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 비겁한 외면 앞에 울리는 적색경보

권구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5.0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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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민 감독의 우회 없는 직진 화법이 주는 쾌감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OTT 서비스 넷플릭스에 도발적인 문제작이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동희 정다빈 박주현 남윤수 주연의 ‘인간수업’(극본 진한새, 연출 김진민)다. 공개 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입소문이 돌면서 한국 드라마 콘텐츠 순위 1위에 오르며 뜨거운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은 돈을 벌기 위해 죄책감 없이 범죄의 길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이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린다. 여러모로 청소년 성매매라는 소재부터, 작가부터 배우까지 새로운 얼굴들을 포진시켰다. 정말 작심한 듯 그간 대한민국 드라마를 가두고 있던 틀을 제대로 박살 내고 있다.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다.

‘인간수업’은 딱 김진민 감독의 색깔이 제대로 담긴 작품이다. 김감독은 ‘개와 늑대의 시간’ ‘무법 변호사’ 등에서 사회의 거친 단면을 힘 있는 액션으로 풀어내 왔다. 심의상 영화보다 제약이 많은 드라마라는 매체에서는 보기 드문 연출자다. 그런 그가 넷플릭스를 만났으니,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펄 난다. “감독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판이 펼쳐졌다.

여기에 입봉 작가의 신선한 필력이 함께했다. 진한새 작가는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태왕사신기’ 등을 집필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드라마 작가 중 하나인 송지나 작가의 아들이다. 신인다운 패기를 담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아닌 직진 방향으로 헤드라이트를 켜고 질주한다. 유전자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신인답지 않은 내공과 필력을 과시한다.

그만큼 ‘인간수업’은 거침이 없다. 지상파에선 꿈도 못 꿀 고교생 흡연 장면은 약과에 불과하다. 요즘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인 성매매의 카르텔을 그렸고, 거기에 미성년자를 끼워 맞췄다. 학원폭력과 살인 등 다양한 범죄들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미 청소년 성매미는 사회에 만연한 범죄들이다. 특별한 시선을 배제하고 냉소적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관조한다. 그저 흥미 유발이나 스쳐가는 장치로 범죄를 이용한 작품이 아니다. 19금 드라마이지만 시각적인 자극도 최대한 자제했다. 소재의 민감도를 운운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남자친구 선물을 사기 위해 몸을 파는 여고생, 쾌락을 좇아 여성을 사는 남성들, 여성들을 경호한다며 남성과 여성을 이어주는 포주, 등교와 동시에 동급생을 괴롭히며 빵 셔틀을 부려먹는 일진 등 지금 당장 휴대전화만 열어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범죄들이다. 귀를 막는다고 종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벌어지는 현실에 눈 감고 있던 사람들에게 ‘인간수업’은 시끄러운 적색경보를 울리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도망갔기에, 그저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돈이 필요했기에 성매매 사업에 발을 담갔다는 오지수(김동희)의 범죄 동기는 개연성은 부족하지만, 캐릭터를 이해하기에는 딱 적당하다.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탓하지만 정작 자신은 남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위기가 다가오면 자신이 해결하지 않고 타인 뒤에 숨는다. 지수가 키우는 소라게는 지수의 현실을 은유하는 매개체다. 몸 위에 커다란 짐을 지고 힘겹다며 살아가지만, 결국 필요할 땐 그 안에 숨어버리는 소라게가 바로 오지수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돈 많은 부모, 뛰어난 두뇌, 남다른 친화력으로 학교 내 '핵인싸'로 등극한 배규리(박주현)는 일반 학생들의 로망이다. 현실의 모든 이가 배규리를 꿈꾼다. SNS에 넘쳐나는 ‘난 행복해요’라는 인증샷이 방증이다. 허나 그 안은 공허했고, 그를 채우기 위해 “포주”라 힐난했던 지수와 같은 길로 들어선다. 죄의식 없이 무신경하게 범죄에 발을 담그는 배규리는 분명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

김동희, 박주현의 연기력은 기대 이상이다. 그저 놀랍다. 김동희는 ‘이태원 클라쓰', 박주현은 ‘반의반에서 연기 논란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인간수업’ 촬영이 끝난 시점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두 배우와 ‘인간수업’의 시너지가 좋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동희는 지수의 지질한 면모 안에 흔들리는 심리 묘사를 잘 표현해냈고, 박주현은 배규리의 청순함부터 독기 어린 걸크러시까지 잘 그려내며 새로운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극중에서 ‘인간수업’을 했다면, 현실에선 연기수업을 했을 선배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선생님, 경찰, 그리고 어둠의 경호원으로 불나방 같은 두 사람을 지켜 준 박혁권, 김여진, 최민수다. 박혁권은 마치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 따뜻한 연기를 펼쳤고, 김여진은 실제 남편인 김진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대본 단계부터 함께 작품을 고민했다. 최민수는 가볍게 보이면 안 될 ‘인간수업’이라는 드라마의 묵직한 무게 중심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꿈을 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을 담갔다고 애써 자위했지만 결국 범죄는 범죄다. 결국 종착역은 꿈의 반대 방향에 있기 마련이다. 하여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과연 어떤 결말이 질풍노도를 잠재울지 다양한 물음표를 안긴다. 결국 김진민 감독은 지수의 마지막 시선에 시청자의 시선을 한곳에 포개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지수가 지었던 죄는 각자의 기준에서 용서 또는 단죄를 내릴 것이고, 이후 지수와 규리의 삶도 각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터다.

다만 넷플릭스 특성상 시즌 2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김 감독은 그 선택지를 넷플릭스에게 넘기며, “처음부터 시즌제를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지수와 규리의 남은 이야기를 바라는 시청자에겐 다소 아쉬운 답변이다. 허나 ‘인간수업’은 분명 대한민국 미디어가 함부로 다루지 못했던 영역으로 진정성 있는 한 걸음을 뗀 작품이다. 꼭 지수와 규리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다. 아직 우리가, 이 사회가 눈 가리며 쳐다보지 않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다음 시간 수업이 계속 되기를 기대해 본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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