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보고 마음 찢어져서" 칠순노인 이천까지 달려왔지만

뉴스1 제공 2020.05.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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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택시로…"젊은시절 나도 비정규직 건설노동자"
'등록 안됐다' 봉사 문전박대 "온국민 위로마음 같아"

(이천=뉴스1) 황덕현 기자,박종홍 기자
서울에서 자원봉사를 온 이봉준씨(77)가 1일 오전 이천물류창고화재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이천자원봉사센터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서울에서 자원봉사를 온 이봉준씨(77)가 1일 오전 이천물류창고화재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이천자원봉사센터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이천=뉴스1) 황덕현 기자,박종홍 기자 = "불길보고 마음이 찢어졌어요. 뭐라도,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노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이봉준씨(77)는 근로자의날인 1일 아침 8시쯤 경기 이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망자 합동분향소에 들어서면서 이같이 말했다.



아직 유족과 지인의 조문만 받고 있는 분향소에, 이씨는 '안타까워서 돕고싶다'며 이날(1일) 이른 오전 택시를 잡아 타고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온 것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몸을 실었다. 젊은 시절 건설현장과 공장 등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그가 눈을 뜨던 시간대다. 이씨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어떻게 (봉사하러) 와야할지 길도 모르니까 택시기사한테 '장거리 좀 뛰자. 현장으로 간다' 하고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어깨에는 일용직을 할 때 짐을 들고 다니던 자주색 짐가방이 들려 있었다. 안에는 작업복이 들어 있었다.



처음 내린 곳은 화재가 난 물류창고 앞, 그을린 건물을 본 이씨는 무릎이 풀려 주저 앉았다. 손에 쥔 화장지로 눈을 닦은 이씨는 "그 불길 피하랴 나오랴 이리뛰고 저리뛰었을텐데…내 자식 같기도 하고 형제같기도 해서 슬펐다"고 말했다.

화재 피해 가족들의 대기실이 마련된 이천시 모가면 모가실내체육관에는 더 도울 일손이 필요없다는 말에 이씨는 이천시청 공무원 손에 이끌려 합동분향소까지 오게 됐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반응은 냉랭했다. 이천시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봉사자 명단에 이분은 없다. 저희 센터에서 하면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분향만 하고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위패와 영정 앞에서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는 지난해 고성·속초 산불 당시도 자원봉사를 한 바 있다. "국가적 재난이 있는 상황에 국민 누구라도 시간여유가 있으면 한달음에 왔을 것"이란다. 이씨는 "현장 정리가 잘 되면 좋겠다. 유가족분들도 마음 잘 추스렸으면 좋겠다"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합동분향소는 1일 오전 10시 기준 유족·지인의 조문만 받고 있다. 일반 시민의 조문은 아직 받지 않고 있다. 사망자들의 신원이 전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문을 받을 수는 없다는 유가족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망자의 신원이 다 확인된 뒤 일반인 조문 시점을 정하는 방안을 피해자 가족들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2020.5.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1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2020.5.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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