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식 모르니 네가"…2030 女의 말못할 고민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20.05.0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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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미디어 스타트업 '어피티' 인터뷰]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나는 주식 같은 거 잘 몰라서...."

"그냥 부모님한테 맡겨."

"은행 추천으로 펀드는 몇 개 들었는데 잘 몰라."



20대 후반 여성 지인들에게 재테크 이야기를 하면 한결같이 돌아오는 반응들이다. 기자가 머니투데이 증권부에서 일한다 하면 '대단하다', '어렵겠다', '똑똑해 보인다'며 놀라워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근데 그 분야는 잘 모른다'는 회피형 대답으로 이어진다. 결국 할 말이 없어지면 다른 주제로 대화를 바꾼다.



2년여 전 미디어 스타트업을 준비하던 박진영 대표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비슷하게 느꼈다. 20~30대 여성 2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다른 이슈에 있어서는 각자의 취향과 이견을 보이던 여성들이 돈 문제만 나오면 다들 불편해하거나 위축됐다는 것이다.

"재테크 얘기 나오면 박탈감 든다"…2030 여성들 당당해지자는 '어피티'
박진영 '어피티' 대표. /사진=어피티 제공박진영 '어피티' 대표. /사진=어피티 제공
"당장 또래인 저부터도 공감이 됐어요. 창업 전에 1년동안 외주하며 돈을 벌었는데, 번 돈을 계좌에 몽땅 넣어놓거나 그냥 써본 기억만 있어요. 재테크만 나오면 뭘 해야 할 지 생각하기보다 박탈감부터 먼저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죠."

2018년 7월 어피티는 처음으로 뉴스레터 서비스를 론칭했다. 매일 아침 사회초년생 직장인을 위해 기초 금융 지식, 재테크 관련 뉴스레터를 제공한다. 경제 뉴스 분석을 통한 유망 업종이나 종목 추천, 재테크 꿀팁, 또래 직장인들의 자산관리 비법 등을 공유한다.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말투로 친근감을 더한다.


주요 타깃은 직장 3년차 이내의 20~30대 사회초년생 여성들로, 아직 독립하지 않았거나 결혼 등으로 목돈이 당장 필요치 않은 독자층이다. 어피티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지난달 말 기준 어피티 뉴스레터 서비스의 구독자 수는 5만9000명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서비스 개편 이후 구독자 집계를 새로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돼서 5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영어 단어 '어피티(UPPITY)'의 뜻은 '거만한, 건방진'이다. 자산 관리에 있어 여성들이 좀더 자신감을 갖자는 취지에서다. 박 대표는 "여성들이 재테크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아직 회의적인 시선이 있다"며 "그런 시선과 상관없이 내가 번 돈 만큼은 자신감 있게 잘 쓰고, 당당해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구독자 수 5만명 돌파…"전문가보다 투자경험 있는 직장인"
어피티 머니레터 구독자 수 추이. /사진=어피티 제공어피티 머니레터 구독자 수 추이. /사진=어피티 제공
어피티의 뉴스레터는 요일별로 서로 다른 필진들이 쓴 글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월요일은 경제뉴스, 수요일은 부동산, 목요일은 연봉 관련 이야기 등을 각자 맡은 필진이 글을 기고하면, 어피티 멤버 4명이 통계 등 팩트체크를 하고 편집해 게재하는 방식이다. 독자들이 자신의 소비 습관이나 투자 경험 등을 기고하면 전문가들이 이에 코멘트를 달아주는 코너도 있다.

필진 가운데 계랑투자 전문가 강환국씨 등도 있지만, 평범한 직장인도 많다. 이는 소위 금융 전문가들이 오히려 어피티의 타깃층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표는 "의료업, 법률, 금융 등 진입장벽이 높고 정보 비대칭이 큰 분야에서는 전문가 타이틀을 중시하는데, 막상 이분들의 이야기는 우리 타깃층에게는 와닿지가 않는다"며 "타깃층과 좀 더 또래와 가깝거나 비슷한 상황에서 직접 재테크를 하며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분들을 섭외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어피티 머니레터 일부. /사진=어피티 사이트지난달 24일 어피티 머니레터 일부. /사진=어피티 사이트
실제로 어피티에 주식 관련 기고를 하는 필진 '효라클'씨는 제조사에서 해외영업과 IT(정보기술) 관련 업무를 하며 스마트폰으로 주식 매매를 시작한 직장인이다. 본격적으로 주식 매매를 한 지는 6년 정도 됐다. 효라클씨는 어피티에서 주관하는 경제 관련 스터디 리더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주식 투자는 학문처럼 더 많은 공부를 한 사람이 이기는 곳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유가나 환율 이런 지식은 열심히 공부해봤자 도움은커녕 방해만 된다"고 지적했다.



어피티의 필진은 성별이나 연령대 구분 없이 다양하다. 박진영 대표는 "더 많은 전문가 여성들을 필진으로 삼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지만, 현실적으로 찾기가 어렵다"며 "저희와 문제의식을 공감하는 분이라면 성별이나 나이대 상관없이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대형증권사 8곳(자기자본 3조원 이상)도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임원은 4.7%에 불과했으며, 한 명도 없거나 1~2명에 불과한 곳도 수두룩했다. 증권업계 여성 CEO(최고경영자)는 2018년 취임한 박정림 KB증권 사장이 유일하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자산운용사 대표, 심지어 주식 유튜버까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 대부분 남성이다.

스터디·인강 등도 준비 중에 있어…"투자 관심 있지만 잘 모른다면 누구나"
어피티 변천사. /사진=어피티 제공어피티 변천사. /사진=어피티 제공
어피티는 메일링 서비스 외 다른 사업도 준비 중이다. 지난 1월 1기로 출범한 주식 투자 스터디 '효라클럽'은 2기를 모집해 온라인으로 진행 중이다. 스터디 전에 각자 관심 있는 종목을 공부해오고, 진행자인 효라클씨가 현재 이슈에서 주목할 부분이나 종목 관련 특징을 짚어주는 식이다.



올해 안에는 투자 관련 영상 강의와 책을 세트로 제공해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효라클럽' 스터디를 인터넷 강의처럼 확장한 방식이다. 박 대표는 "답이 없는 재테크 세계의 솔루션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피티의 주요 타깃은 20~30대 사회초년생 여성이지만, 서비스는 모두에게 열려있다. 연령대나 나이에 상관없이 투자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할지 잘 모르는 이들 모두가 잠재적 독자다. 박 대표는 "금융지식은 현재는 낮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 기존 콘텐츠가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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