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영의 속풀이 과학] '현대판 연금술사' 가속기 삼형제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5.0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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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광만 있나, 양성자·중이온도 있다…뒤에 붙는 명칭 같아도 기능 달라

편집자주 ‘속풀이 과학’은 신문 속 과학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면과 뒷이야기, 혹은 살면서 문득 갖게 된 지적 호기심, 또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과학상식 등을 담았습니다.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조감도/사진=충북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조감도/사진=충북


‘14·30’, 가속기를 대표할 숫자 2개를 꼽았다. 우선 ‘14’는 전 세계 가속기를 통해 발견된 새 원소의 총합이다. ‘30’은 가속기를 통해 받은 노벨상 숫자다. 그래서 가속기를 현대판 연금술사, 또는 노벨상의 산실이라 부른다.

전국 지역자치단체 4곳의 치열한 유치전 속에 두어달 간 이어진 '신규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선정 드라마가 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때 정치권 여·야 모두가 표심 공략을 위한 카드로 다뤄질 정도로 유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사업비 1조원대 거대 국책 사업. 직간접 경제효과가 약 10조 원대로 추정되는 신규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구축사업 부지 공모에 강원 춘천, 경북 포항, 전남 나주, 충북 청주 등이 출사표를 던졌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종으로 청주의 손을 들어줬다.



[류준영의 속풀이 과학] '현대판 연금술사' 가속기 삼형제
‘가속기 삼형제’ 활동무대·특기 서로 달라요
오는 2022년 청주 오창TF(테크노폴리스)에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착공을 앞둔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이미 경주(양성자)·포항(방사광3·4세대)에서 가속기를 운영하고 있고, 내년 대전 신동에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 완공도 앞뒀다.



이 가속기들의 활동 무대는 조금씩 다르다. 양성자가속기와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 단위를 주무대로 한다면, 중이온 라온은 이보다 100만 배 더 작은 펨토미터(fm·1fm는 1000조 분의 1m) 단위의 세계를 탐구한다.

경주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가속기동 내부/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경주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가속기동 내부/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특기도 다르다. 양성자가속기는 물질의 성질을 변화시킨다. 양성자를 가속, 목표물에 충돌시키면 양성자가 그 물질 속으로 침투해 물질의 성질을 변하게 한다. 양성자가속기는 이 같은 특성으로 신소재 개발에 주로 사용한다.


방사광가속기는 단백질처럼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한 물질 내부를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주로 분자생물학 연구, 신약 및 반도체 개발 등에 쓰인다.

라온은 새로운 원소를 찾는 연구부터 핵과학 연구, 중성자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모사하는 연구 등 다양한 기초과학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회춘 앞둔 ‘양성자’·동생 맞이할 ‘방사광’·출산 예정 ‘라온’
본질은 같지만 쓰임이 다른 '가속기 삼형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먼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경주에 구축한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의 대용량 선형양성자가속기는 가속기 중 맏형 격에 속한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2022년 말까지 설비 구축을 끝낸다.

양성자가속기는 고성능 반도체, 식물 돌연변이,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에 폭넓게 활용된다. 양성자가속기는 내년 기존 100MeV급에서 200MeV급으로 성능을 높이는 업그레이드 공사가 예정돼 있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2015년 완공된 뒤 2017년 중순부터 실전에 투입됐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 입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할 때 만들어지는 엑스레이나 극자외선 등 다양한 빛을 이용해 물질의 구조·특성 등을 파악한다.

하지만 지금은 노후화가 심하고 사용도 포화상태라서 늘어나는 연구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1994년 도입됐고 9년 전 인 2011년 한차례 업그레이드 작업을 실시했지만, 해외 장비에 비하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추가로 구축하기로 했다. 새로 짓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태양빛 밝기의 100억배에 달하는 방사광(적외선, 자외선, X선)을 이용한다. 이 빛을 이용하면 나노미터 단위의 아주 작은 물체까지 구분할 수 있고, 분자 구조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마치 입체사진을 보듯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연료전지와 같은 미래 에너지 산업 연구개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장비로 꼽힌다.

장흥태 과기정통부 원자력연구개발과장은 “방사광가속기는 미세공정을 필요로 하는 지능형 반도체, 미래자율주행차, 바이오 헬스 등에선 기본으로 갖춰야 할 장비”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이 사업에 국비 8000억원을 비롯한 총 1조원을 투입하고, 2027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제외하면 현재 가속기의 막내는 라온이다. 2011년부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에서 구축 공사가 한창이다. 가속기 성능을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는 터널 길이는 95.5m이다. 라온에서 생성될 이온이 이 터널을 15만 분의 1초로 날아가게 된다. 눈을 깜빡하기도 전의 찰나의 순간이다.

라온은 중이온을 가속하는 직선 형태의 선형가속기 중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진다. 부지 면적은 95만2066㎡로 축구장 130개 면적과 같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관계자는 “가속기 규모가 클수록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얻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래 기술 선점을 위해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도 가속기 개발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은 22대, 일본은 11대, 독일은 7대의 가속기를 확보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둘레 1.2㎞의 6GeV급 ‘고에너지방사광가속기(HEPS)’를 건설 중이다. 일본은 3GeV급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SLiT-J’의 신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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