둬도 되고, 안 둬도 된다. 여당은 사실상 ‘의무 규정’으로, 야당은 ‘임의 규정’으로 해석한다.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공수 교대하면 입장도 바뀐다. 법 취지와 규정을 둘러싼 논쟁은 제자리에서 맴돌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회기가 끝난다. ‘일 안하는 국회’는 이렇게 되풀이된다.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17곳의 상임위에서 분야별 입법 의제를 다루는 한편,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소위원회(소위)는 ‘상임위 중심주의’의 중추다. 상임위마다 설치된 법안심사 소위가 대표적이다. 법안 심사 소위는 ‘법안 공장’과 같다. 여야 의원들은 이 곳에서 소관 법안에 대해 토론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 대체로 만장일치 등 합의를 통해 처리한다. 소위의 합의 사안은 상임위 전체회의 문턱을 넘는다.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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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법 57조2항 역시 상임위는 법안 심사를 분담하는 둘 이상의 소위를 둘 수 있다고 열어놨다. 15대 국회에서 정보위를 제외하고 모든 상임위에 3개 이상 상설 소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으나 17대 국회에서 운영 여건 등을 고려해 이같이 변경했다. 정치권에서 소위를 두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냉소적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소위가 안 열리니 상임위도 운영되지 않는다. 상임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주로 소위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 의결하는데, 소위가 일을 안 하면 상임위도 할 일이 없다. 여야가 정략적 판단에 따라 소위와 상임위를 멈춰세우는 데 국회법이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이에 국회법을 개정해 ‘일하는 국회’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싸울 때 싸울더라도 법안 등을 논의하는 상임위 및 소위를 상시 운영해 여야가 일을 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이미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있다. 지난 3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상임위별로 소관 사항을 분담·심사하는 상설 소위를 2개 이상 설치하도록 했다.
지도부 지령 “해주지 말아라”…‘상임위 인질극’ 끝내야상임위를 대하는 여야 지도부의 행태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당 지도부는 국회법의 결함을 이용해 때때로 상임위 운영을 협상의 수단으로 삼는다. 야당 지도부가 이같은 유혹에 쉽게 빠지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입장이 바뀐다.
자기 진영의 요구를 상대 측이 수용하면 상임위 등 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해주는 방식이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갖가지 구실을 동원해 상임위를 가동하지 않는다. 이른바 ‘상임위 인질극’이다.
‘수 틀리면’ 진행 중인 상임위도 멈춰세운다. 상임위 여야 간사가 치열한 논의 끝에 합의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당 지도부의 ‘지령’이 떨어지면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모 원내대표의 경우, “혼자 원내대표, 각 상임위 간사 역할까지 다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외에서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상임위에서 안 풀리는 것 중 상당수가 지도부가 ‘해주지 말아라’ 식으로 막고 있는 게 많다”며 “임시국회를 열어놓고 아무 상임위도 열리지 않는 것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