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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새 3600억 증발한 원유 ETN…그 돈은 어디로 갔나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김소연 기자 2020.05.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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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원유 연계 ETP(상장지수상품) 상품이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원유 가격 상승에 베팅하려는 수요가 줄지 않아 시장 왜곡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웃돈을 주고 ETP를 사면 누가 이득을 볼까. 또 증발한 원유 ETN(상장지수채권) 투자금 수천억원은 어디로 갔을까.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 신한, QV,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 4종은 괴리율(지표가치와 시장가격 차이)이 80%에서 최대 280%까지 벌어지면서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거래소는 괴리율이 30% 이상 벌어지면 3거래일간 거래를 정지한다.

거래정지 전 4종목의 시가총액은 약 3030억원이었다. 지난달 6일 투자열풍 속 시총이 6600억원을 웃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한달 만에 3600억원의 자금이 증발한 셈이다. 이 돈은 어디로 갔을까.





한달 새 3600억 증발한 원유 ETN…상대방만 이득


자금 출처를 추적하려면 먼저 괴리율을 알아야 한다. 괴리율은 상품 가치와 거래 가격 차이로 이해하면 쉽다. 즉, 괴리율 +80%인 상품은 실제 가치보다 시장가격이 80% 비싸다는 뜻이다.

원유 레버리지 ETN 상품들은 지난 3월부터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이 급락한 것을 계기로 괴리율이 커졌다. 원유 가격이 역사적 최저가로 떨어진 만큼 향후 원유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투자자들이 앞다퉈 가격 상승시 2배로 돈을 버는 상품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공급 대비 수요가 많아지면서 상품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었다. 3~4월에 개인들이 순매수한 원유 레버리지 ETN은 5540억원에 달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웃돈을 주고 상품을 사면, 이득은 당연히 더 비싸게 판 거래상대방이 본다. 개인투자자나 LP(시장조성자) 등이다.

LP는 ETN 등 상품을 일정 규모로 보유하면서 투자자들이 매수주문을 낼 때마다 판매한다. 호가를 촘촘하게 제시해 상품이 원활히 거래되도록 돕는, 말 그대로 시장을 조성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LP는 해당 증권을 발행사로부터 실제 가치(원가)에 매수해 시장가에 매도하는 만큼 괴리율이 벌어질 수록 이득이다.

AP Explains OPEC Oil Prices / 사진제공=뉴시스AP Explains OPEC Oil Prices / 사진제공=뉴시스


LP, 호가 제한있는데 돈 어떻게 벌었지?


LP가 호가를 내는 범위는 실제 가치 대비 ±6%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이렇게 호가를 제시해도 매수하려는 사람이 많아 시장가격이 높아지면, 결국 매수자가 제시한 높은 가격에 거래가 체결된다. LP가 주문을 많이 내도 투기세력이 많으면 가격이 안 내려가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실제 LP가 이런 점을 활용해 이득을 본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2일 국제 유가가 폭락해 KODEX WTI원유선물(H)이 하한가(약 30%)로 떨어진 날, 금융투자창구에서 4315만주를 순매도한 것이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이날 KODEX WTI원유선물(H)은 하한가를 맞았지만, 그래도 실제 가치에 비하면 20% 비쌌다. 가격제한폭이 없는 국제 유가와 달리, 국내는 모든 상장종목에 상·하한가 규정이 있는 탓이다. 이미 하한가를 맞아 더이상 괴리율을 좁힐 수 없는데도 LP들이 대규모 매도 주문을 내 20% 수익을 얻으려 한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P 상품 거래시 금융투자창구는 대부분 LP들이 이용한다"며 "하한가로 떨어져 더 이상 가격이 내려가기 힘든데 왜 대규모 매도 주문을 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승자는 없다" 증권사도 원유선물 매수해 손실


그렇다고 LP가 마냥 이득만 본 것은 아니다. LP는 보유하던 상품을 판매한 후, 위험 회피(헷지)를 위해 CME 선물거래소 등에서 원유선물을 직접 매수한다. 그러나 원유 선물 가격이 급락해 손실을 봤다. 원유가격 하락에 따른 크고 작은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ETP 상품을 국내에서 투자자들에게 팔 때는 높은 괴리율 덕에 원하든, 원치않든 이득을 봤지만, 이를 헷지하려 직접 사들인 원유선물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익과 손실이 상쇄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LP는 증권을 투자자들에게 매도하면서 그만큼 원유 선물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헷지한다"며 "원유 선물 가격이 떨어져 LP들도 손해를 봤기 때문에 특별히 이득을 봤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멕시코만 앵커 유전 모습 / 사진제공=외부사진미국 멕시코만 앵커 유전 모습 / 사진제공=외부사진


멕시코, 원유 급락에 홀로 7兆 벌었다


그렇다면 LP에게 선물을 매도해 이득을 본 상대방은 누굴까. LP에게 원유 선물을 판 거래상대방(글로벌 IB)도 다양한 만큼, 누구를 특정해 돈을 벌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글로벌 IB(투자은행)들에게 원유 선물 풋옵션(매도권리)을 사서 유가 하락에 대한 헷지를 하고 있던 멕시코는 확실히 돈을 벌었다. 멕시코만에서 생산된 원유는 WTI 중 하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멕시코는 미국 IB를 통해 10억달러를 들여 헷지를 설정한다.


유가가 상승하면 상승한 가격으로 원유를 수출하고, 유가가 하락하면 미리 설정한 가격(배럴당 49달러)에 파는(풋옵션) 방식이다. 유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멕시코는 49달러에 원유를 팔 수 있다. 이에 이번 유가 폭락으로 멕시코는 약 60억달러(약 7조3260억원)의 수익을 얻었다.

블룸버그는 "헷지비용에 매년 10억달러가 사용되기 때문에 다른 산유국에서는 헷지를 할 수 없었다"며 "멕시코는 과거에 원유 헷지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헤지펀드나 투기 세력을 피하기 위해 관련 내용은 국가 비밀로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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