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규제, 법보다 '투자자 압박'으로 속도낸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김사무엘 기자 2020.05.11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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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새로운 10년 ESG] 10-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 포스코·LG화학·신한지주 등에 기후리스크 공시 요구

편집자주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ESG 친화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자금은 30조 달러를 넘어섰고, 지원법을 도입하는 국가도 생겨났습니다. ESG는 성장정체에 직면한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단이자 목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2020 새로운 10년 ESG’ 연중기획 기획을 통해 한국형 자본주의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파리=신화/뉴시스】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참여하는 보편적 기후변화 협정이 진통 끝에 최종 채택됐다. 이날 파리 에펠탑에 '클라이밋사인(CLIMATESIGN)'이라는 로고가 비춰지고 있다. 2015.12.13 / 사진제공=뉴시스/신화【파리=신화/뉴시스】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가 참여하는 보편적 기후변화 협정이 진통 끝에 최종 채택됐다. 이날 파리 에펠탑에 '클라이밋사인(CLIMATESIGN)'이라는 로고가 비춰지고 있다. 2015.12.13 / 사진제공=뉴시스/신화


우리나라 법이 강제하지 않더라도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비중이 큰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과거 EU(유럽연합)에서 제품 및 원재료 내 함유된 유해물질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을 때 유럽 시장에 진출한 우리 대표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해당 규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국 정부가 해당 규제를 도입하기 이전의 일이다. 선제대응하지 않으면 대규모 시장에서 퇴출되기 때문이었다.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공시하라는 압박도 과거 EU 유해물질 규제와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경영성과에 대해 제각각의 기준을 통해 이를 공시하고 있을 뿐 표준화된 틀이 없었다. 그러나 국내 기업에 투자한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올해 들어 한국 기업에 기후변화 리스크를 국제 기준에 맞춰 공시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블랙록, 국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등에 '기후리스크 공개' 서한 발송
1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POSCO (392,500원 ▼3,500 -0.88%)(포스코), LG화학 (373,000원 ▼8,500 -2.23%) 등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권에 속하는 상장사들이 올해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최고경영자)로부터 TCFD(기후변화 관련 리스크의 재무공시를 위한 태스크포스) 권고안 기준에 맞춰 작성한 기후 관련 리스크를 공시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받았다. 금융업계에서도 신한지주 등이 블랙록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서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초에도 래리 핑크 CEO의 주주서한 발송 및 블랙록 투자대상 기업에 대한 직접 서한 발송 등이 화두에 오른 바 있다. 세계 최대 운용사의 행보인 만큼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래리 핑크 CEO의 연초 선언은 단순히 선언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게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TCFD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의 산하 협의체인 FSB(금융안정화) 내부의 태스크포스팀을 일컫는 용어다. TCFD는 "현재와 산업 혁명 이전 시기의 지구 평균 온도 차이를 섭씨 2도(2℃)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의 합의(2℃ 시나리오)를 달성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조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리스크를 △기업의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에 반영해 공시토록 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2017년 6월에 이미 내놨다. 블랙록은 TCFD의 창립멤버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블랙록 서한을 받은 국내 상장사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기후변화 관련 대응 비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거나 △이들 기업에 대한 자금제공 등으로 간접적으로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를 감당하는 금융사라는 등 지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국가온실가스 종합관리 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기업은 포스코(7312만여톤)이다.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철강 업종에 속한 현대제철 (31,450원 ▼150 -0.47%)(2251만여톤)이 2위였고 쌍용양회 (7,000원 ▼20 -0.28%)(1097만여톤) 삼성전자 (76,300원 ▼2,300 -2.93%)(1078만여톤) S-Oil (76,000원 ▼900 -1.17%)(882만여톤) LG화학(807만여톤)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전력 (20,900원 0.00%)은 이 회사만 따지면 배출량이 136만여톤으로 많지 않지만 한국남동발전 등 발전 자회사에서 배출되는 양을 모두 더하면 2억1600만톤에 이른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52기 포스코 주주총회 대응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단체는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석탄화력발전 건설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2020.3.27/뉴스1(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52기 포스코 주주총회 대응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단체는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석탄화력발전 건설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2020.3.27/뉴스1
온실가스 배출 많을수록 기업 재무부담도 ↑
지난 4일 종가 기준 한국거래소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매겨진 배출권 근월물 가격은 온실가스 1톤당 3만9000원이었다. 1년 전인 2019년 5월초 2만7600원이었던 배출권 가격은 올해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며 올 4월 하순에는 4만500원까지 올랐다가 최근 코로나19(COVID-19)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 등이 반영되며 상승세가 다소 꺾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1년 전 대비 가격 상승률은 41.3%에 달한다.

온실가스 배출권은 각 업체에 무상·유상으로 할당된다. 해당 연도에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양이 일종의 라이선스처럼 각 기업에 부여되는데 이 중 일부는 무상(공짜)으로, 나머지는 유상(유료)으로 배분된다는 얘기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배출권 거래제 1기 기간에는 전량이 무상으로 할당이 됐고 2018~2020년까지 진행 중인 2기 기간에는 97% 무상에 3% 유상 등 방식으로 배출권이 할당됐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진행될 3기 기간에는 무상 비중이 90%로 줄고 유상 비중이 10%로 늘어난다.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배출할수록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4기(2026년 이후) 거래제 기간의 유상할당 비중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2기) 또는 3기 때에 비해 더 커질 전망이다.

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배출권의 비중만 커지는 것이 아니다. 배출권 가격 자체도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임대웅 UNEP FI(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 한국 대표는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은 환경 오염 요인에 가격을 매겨 기업에 재무적 부담을 부과하는 매커니즘으로 자리잡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임 대표는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온실가스 1톤당 평균 거래 비용은 20달러(약 2만4000원)이지만 2040년에는 140달러(약 16만8000원)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기업의 영업이익과 순이익, 현금흐름이 크게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개별 기업의 무상·유상 할당 정보는 일반에 공개돼 있지 않다. 그러나 각 기업들이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되면 투자자들이 향유할 수 있는 배당수익이나 시세차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 관련 리스크가 곧 투자 리스크가 되는 것이다.

"기후 리스크는 곧 투자 리스크"
래리 핑크 CEO는 국내 상장사들에 보낸 서한을 통해 "점점 많은 투자자들이 기후변화 리스크가 투자 리스크이며 기후 관련 정책이 전체 경제 영역에서의 가격·비용·수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대부분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가까운 시점에 상당한 규모의 자본 재배분이 일어날 것이다. 기업과 투자자, 정부는 이같은 자본 재배분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석탄화력 발전처럼 지속가능성 관련 높은 리스크를 가진 산업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등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지속가능성 관련 이슈에 대한 공시 및 기업 관행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을 경우 경영진과 이사회 구성원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기업은 자신들의 준비상황에 대해 이해관계자에게 명확한 그림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한편 블랙록의 이같은 요구가 나온 후 우리 기업들도 자신들의 지속가능경영 현황에 대해 블랙록에 답변을 내고 있다. 한국전력은 2030년까지 자회사를 포함해 4700만톤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하고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며 신재생에너지를 2030년까지 41.2기가와트 규모로 건설하는 등 내용을 블랙록에 전달했다.

신한지주 역시 ESG펀드와 그린본드, 그린빌딩 부문의 투자규모를 2030년까지 20조원까지 확대하는 동시에 탄소배출 집약도가 높은 산업에 대한 투자 및 대출을 줄이는 등 내용의 계획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포스코도 2030년 온실가스 감축계획 수립과 함께 친환경 제품 개발을 통한 전 사회적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에 기여하겠다는 등 내용의 답변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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