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잡겠다는 'n번방 방지법', 국내 IT업계가 화났다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2020.05.0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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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겨냥 투명성보고서 의무 신설했지만…'졸속입법' 논란 여전

/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 / 사진=김현정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 / 사진=김현정디자이너


20대 국회가 'n번방 방지법'을 마지막 과제로 삼고 속도전에 돌입했지만 업계에선 '성급한 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 성폭력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의결한데 이어 추가로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상임위원회 통과를 목표로 회의를 소집해 여야가 마련한 수정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이원욱 의원 등 13인은 지난 4일 과방위에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올해 20대 국회에서 연내 발의된 디지털 성착취 범죄 방지 관련 법안 16개를 병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뜯어보면 업계에서 지적한 독소조항이 그대로 담겼다. 개정안은 카카오·네이버 같은 서비스 제공자들이 n번방 촬영물과 같은 불법 성착취물을 신속하게 삭제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물리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처벌조항을 담았다.



전기통신사업법 22조, 95조, 104조에 일부 조항을 신설해 전기통신사업법 상 부가통신사업자가 자신이 운영·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 올라올 경우 삭제·접속차단하는 유통방지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또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도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유통방지 조치 또는 기술·관리적 조치 의무 위반 시에는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IT업계 "서비스제공자가 모든 대화내용 검열 못해"
인터넷업계에선 해당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실현 불가능한 의무를 강제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용자의 모든 대화를 감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내에 법인이 없는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사업자에게는 실질적인 조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기술적 보호조치(필터링) 의무는 국가가 민간사업자에게 불가능한 의무를 강제하는 문제가 있다"며 "대부분 메신저 서비스의 경우 이용자의 대화내용이 종단간 암호화되고, 서버에도 암호화된 상태로 저장되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가 대화내용을 확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필터링 기술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종단간 암호화'는 통신을 주고 받는 양 당사자만이 암호를 풀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커 등이 중간에서 대화내용을 가로채지 못하게 하는 보안 기술이다.

해외사업자 규제 실효성 떨어져…투명성보고서 제출 의무 효과는 '글쎄'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도 적용대상으로 규정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매년 방송통신위원회에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안을 새롭게 담았다. 신설 조항은 '문제가 터진 텔레그램은 규제 못하고 국내 사업자에만 족쇄를 채운다'는 업계 반발을 의식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은 여전히 규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n번방' 사건에서 불법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플랫폼 역할을 한 텔레그램이 정작 국내에선 부가통신사업을 신고한 사실도 없고 향후 신고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현재 발의된 수준의 개정안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실질적으로 본사 위치도 불분명한 해외사업자에게 적용이 어렵기 때문에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만 타격을 입는 역효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대 국회 임기가 이달 말 끝나기 때문에 업계 측과 실효성 있는 방안을 충분히 조율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다. 여당에서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결국 여야간 일정조율이 법안 통과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오는 11일이나 12일 중에 본회의가 한 번 더 잡히지 않으면 (관련 법안이) 20대 국회 내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상당히 적어진다"며 "이 기간 본회의가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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