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두산 '생존이 내일이고 미래다'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2020.05.0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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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목(同想異目)]두산 '생존이 내일이고 미래다'


두산중공업의 경영위기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언론보도에 가장 당혹스러워 한 곳은 당사자인 두산그룹이다. 전적으로 ‘자기 과실’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어 내심 고마워할 수도 있지만 ‘탈원전 직격탄’ 등의 표현에 엄청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물론 탈원전 정책이 두산중공업 경영악화의 주요 진원지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영위기의 본질로 몰아가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두산 경영진의 사업적 판단과 얽히고설킨 자회사 지원, 악화한 국내외 시장상황 등 복합적인 위기요인들을 꼽을 수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나락에 빠졌다”는 분석 내지 주장은 두산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한 진심 어린 걱정보다 다른 숨은 이유에 더 방점이 찍힌다. 옳고 그름이나 누구의 잘잘못, 팩트 여부를 떠나 진영논리에 불을 지르기 쉬운 가연성을 지녔다. 두산의 과실을 따지기보다 생각이 다른 한쪽을 공격하거나 보호하는데 열을 올리고 이를 통해 어떤 유무형의 이득을 취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느껴진다.
 
두산이 그토록 예민해한 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탈원전을 둘러싸고 둘로 갈라진 정책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해석 때문이다. 더군다나 총선을 전후한 민감한 시기에 정책자금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행여 ‘자가발전’의 오해라도 산다면 생사의 기로에 선 입장에서 공포감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자구노력을 내놓아도 어느 한쪽에선 성에 차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나마 두산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대중적 이미지가 그리 네거티브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영악화 내지는 부실에 빠졌을 때 오너일가나 경영진에게 쏟아지는 대중적 비난의 폭이나 강도가 기존 다른 부실 대기업과 궤를 달리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탈원전 등 이슈로 정부와의 ‘쌍방과실’ 인식이 생기면서 해묵은 정경유착 비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수년 전 경영악화에 시달린 두산인프라코어가 20대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알려지면서 그 유명한 ‘사람이 미래다’란 두산의 이미지광고 카피가 일순간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뒤바뀐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두산은 2010년부터 6년째 ‘사람이 미래’란 광고캠페인을 전개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어려운 경제환경과 취업 분위기 속에 어깨가 처진 젊은이들에게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였다.
 
실적악화로 많은 대기업 임직원이 희망퇴직과 사실상의 권고사직 등을 통해 회사를 떠나는 와중에 두산이 유독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반전의 광고이미지 때문이다. ‘사람이 미래’라는 언제 들어도 당연하고 옳은 말이 인재경영을 비꼬는 패러디물로 전락한 것을 보고 너무 가혹한 공격이 아닌가 아쉬워한 기억이 생생하다.
 
두산은 결국 그해 ‘사람이 미래다’ 캠페인의 ‘열세번째 이야기-있는 그대로’ 편에 이어 ‘두산은 지금, 내일을 준비합니다’란 새로운 광고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두산이 비즈니스의 근간이자 미래에도 주목받을 업(業)으로 꼽은 사업은 ‘에너지, 워터, 건설장비’였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준비한, 현재도 준비하는 내일이 위기에 봉착했다. 관련 산업 전체의 위기라고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산의 미래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고 예상치 못한 복병도 만났다. 두산은 지금 내일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 생존이 곧 미래고 지금 준비해야 할 내일도 생존이다. 두산이 연이어 만들어낸 언제 들어도 옳고 참신한 광고슬로건이 또다시 비판이나 조롱의 패러디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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