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식 긴급재난금 탄생 뒤엔 '기본소득 연구단'이 있었다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이해진 기자 2020.05.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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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연구원 기본소득 연구단, 재난지원금 불 지펴...유영성 단장 "기본소득은 복지 아닌 경제정책"

경기도의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자리잡은 이 곳에는 다른 공공 연구기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톡한 연구 조직이 있다. 지난해 4월 설립된 기본소득연구단이다. 명칭 그대로, 기본소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든 브레인 조직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4인 기준 1가구당 100만원씩 지급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의 불을 지핀 경기도 기본소득 정책의 산실이다. 연구단장을 맡고 있는 유영성 박사를 비롯, 5명의 박사급 연구위원이 핵심멤버이고 주제나 과제에 따라 연구위원들이 탄력적으로 참여한다.



이재명 지사 당선 뒤 연구단 설립, 경기도 기본소득 정책 산실
유박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뒤 영국 뉴캐슬대학에서 환경경제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경기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건과 환경 문제에 대한 해법을 경제학적으로 모색하려는 시도 자체가 거의 없던 시절 일찌감치 이 분야를 연구했던 경력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의 토대가 됐다. 보건, 환경, 경제가 중첩된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는 '코로나19 사태' 해법으로 기본소득에 주목한 것도 다중적 학문 경험과 안목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 연구단장유영성 경기연구원 기본소득 연구단장


기본소득이란게 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돈을 나눠준다’는 매우 단순한 정책같지만 실제 시행에 들어가면 복합적이고 미묘한 문제들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철학을 전공한 이관형 박사가 연구단 멤버인 점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갈등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인간행위와 심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박사는 “기본소득은 흔히 복지정책으로 생각하거나 ‘퍼주기’라고 비난하지만, 한번 주고 끝나는게 아니라 소득과 생산으로 연결되는 경제정책이자 새로운 기업정책”이라고 강조한다.

기존 주류 경제학은 기본소득과 같은 분배문제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정부도 사회안전망 차원에서의 사회복지정책으로 기본소득을 접근한다. 하지만 산업구조 패러다임의 변화와 소득격차 확대에 직면해서는 이를 전면적 경제정책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유단장이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스위스 미국 아프리카 등에서 소규모로 기본소득 실험이 시작되던 2015년 즈음. 새누리당 소속으로 당선된 남경필 도지사 시절이었다. 보수 정치인 도지사 체제에서 기본소득을 공식 연구과제로 삼기는 힘들었지만, 틈틈이 기본소득과 관련한 자료를 쌓고 고민을 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청년배당 제도를 통해 기본소득 실험을 해온 이재명 시장이 도지사로 당선된 뒤 기본소득 연구는 탄력을 받게 됐다. 특히 이지사의 정책브레인으로 꼽히는 이한주 가천대 교수가 2018년 9월 경기연구원장으로 부임하면서 기본소득 연구가 본격화됐고 이듬해인 지난해 4월 연구단이 발족하게 됐다.

'코로나 19', 보건 환경 경제 중첩된 사회문제...다중적 안목 토대 '기본 소득' 주목
경기도의 실험과 경기연구원의 기본소득 연구는 외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독일 킬 대학의 마누엘 프란츠만 교수를 비롯한 교수 그룹은 지난해 경기연구원을 방문해 상호협력에 합의했다. 이들은 귀국 후 프랑크프르트 대학 산하에 기본소득연구소를 설립했다. 영국 스코틀랜드는 에딘버러, 그래스고우, 북에어셔, 파이프 시 등이 연합해 결성한 기본소득연구그룹(BIRG)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들은 조만간 연구용역 결과를 중앙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경기연구원에 알려왔다.

경기연구원 전경/사진제공=경기도경기연구원 전경/사진제공=경기도
1986년 런던에서 설립된 글로벌 비영리단체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는 기본소득의 5가지 구성요건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가족이 아닌) 개인 단위로, (자산심사나 노동요구 없이) 무조건,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의 재난지원금과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화폐 등으로 지급하는 일시적 지원을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취지와 효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의미한 실험이자 완전한 기본소득에 다가가는 첫걸음이라는 게 연구단의 시각이다.

유박사는 “금액규모나 지속성 면에서, 현재 시행되는 지원금은 비록 적으나마 (개인소득과 기업매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서 “전체 인구에 대해 일정금액을 나눠준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인 개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본소득의 근본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유연한 방식으로 현실에 부합한 형태의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고, 우선 할 수 있는 것을 신속하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처음부터 모든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을 줄 수 없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첫 발을 뗀 만큼 그 결과를 보고, 재원마련 방안을 보완해서 2~3년 정도 정책을 시행해 보면 보다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원금 효과 실증연구, '기본법' 준비작업..."선순환 구조 위해 신속한 행동 필요"
경기도가 정부의 재난지원금에 앞서 1인당 10만원씩 지급한 '재난기본소득'의 경우, 일단 초기효과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사용이 본격 시작된 지난달 15~22일 첫 7일 간만 하더라도 재난소득 사용액은 카드 3개사(NH농협·하나·현대카드) 기준 총 806억6200만원으로 7일 만에 소진율 24.1%(총 지급액 3348억원)를 기록했다. 경기연구원은 보다 정밀한 정책 실행 기초 자료 마련을 위해 정부의 코로나19 재난지원금과 경기도 등 지자체의 재난기본소득 지급 성과에 대한 실증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재원 문제와 관련, 조세재정권이 없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재난관리기금 등을 활용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을 지속할 수가 없다. 결국 지속가능한 기본소득정책은 중앙정부 차원의 집행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정부가 영구채 형태로 국채를 발행하고 한국은행이 이를 인수하는 것도 재원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유박사는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를 위한 영구채는 중앙정부 부채가 아니고 중앙은행 손실이라 재정적자 부담에서 벗어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는 인플레이션인데, 목표를 설정해서 그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통화정책을 펴면 된다”고 말했다. 경기연구원은 기본소득 재원조달 등 정책의 지속성과 효율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본소득 기본법' 제정안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박사는 "현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나 재정적자를 걱정하기에 앞서 국민의 기본생활보장과 소비-생산-고용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기 위해 신속하게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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