(음, 그랬던 것 같다)

자기 싫다고, 더 놀자고 했는데, 보호자를 깨우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다. 습관이다. 짖어도 안 일어났고, 비벼도 안 일어났는데, 아 이렇게 하니까 반응이 있구나, 일어나는구나 하고, 그럴 수 있다.

마운팅해도 괜찮다. 흥분하면 하기도 하는데, 그냥 놀이 행동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중성화 된 애들이 마운팅하는 건 성적 욕구랑은 상관이 없다. 강아지끼린 우위에 있을 때 마운팅하지만, 보호자에게 하는 건 귀찮게 하는 것이다. 좋아하고, 또 놀고 싶은 대상에게, 그렇게 하니까 잘 놀아주더라 그런 것이다.

똘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쪼물러줘, 형아./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제대로 쪼물러줘, 형아./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강아지는 내가 잘 안다"며, 큰소리쳤던 날들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하얗고 자그마한 마음은 생각보다 더 복잡했고, 예상보다 더 많은 이야길 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건 그 절반 정도나 됐을까. 아니, 전문가가 파악한 것 또한 전부는 아닐 터인데, 모르는 건 또 얼마나 많을까.

나만 너를 본 게 아니라 너도 날 보고 있었고, 나만 말을 건 게 아니라, 너도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만 쓰다듬는 게 아니라, 너도 내게 가만히 기댔고, 나만 기쁘고 슬프고 속상하고 아픈 게 아니라, 너 또한 그랬다는 걸. 그 모든 게 원점에서 새삼 다시 보였다. 어쩌면 내 시선과 기준에서만, 시시각각 변하는 네 세상을 규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마치고 전문가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었다. 보기에 똘이가 괜찮은 거냐고. 윤샘은 "예쁘고 훌륭한, 정서적으로 안정된 건강한 아이"라 했다. 안심했다. 한준우 동물심리전문가는 "전문가가 아닌 분이 이 정도 하면, 엄청 잘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똘이가 내게 다가왔다. "쪼물러줘?"하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등을 보이고 고개를 돌려 나를 살짝 봤다. 좋단 뜻이다. 천천히, 부드럽게 살살 만져줬다. 살살 긁어주는 걸 좋아한다고 배웠다. 똘이 눈빛이 편안해졌다. 그러더니 잠시 뒤엔 배 위에 올라왔다. 이것도 배웠다. 심장 소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고, 애착 관계가 잘 형성돼 있어서 그렇다고. 알고 있다. 내가 잘했다기보단, 네가 부족한 날 많이 참고 이해해줬기 때문이란 걸.

당신을 좋아하는 강아지가, 화냈던 이유는
청소기를 보고 짖으면서도, 멀리 떨어지진 않는 똘이. 무서우면서도, 보호자가 갖고 있기에 호기심이 있는 거란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청소기를 보고 짖으면서도, 멀리 떨어지진 않는 똘이. 무서우면서도, 보호자가 갖고 있기에 호기심이 있는 거란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반려인들이 강아지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강아지가 보내는 신호를 모르고,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그러니 일상에서 일방적인 대화가 자주 이뤄진다.

예컨대, 강아지가 으르렁거리며 화를 내면, 날 무시한다거나 버릇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은 화를 내기 전 싫다고 표현했던 수많은 사인(혀를 내밀고,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완전히 돌리고, 등을 돌리고, 멀어지는)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뿐이다. 한준우 동물행동심리전문가는 "강아지로선 보호자가 이래도 저래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화내고 무는 걸 최후의 수단으로 삼은 것뿐"이라고 했다.

홀로 두고 나갔다 온 뒤 똥을 잘못 싸놓았다면 어떨까. 그러면 보호자가 "너 왜 그랬어"하고 혼낸다. 그러자 반려견이 구석에 숨어 안 나온다. 보호자는 "미안해하네, 아는 애가 왜 그랬을까" 생각한다. 이에 대해 윤샘은 "얘가 미안해한다고 생각하는데, 무서워서 숨은 것뿐"이라고 했다. '똥하고, 나하고, 보호자하고 셋이 있으면 화내네'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화낼 문제도, 분리불안도 아니다. 대소변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리와" 했는데 안 온다고 치자. 이유가 있다. "이리와"란 단어를 들었을 때, 보호자 손에 잡혀 산책하다 집에 갔다던지, 캔넬 속으로 들어갔다던지, 그런 일이 있었던 거다. 강아지 입장에선 "이리와"가 붙잡히는 표현이라 생각해서 안 오는 것이다. 오해한 것뿐이다. 그런데 보호자는 "얘가 내 말 안 듣네"라고만 생각한다.

"같이 잘 살고 싶어요" 그게 반려견 '속마음'
똘이는 늘 곤히 기대어 잔다, 내 몸 어딘가에. 곁을 내어주는 것 또한 행복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똘이는 늘 곤히 기대어 잔다, 내 몸 어딘가에. 곁을 내어주는 것 또한 행복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그러니 반려견의 언어와 신호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수의사 윤샘은 "스트레스 받는다, 싫어한다, 무서워한다, 이 세 가지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것도 모르는 이들이 많단다. 윤샘은 "동네 동물병원 중 믿을만한 곳을 주치의처럼 정하고, 궁금할 때마다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똘이가 고개를 올리고 곤히 자고 있다. 기대어 자는 걸 좋아하는 건, 정서적 안정을 느끼기 위해서란다. 새끼 강아지가, 어미랑 잘 때 그렇게 잔다고./사진=못 움직여서 팔이 저린 남기자를 바라보는 아내똘이가 고개를 올리고 곤히 자고 있다. 기대어 자는 걸 좋아하는 건, 정서적 안정을 느끼기 위해서란다. 새끼 강아지가, 어미랑 잘 때 그렇게 잔다고./사진=못 움직여서 팔이 저린 남기자를 바라보는 아내
한준우 동물심리전문가는 "어떨 땐 '옳지'하고 간식을 주고, 어떨 땐 안 주지 않느냐. 그럼 강아지 입장에선 화가 난다"며 "간식을 줄 땐 '굿'이라고 하고, 안 줄 땐 '옳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걸 항상 배려해주는 보호자가 돼야 반려견과 좋은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몇몇 보호자는 못 알아듣는 것도 모자라, 강아지가 말을 안 듣는다고 화를 낸다. 무시한다거나 서열이 높단 식의 이야기도 한다. 사실이 아니다. 한준우 동물심리전문가는 "강아지들은 절대 서열이 없다"고 했다. 인간 사회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아지들이 높은 직위에 있다고, 득을 볼 것이 하나도 없단 것이다.

오히려 사람과 함께 잘 살고 싶은 맘이 되게 강하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미움받는 게 싫고, 보호자와 떨어져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게 생애 가장 많은 시간을, 물끄러미 보호자만 보는, 반려견의 속마음이란다. 말을 못 해서, 때론 짖기만 해서, 웬만하면 묵묵히 참아서 잘 몰랐던. 그러나 우연히 평생 인연을 맺었기에, 꼭 알아야만 하는.
품에 안겨, 동네 구경을 하며, 두리번거리며, 냄새를 맡는 똘이./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품에 안겨, 동네 구경을 하며, 두리번거리며, 냄새를 맡는 똘이./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에필로그(epilogue). 똘이를 살포시 안고 동네 산책을 했다. 꼬릴 흔들면서 여기저기 냄새를 킁킁 맡았다. 땅에 내려놨을 땐 불안해했는데, 내 품에선 꽤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이렇게라도 진작 산책을 자주 시켜줄 걸 그랬다.

해질녘이라 괜스레 감상에 빠졌다. 똘이 나이가 벌써 6살, 사람 나이로 치니 마흔 살이다. 나보다 훨씬 늦게 태어난 주제에, 시간은 나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다. 낯설고 무섭다. 잘 놀다가도, 문득 엄습하는 두려움에 심장이 쪼그라든다.

자정까지 놀아도 귀찮을 만큼 멀쩡하던 녀석은, 이제 예전만큼 오래 뛰어놀지 못한다. 딸랑이를 다섯 번만 던져도 숨이 차서 쉬는 시간이 늘었다. 17년 키우고 마음에 곱게 묻었던 아롱이 생각이 났다. 마지막 해엔 잠자는 시간이 꽤 늘었다. 그러다 너무 움직임이 없을 땐, 숨을 멈추고 녀석을 물끄러미 봤었다. 배가 오르내리는 걸 본 뒤에야, 비로소 내 숨도 나갔다.

잘 안다. 그 시간이 별수 없이 돌아올 거란 걸. 언젠가 똘이 때문에 많이 울 거란 걸. 못 해준 것들만 잔뜩 생각날 거란 걸. 그러니 더 섬세하게 배워야겠다. 까맣고 맑은 눈빛도, 다양하게 바뀌는 표정도, 살갑고 부지런한 몸짓도. 부족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더 알아줄 수 있다면, 그만큼은 더 행복한 기억을 남겨줄까 싶어서.

그리 복잡한 생각을 하는데, 똘이가 날 따뜻하고 보드랍게 핥아줬다. 마치 그런 내 맘을 다 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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