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도 재벌그룹" 공정위의 '몰이해'가 빚은 해프닝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0.05.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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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배 IMM 인베스트먼트 대표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지성배 IMM 인베스트먼트 대표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수십 년간 기업을 지배하는 대기업 그룹 오너들과 달리 PE(사모펀드)나 VC(벤처캐피털) 등 GP(업무집행사원)은 자신의 돈이 아니라 재무적 투자자들의 돈을 받아 운용해 투자 수익을 얻는 회사입니다. 자산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해서 기존 기업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올해로 설립 21주년을 맞이하는 IMM인베스트먼트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시대상 기업집단'(이하 공시대상집단)으로 지정된 데 대한 한 PE 관계자의 반응이다. PE와 VC가 기존 오너 일가들이 지배하는 그룹들과 달리 궁극적으로는 지분매각을 통한 엑시트(수익 실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총계 합계가 7조210억원에 달하는 79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는 이유로 이달 공정위로부터 공시대상 집단으로 지정됐다. PE나 VC 등 운용사가 공시대상 집단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사상 최초다.



1999년 설립된 IMM인베스트먼트는 현재 VC펀드 12개와 PEF 13개 등 AUM(운용자산)이 2조원을 웃돈다. 현재까지 집행한 펀드의 규모는 3조1100억원에 이른다.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 셀트리온을 비롯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기업)으로 꼽히는 쿠팡, 위메프, 우아한형제들, 크래프톤 및 차세대 유니콘으로 꼽히는 직방 등이 IMM인베스트먼트의 투자를 받은 바 있다.

공시대상 집단은 '자산총계 합계가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일컫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보다는 규모가 작다. 재벌그룹의 상호출자 또는 순환출자 및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공시대상 집단 및 상호출자제한 제도다. 공정위 산식에 따라 기업집단 내 소속회사들의 자산총계 합계가 5조원을 넘어서면 공시대상집단으로 지정된다. 기업집단 내 내부거래는 물론이고 주요 사항에 대해 하나하나 공시해야 한다. 공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공정위가 공시대상집단으로 지정할 때 사용한 산식에 따르면 IMM인베스트먼트가 지배하는 79개 기업의 자산총액 합계는 6조3130억원으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 공정위가 공시대상집단이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할 때 금융·보험사에 대해서는 '자산총계'가 아니라 '자본총계와 자본금 중 큰 금액'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공정위 산식을 따르든, 일반적인 회계기준을 따르든 IMM인베스트먼트는 이번에 공시대상집단으로 지정될 수밖에 없다. 규모로만 보면 동국제강 그룹(6조590억원) 금호석유화학 그룹(5조7100억원) 애경그룹(5조6310억원) 하이트진로 그룹(5조4430억원)보다 크다.


문제는 오너십을 추구하지 않는, 투자수익을 도모하는 PE와 VC에 여느 재벌 기업들과 같은 규제틀을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 여부다. IMM인베스트먼트는 모회사인 유한회사 IMM을 비롯해 그린에너지, 나진코퍼레이션 등 29개 기업 외에도 50개에 달하는 금융·보험 계열사를 거느렸다는 이유로 공시대상집단으로 지정됐다. 이들 79개 계열사 중 IMM인베스트먼트의 최대주주 IMM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IMM인베스트먼트가 기업가치 제고 후 매각해서 투자수익을 얻기 위해 보유한 기업이거나 이들 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 및 SPC(특수목적회사)들이다.

PE업계로는 이례적으로 IMM인베스트먼트가 공시대상집단으로 지정된 이유는 IMM인베스트먼트의 지성배 대표가 최상위 지배기업인 IMM의 대표이자 IMM 지분 42.76%를 보유한 최대주주라는 점 때문이었다. 지 대표는 삼일회계법인과 CKD창업투자 등을 거쳐 2000년부터 IMM&파트너스에 합류했고 2004년부터 IMM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선입됐다. 지 대표의 최대지분 보유는 여느 PE나 VC들이 지분을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파트너십 형태로 분산해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그러나 이번 IMM인베스트먼트의 공시대상집단 지정은 단지 IMM에 특유한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봐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PE 또는 VC업에 대한 몰이해가 빚은 해프닝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PE 등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의 자산총계를 산출하는 방식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 PE 운용사 관계자는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후 매각) 방식의 운용사는 50% 이상 지분을 확보해 투자하라고 법에서 규정하고 있어 기업집단을 거느리게 된다"며 "실제 타깃 기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2~3개의 SPC를 설립할 수가 있는데 이들 SPC들과 타깃기업의 자산이 중복 반영돼 공정위 기준(자산총계 합계 5조원)에 빠르게 도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PE 등은 현재는 투자대상 기업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정거래법을 PE 등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PE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PE 운용사 관계자는 "펀드마다 운용기간이 다르지만 PE 등은 투자대상 기업을 살 때는 기업집단의 자산이 늘었다가 추후 수익실현을 위해 팔 때는 자산이 줄어들게 된다"며 "수십년간 오너십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하는 일반 대기업과 같은 틀로 규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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